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레이하운드> 포스터.

영화 <그레이하운드> 포스터. ⓒ 애플 TV+

 
톰 행크스 하면, 드라마와 로맨스 장르에 특화된 반듯하면서도 어리숙한 이미지를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는 자신의 최전성기였던 1990년대를 그런 이미지로 화려하게 수놓았다. 물론 대표 연기파 배우답게 그는 이후에도 더욱 더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그럼에도 전혀 녹슬지 않은 연기력과 흥행력을 과시했고 과시하고 있으며 과시할 거라 생각된다. 

그에게 전쟁물은 특별하면 특별했지 이런 저런 영화 장르 중 하나로 치부되진 않을 것이다. 그의 전설적인 필모 중에서도 특출난 <포레스트 검프>는 1/3 정도는 전쟁물이고, 그의 정극 필모의 시작점과 같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있으며, 역대급 미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그가 제작과 감독과 각본과 기획에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2020년 그가 제작과 각본과 주연으로 활약한 전쟁 영화 <그레이하운드>가 우리를 찾아왔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돌렸으며, 치열한 각축전 끝에 애플 TV+가 배급권을 확보했다. 전 세계 영화계에 찾아온 새로운 흐름에 빠르게 발맞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내용의 영화일지 들여다보자. 

제2차 세계대전 대서양 수송선단 호위

1941년 말 일본제국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다. 태평양에서는 일제와 전쟁을 치르면서, 대서양을 통해 유럽으로 군수물자와 병력을 실어날랐다. 당연히 호송이 필요했는데 나치독일의 악명 높은 U보트가 무시무시한 전략과 전술과 화력으로 수송선단을 격침하려 했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크라우스 중령(톰 행크스 분)은 플레처급 구축함 '그레이하운드'의 신임 함장으로 출전해 영국으로 향하는 수송선단의 호위를 맡게 되었다. 출항 직전, 애인에게 청혼하지만 거절 당하고 만다. 출항 직후, U보트 탐지 및 공격을 맡았던 수상기가 항속거리 문제로 돌아가고 만다. 기다렸다는 듯 U보트의 수송선단 및 구축함 습격이 시작된다. 

크라우스 함장의 첫 지휘를 부하들이 100% 믿지는 못하는 눈치다. 하지만, 바다 위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믿어야 하는 건 오직 함장의 판단과 선택뿐이다. 그는 적재적소에 부하들을 배치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며 자기 한 몸 아끼지 않고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등 최선을 다한다. 과연 그의 구축함은 무사히 영국으로 향할 수 있을까? 그가 호위하는 수송선단은 무사할 수 있을까?

해전 영화의 마스터피스

<그레이하운드>는 이제껏 나온 많은 메이저급 전쟁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전투 자체에 집중한 영화다. 영화 극초반, 출항 직전의 크라우스 중령을 잠깐 비추며 그의 자못 자애롭기까지 한 성향을 보여주고자 한 것 외엔 순도 100%에 가까운 전투 영상을 선보인다.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이는 물론이고 숨 돌릴 틈 없는 긴박감을 선호하는 이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해전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일반 전쟁 영화와 또 다른 결이 보이는데, 무수히 많은 전문 용어이다. 해군 관련 용어에 해전 관련 용어까지 더해지니 거짓말 조금 보태서 대사의 절반 이상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랬기에 장면 장면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란 좋게 해석해 본다. 물론, 거기엔 톰 행크스의 순간순간 미묘하지만 깊숙이 와 닿는 감정의 변화가 있다. 

신임 함장이지만 직급으론 최선임인 듯 그레이하운드뿐만 아니라 호위전단 전체를 진두지휘할 때의 고심, 목숨이 촌각에 달린 듯했을 때 부하들이 그에게 보내는 신뢰와 불신의 오묘함을 대할 때의 난감함, 죽음이 멀지 않게 느껴질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애인의 모습, 한순간에 산화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배들을 보고 느끼는 막연함 등 그때 그 감정을 정확히 겉으로 드러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고 현장의 실체까지 느낄 수 있게 하는 건 톰 행크스만의 능력이라 하겠다. 

전장에서의 극한직업 다큐멘터리

전쟁 영화에 으레 따라오는 철학적 묘미나 신파적 감동이나 인물들간의 갈등이나 국가적 가르침 등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아 매우 좋았다. 말하고자 하는 게, 보여주고자 하는 게 다른 데 있지 않고 해전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함장의 모습에 있다는 것도 매우 좋았다. 마치 '극한직업'이라든지 '다큐멘터리 3일'이라든지, 재밌고 알차지만 내용은 매우 꽉 찬 단백한 일상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상업 영화에 웬 일상 다큐멘터리냐고 누가 보겠냐고 할 분도 계시겠지만, 하이라이트 부분만 집중해 현장 상황이 아닌 상황을 헤쳐나가는 인물의 좌충우돌이 중심이 되는 액션만 찍어놓곤 전쟁 영화라고 하는 작품들보단 퀄리티가 좋다. 막상 전쟁에 나가면 철학이고 감동이고 뭐가 있겠나. 죽지 않고 살아남고자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사람들밖에 더 있겠나. 이 영화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그 점만을 공략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전쟁 영화를 봐와서 지난 수년간 더 이상 볼 이유를 찾지 못했는데, 간간이 새로운 스타일의 전쟁 영화들이 출현하여 재밌게 보고 있다. 이 영화 덕분에 요즘 전쟁 영화라면 으레 덮어놓고 보지 않는 생각을 조금은 버릴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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