또 한명의 꽃다운 청춘이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났다. 현대건설 소속이었던 전 여자배구 선수 고유민이 2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소식이 알려지며 대중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고유민은 7월 31일 경기도 광주 오포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기 광주 경찰서는 외부인 침입을 비롯한 범죄 혐의점이 없는 점에 비춰 고유민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유민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하여 2013년 CBS배 전국남녀 중고배구대회 여고부(대구여고)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013년 여자프로배구 신인드래프트에서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 1라운드 4순위로 지명돼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비록 스타급 선수는 아니었지만 본인의 최대 장기인 뛰어난 디그 능력을 바탕으로 백업멤버나 원포인트 블로커로서는 제법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밝은 성격으로 종종 팀내 분위기메이커 역할도 담당했다.

하지만 더딘 성장세 속에서 여러 차례 포지션 변경까지 겪으며 고유민의 경력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부족한 공격력과 기복 심한 리시브의 한계로 주전급 선수로 올라서지 못하고 주로 수비형 백업 레프트에 머물렀던 고유민은, 마지막이 된 2019~20시즌에는 발목부상으로 시즌아웃된 김연견을 대체하여 잠시 리베로로 전환하기도 했다.

여자배구 중흥기였음에도
 
 이도희 감독이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윙스파이커 고유민을 김연견 자리에 투입할 수도 있다.

이도희 감독이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윙스파이커 고유민을 김연견 자리에 투입할 수도 있다. ⓒ 한국배구연맹

 
어찌보면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지만 정작 고유민은 상대 선수들의 집중공략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부진을 면치못했다. 여기에 팬들의 극심한 비난 여론까지 겹치며 자신감을 상실했다. 빗발치는 악성댓글에 고유민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의 댓글 게시판을 폐쇄하기도 했다. 여자배구 경기를 오랫동안 직관해온 팬들에 따르면, 늘 밝은 모습으로 동료들을 응원하던 고유민이 이 당시에는 눈에 띄게 풀이 죽은 모습으로 누가봐도 위축된 기색이 역력했다는 증언들도 나와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고유민은 지난 3월 초에 돌연 팀을 무단으로 이탈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는 코로나19 확산 여파에 따라 V-리그 조기 폐막이 결정되기 이전이었다. 현대건설은 고유민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임의탈퇴를 결정했다.

KOVO는 지난 5월 1일에 고유민의 임의탈퇴를 공시한바 있다. 임의탈퇴 선수는 공시일로부터 1개월 안에 원소속팀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되어있지만, 고유민은 끝내 현대건설로 돌아가지 않았고 무적 신분으로 남았다.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배구를 더 이상 하지않겠다는 포기 수순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팬들은 고유민의 재기를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소식은 영원한 이별이었다.

V리그에서 고유민과 함께했던 많은 동료들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고유민과 함께 현대건설에서 활약하고 지난 4월에 흥국생명으로 이적한 세터 이다영은 SNS에 "많이 사랑해. 고유민. 보고 싶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라"고 추도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올시즌 한국무대에 복귀한 김연경(흥국생명)도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팬들은 생전에 그녀를 괴롭혔던 무수한 악플이 적어도 중요한 원인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여자배구는 최근 높은 인기를 끌며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김연경, 이다영, 이재영, 양효진, 황민경, 고예림 등 실력과 스타성을 갖춘 여자배구 선수들은 아이돌 부럽지않은 인기와 화제를 끌어모은다. 하지만 높아진 관심의 이면에는 부작용도 적지않다. 조금만 부진하거나 기대에 어긋나면 어마어마한 비난을 겪어야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또한 최근 여자배구 선수들이 외모로 주목받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연예인도 아닌 운동선수들임에도 외모로 품평을 받거나 인신공격성 성희롱을 당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프로고 성인이라고 해도 사회적으로는 아직 20대에 불과한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여성들이 감당하기에는 쉽지않은 환경이다.

고유민은 간간이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하여 유쾌하고 4차원적인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실제 성격은 오히려 섬세하고 여성적인 면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 고유민의 SNS를 살펴보면 선수생활 내내 많은 악플에 시달려왔던 것을 알수 있다. 그녀의 기량이나 느린 성장세같이 배구적인 내용을 지적하는 글도 있지만, 경기력과 상관없는 외모비하나 근거없는 루머 제기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수 있다.

최근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구하라나 설리의 사례를 통하여 악플에 대한 경각심과 자성의 여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막상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그동안 연예인의 사례로만 여겨졌던 일이 스포츠 선수에게 발생했다는 것은 대중들에게 또 한번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악플이 주는 악영향과 고통이 특정 직업군이나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오히려 스포츠계에서는 항상 가까이서 팬들을 접해야하는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여 불미스러운 상황이 발생해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편이었다. 설사 경기장에서 대놓고 야유를 하거나 욕을 퍼붓는 팬들이 있다고 해도 선수들이 나서서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엄격히 금기시된다. 이러다보니 일각에서는 '나는 팬이고 상대는 운동선수니까 욕도 할수 있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몰지각한 인식을 가진 이들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삐뚤어진 인식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에서 훨씬 두드러지게 표출된다.

이어지는 악플 사례

사실 스포츠계에는 흔히 '욕값도 연봉에 포함되어있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있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유명 선수들에게는 팬들의 질타와 비판도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선수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악의적인 인신공격, 비난을 위한 비난은 다르다. 겉보기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며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스타들, 강철보다 단단해 보이는 운동선수들도 내면은 의외로 소심하고 여린 사람들이 많다.

여자농구 스타인 간판스타인 박지수(청주 KB스타즈)도 최근 악플로 인한 고충을 공개적으로 호소하여 화제가 된바 있다. 박지수는 일부 팬들로부터 경기중에 '표정이 좋지않다. 싸가지가 없다'는 식의 지적을 받고 "몸싸움이 심한 리그에서 어떻게 웃으면서 뛸 수 있나. 전쟁에서 웃으면서 총 쏘는 사람이 있나"라고 반박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박지수는 "농구를 포기하고싶은 마음까지 든다"며 자괴감을 드러냈다.

또한 남자프로농구 귀화선수인 라건아(전주 KCC)는 한국 팬들로부터 인종차별적인 메시지를 여러 차례 받은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라건아의 고백에 또 다른 외국인 선수 브랜든 브라운, 귀화혼혈선수 출신 전태풍 등도 이에 동조하며 같은 경험담을 고백하여 화제가 되었다.

과거에는 미디어가 한정적이어서 경기장만 벗어나면 선수들이 팬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미디어와 SNS가 대거 발달하면서 유명인의 일상이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노출되고 매순간 평가받는 상황에 놓인다.심지어 어떤 팬들은 선수들의 경기중 작은 제스처나 표정, 입모양까지 꼬투리를 잡아 문제삼기도 한다.

단지 가벼운 장난이나 풍자라면 웃고 넘길 수 있지만, 일부 악성팬들은 이를 악용하여 선수의 이미지를 왜곡하거나 악의적인 '프레임'까지 만든다.  고유민이나 박지수 사례처럼 최근의 악플러들은 일상화된 SNS를 이용하여 악플을 당사자에게 직접 전송할수도 있다. 과거 시대와 비교하여 요즘 선수들이 대중의 평가와 악플로 인하여 겪어야하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비교할수 없이 커진 것이다.

이처럼 악플에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도, 여성이나 남성이냐의 구분도 더이상 의미가 없다. 예전처럼 유명인이라면 참고 견뎌야할 통과의례이거나, 그저 무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넘기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해졌다. 물론 프로선수라면 때로는 팬들의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그런 지적을 자양분 삼아 더욱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가 있지만, 팬과 선수는 갑을관계가 아니며 동등한 인간으로서 상호 존중을 받아야할 관계다.

최근 연예계에서도 악플에 대한 관용없는 강경 대응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고유민의 가슴아픈 사례를 거울삼아, 스포츠계에서도 악성 댓글에 대한 적극적인 공론화와 근절 방안이 마련되어야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