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마르소의 머리 위로 헤드폰이 내려앉은 순간, 사랑은 시작됐습니다. 소녀의 눈앞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지요. 아등바등 사느라 자주 놓치게 되는 당신의 낭만을 위하여, 잠시 헤드폰을 써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현실보단 노래 속의 꿈들이 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Dreams are my reality.[기자말]
 지코

지코 ⓒ KOZ엔터테인먼트

 
올해 1월에 발표한 '아무노래'로 상반기 가요계를 뒤흔든 지코(ZICO)가 지난 1일에 발표한 'Summer Hate'로 연속 홈런을 날렸다. 여름 앨범 < 랜덤박스(RANDOM BOX) >의 타이틀곡인 'Summer Hate'는 폭염에 몸과 마음이 지치고 불쾌해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 곡이다. 

"Good morning/ 하마터면 달 뜰 때까지 쿨쿨쿨 잠잘 뻔/ 택배 아저씨 초인종 소리에 기상 가까스로/ 부재중 전화 5통, 잠금 패턴 또 안 맞고/ 어제 남긴 피자는 맛없어 그냥 이나 닦자

Dazzling dazzling dazzling/ 세게 뙤약볕 내리쬐/ 아침형 인간들 진심으로 리스펙/ 불쾌지수 지붕킥/ Please give me some 시금치/ 움직일 엄두도 안 나"


보통 서머송이라고 하면 "우와! 여름이다~" 콘셉트의 신나는 바캉스 분위기의 곡이 많은데, 지코의 'Summer Hate'는 정반대다. 제목 그대로 여름이 싫다고 짜증내는 노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들으면 힘이 난다. 공감에서 비롯되는 위로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다 괜찮아"라고 말하며 대상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위로가 있는가 하면, 이 곡처럼 싫고 부정적인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 공감을 일으킴으로써 생겨나는 위로도 있다. 전자가 착한 아이의 이미지라면 후자는 장난꾸러기 아이 같은 이미지다.

만약 당신이 한여름 땡볕에서 친구와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고 가정해보자. "우와! 여름 너무 신나!"라고 웃으면서 말하기보단 "너무 더워서 힘도 없고 다 귀찮아"라며 툴툴대는 대화가 먼저 오갈 것이다. 사실 이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 여름하면 청량함을 떠올리는 공식에서 벗어나서, 더워서 짜증나는 '리얼한' 기분을 노래로 풀어낸 지코의 역발상이 재치 있다. 
    
"구시렁거리는 와중에/ 뭘 입고 나갈지 피팅 중이야/ 주차장은 또 왜 이리 멀어/ 발끝에서부터 힘이 쭉 빠져

몇 주째 내비는 먹통인 데다가/ 에어컨 바람마저 미지근하지/ I want to run way/ 미친 하루를 시작해/ 우예 차라리/ 비나 쏟아졌음 좋겠다"


아마 주차장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땡볕에 걸으려고 나서면 모든 게 다 멀게만 느껴지고 다리는 녹아내릴 듯 흐느적거린다. 백퍼센트 공감가는 가사다. 차에 시동을 켜자마자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올 리 없다. 그러나 화자는 지금 더워서 짜증이 나 있고 그런 이성따위 없다. 곧 시원해질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바람이 미지근하다고 구시렁거리는 게 너무도 익숙한 광경이 아닌가.

여름노래에 시원한 바다와 푸른 하늘이 나오지 않는데도 이토록 여름 분위기가 나다니. 이게 이 곡의 킬링 포인트다. 여름을 '미지근한 에어컨 바람'으로 표현하는 리얼리즘(?) 말이다. 

가수 비가 이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시너지를 냈다. "It's so freaking hot 땀이 삐질 나/ 서둘러 찾아야 돼 태양을 피할 방법/ 가는 곳마다 사람이 꽉 차/ 서울의 열기는 당최 식을 줄 몰라"라는 파트를 비가 가창하는데 비의 노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인용한 구절이 재밌게 들린다. 비는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해 지코와 장난꾸러기 소년들 같은 케미스트리를 선보였다. 

"I hate this summer day/ I hate this summer day

주말이 오기만 기다리는 것도/ 이제는 오래전 일/ 땀 흘리며 놀기엔 너무/ 안 받쳐 줘 체력이/ 네가 가라 하와이 Sorry/ 난 바닷물 Allergy/ 아쉬운 대로 여름 노래/ 크게 틀고 웹서핑"


바다로 서핑을 떠나는 게 아니라 웹서핑을 한다는 구절에서 웃음이 나온다. 이것 역시 너무 현실적이어서. 마음 먹고 휴가를 떠나면 바다를 찾지만, 일상의 여름은 도시의 후끈함과 함께이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더우면 야외활동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웹을 서핑하는데, 이런 포인트를 캐치해낸 게 신선하다. 

"Exit exit 인터넷 창 열면 더 숨 막혀/ 무슨 영문인지 모조리 뿔났어/ That's not cool, how about you?/ 일단 냉수 한 잔 쭉/ 시간 참 더럽게 안 가"

웹서핑도 그리 시원하진 않은 모양이다. 사람들이 무슨 영문인지 모조리 뿔나있는 것 같다는 구절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약간의 시선도 스며있는 듯하다. 가사는 뒤로 갈수록 더 솔직해진다. 그래서 시원해진다.

"헬게이트 열렸네 활짝/ 오렌지색 도시는 반짝/ 참았던 짜증이 왈칵!/ 다들 애써 즐기는 척/ 재고 있지 탈주각 Right?"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둘러보면 여름을 다들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나만 찌들어 있는 것 같아 외로워지기도 한다. 지코는 이 포인트를 꼬집으며 다들 '애써' 즐기는 척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하긴, 내 주위만 보더라도 여름이란 계절을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더워서 미칠 것 같다고.

뮤직비디오도 서울의 남산N타워를 비추며 시작한다. 확실히 이건 현실판 여름이자, 도시인이 겪는 평일의 여름인 것이다. 이런 날것의 마음들을 가사로 풀어낸 'Summer Hate'는 더위를 피하는 게 아니라 더위와 '맞짱 뜨는' 전술로 이열치열의 해법을 던진다. 들으면 같이 지치고, 같이 '에라 모르겠다' 싶어진다. 그래서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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