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형 때문에 담배 배웠어요', '형 때문에 오토바이 사고 났어요', 이런 얘기들. 멋있었어, 그 얘기인데 저는 그런 얘기가 굉장히 미안하더라고요, 아프더라고요. (<비트> 이후에) 어떤 영화의 캐릭터를 만나서 구현하고 어떤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조금 다른 확장된 시선의 선택들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아요." (29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정우성)

정우성은 한때 영화 <비트>의 '민'이었다. 비틀즈의 'Let it be'를 배경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민, 아니 정우성은 X세대 청춘의 초상이었다. 그때가 1997년 그러니까 20세기 세기말이었고, <비트>와 정우성은 일종의 사회적 아이콘이 됐다.

그렇게 정우성은 지금은 사라진 표현인 '반항아'의 표상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고 자란 10대가, 그 당시 담배를 배우고 오토바이를 배우던 대학생들이 어느덧 40대가 됐다. 그 '<비트> 세대'가, 그 아이들이 이제 사회에서 경력을 쌓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사회적 영향력과 책무를 지닌 '어른'이 된 것이다. 

같은 방송에서 정우성이 배우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많은 영향력을 내포하는 직업"이라며 "영향력의 무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잘 지켜나가야겠다는 책임감, 주인의식이 이런 것들이 있다 보니 부담감이나 이런 의미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 것도 그런 어른으로서의 책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넘은 2020년, 그 <비트>의 '민'이 '대통령 정우성'으로 돌아왔다. 29일 개봉한 <강철비2: 정상회담>을 통해서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만난 한국과 미국, 북한의 세 정상이 납치, 북한의 핵잠수함 안에 인질로 갇히는 과정을 그린 이 정치 스릴러에서 정우성은 한국의 정상을 연기했다.

2010년대 들어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인권 운동에 참여했던 배우 조지 클루니가 영화 <킹메이커>(2011)에서 미 주지사 역할을 연기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라고 할까. 실제로 2010년대 중반 조지 클루니의 대선 출마설이 흘러 나왔고 본인 역시 정치에 관심을 보이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6년째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정우성에게도 엇비슷한 질문이 나왔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앞서 28일 tbs라디오 <아닌 밤중에 주진우>에 출연, 양우석 감독과 함께 <강철비2>의 개봉을 홍보하던 자리였다.

대통령 정우성
 
 영화 <강철비2 : 정상회담> 스틸 컷

영화 <강철비2 : 정상회담> 스틸 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잠시 잠깐 당황했을까. 진행자가 "대선 출마 생각 전혀 없죠?", "대통령 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청취자들의 질문을 읽어내려갔고, "농담이 지나치다"며 일축하던 정우성도 "비주얼로 대통령 뽑아서 전 세계에 내놓고 싶다"는 청취자의 장난기 섞인 반응에 이런 대답을 내놨다.

"잠깐... 비쳐지기는 아주, 잠깐 좋을 수 있겠지만, 바람직한 선택은 아닌 듯한데요."

하지만 <변호인>,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이 구축한 <강철비2> 속 캐릭터가, 극적 상황이 그리 단순한 연기를 요하진 않았을 터. 지난 23일 열린 언론시사회 당시 "영화를 두 번째 봤다. 감정이 치고 올라왔다"며 눈물을 글썽인 정우성의 모습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우성은 '대한민국 대통령' 연기에 몰입했던 과정을 이렇게 소회했다.

"세 정상이 회담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을 찍고 쉬는 시간에, 너무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답답하더라고요. 지금 대한민국의 지도자라는 사람은 분단 문제에 있어서 당사자이면서도 당사자가 될 수 없는, 중재자밖에 될 수 없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정말 힘든 직업이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28일 tbs라디오 <아닌 밤중에 주진우> 중에서)

그런 연기를 지켜봤을 양우석 감독은 "시사회 때 (정우성이) 울컥한 것도 그런 감정이 모여서"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미 6차까지 정상회담이 이뤄졌는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한반도를 봐야할지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던 정우성은 남북 문제에 대해 한층 더 나아간 고민을 내놨다. 이미 수 년 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진지하게 활동해 온 이가 할 법한 고민이었다.

"어떤 한 정치적 결단의 문제만은 아니잖아요. 우리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당사자이잖아요. 그런데 당사자란 망각이 있잖아요. 그리고 이제 그 분단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얼마나 많은 한 맺힌 울분과 고통이 있어요.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분단 이야기인데, 그런 것들을 두루 생각해 봤을 때 우리 스스로에 대한 연민을 우리는 얼마나 갖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했었죠."

tvN 방송에서 정우성은 유재석에게 배우란 직업의 가치를 설명하며 "영향력의 무게"란 표현을 썼다. '유튜브 라이브'로 생중계된 <아닌 밤중에 주진우에서> 정우성은 이에 대해 좀 더 긴 버전의 '현답'을 내놨다. 영화 <구미호>로 데뷔한 27년 차 배우의 입에서 강조된 "인형이죠, 인형"이란 표현이 무척이나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직업이 세상의 사랑을 받는 직업이잖아요. 그로 인해 존재가치가 커지는 거고. 그러니까 끝없이 세상에 관심을 갖고 세상을 알아야겠죠. 세상과 공감을 할 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야 제가 영화에서 연기를 할 때도 교감이 가능하지, 사랑을 받기만 하고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고 관심이 없으면, 인형이죠 인형."

어른 정우성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TV나 라디오 방송에서 모두 변함없는, "열일"하는 정우성의 외모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유재석이 직접 읽은 "오빠 얼굴은 왜 맨날 열일해요, 근로기준법 위반이에요"란 댓글이 대표적이었다.

반면 유엔난민기구 활동으로 인해 달리는 '악플' 역시 상당할 터. 기분이 상할 법 하지만, '인권문제, 가슴 아픈 사람들 얘기할 때 악플다는 사람들 많아서 가슴 아프다'는 질문에 정우성은 의외의 답을 내놨다. 그가 찾은 지론은 즉자적인 반목이 아닌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한 시간의 필요성이었다.

"아니에요, 화는 안 나고요. 왜냐하면, 배우로서나 영화 관련해서 댓글은 일일이 찾아보지 않는데 난민 기구 관련한 인터뷰는 다 찾아 볼 수밖에 없어요.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오해로 인해서, 그 오해가 확신으로 굳어져서 두려움으로 바뀔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건 당연한 거고. 그런 오해와 이해의 불충분을 풀어나가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불이해가 나쁜 건 아니니까요(...).

우리도 국제사회의 일원이고 그들의 문제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문제라 생각할 수 없으니까. 모든 게 다 연결돼 있는 세상이잖아요. 어떤 지구상 분쟁은 다른 곳에서 부작용으로 터지기 때문에,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문제예요."


정작 정우성이 발끈한 대목은 따로 있었다. "연예인이 왜 그래"라는, 연예인에 대한 고정관념 말이다. 2018년 제주 예맨 난민 사태를 거치며, 대한민국 연예인 중 그 누구보다 이러한 비판에 직면했던 것이 바로 정우성이었다. 배우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불편해 하는 이들에 대해, 정우성은 꽤나 단호했다.

"그런 사고가 구시대적인 사고(죠). 배우 이전에 한 시민이자 국민이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져야 하고, 한 해 한 해 나이 먹어가는 기성세대이고. 그렇기 때문에 침묵하고, '내가 배우라서 난 가만히 있어도 돼', 라고 한다면, 세상의 일원이기를 포기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본분, 시민으로서의 나의 책임을 눈감고 지내는 삶이 아닐까요."

정우성의 표현처럼,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배우로서의 연륜 뿐 아니라 사회적 책무에 좀 더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동료 배우의 실명을 거론하긴 그렇지만, 그런 배우들은 필모그래피에 평소 지론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정우성의 경우, <강철비> 연작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그에게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을 안겨준 영화 <증인> 속 '착한, 아니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변호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양 감독은 이를 두고 "정우성 배우가 바르고 착한 역할을 했을 때, 너무 잘생겼다는 (영화적) '장애'가 금방 상쇄되고 금방 몰입된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우성이 대통령'이란 설정이 비현실적이란 토로에 대한 답이었다.

그렇게, <비트>의 담배 피우고 오토바이 타던 '민이 형'이 어른으로서의,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강조하는 '대통령을 연기하는' 배우 정우성이 됐다. 당신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겠느냐는 질문과 함께. 그리고, <강철비2>는 29일 하루 22만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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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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