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우스개로 세상에는 공짜, 비밀,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이 위트가 가족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tvN 월화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잔잔하면서도 뭉클하게 전해준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포스터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포스터 ⓒ tvN

 
공짜는 없다

보통의 성인이 사랑을 한다면 자연스레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큰 무리가 없다면 대체로 결혼을 하고 가족이 된다. 함께 있어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이 관계는 곧 '착각'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체감케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희미해지고 의무는 강렬해진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 맺는 관계는 '가족'이다. 그 관계에는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과정은 만족보다는 불만족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부모는 늘 사랑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선택권을 제한한다.

가족이 되는 과정에는 우연과 운명이 공존하며 애정과 함께 의무가 주어진다. 소위, '지지고 볶으며' 공유하는 일상은 눈물나게 아름다운 우연에 감사와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짜증을 동시에 만들기 마련이다. 양면은 동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가족이 주는 상처는 더 아프다.

그럼에도, 가족이란 관계에는 이상이 존재한다. '가족이기 때문에'란 말은 수많은 사연과 이유를 따지지 않는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진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것 같은 이 관계는 아무런 노력 없이는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다.

tvN 월화드라마 <가족입니다>의 최종회, 진숙(원미경 분)은 삼남매를 앞에 두고 그간 감춰두었던 서운하고 미운 감정을 표현한다.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졸혼을 결심한 진숙은 자식들에 대한 실망으로 실행하기에 이른다. 은주(추자현 분), 은희(김은희 분), 지우(신재하 분)는 엄마나 아빠가 자신들의 행동에 느낄 감정을 미처 배려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감정에 충실했다.

가족에 대한 이상의 바탕이자 대표 주자는 모성애이다. 그러나, 모성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한 모성은 허구이다. 피와 살을 가진 모성은 진숙이 그러하듯 사랑하는 동시에 아파한다. 엄마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배려받지 못한다 느끼면 당연하듯 주었던 사랑이 아깝고 억울해진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 tvN

 
혹여 그 억울함이 오해에 의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풀지 못한다면 서운함이 쌓인다. 오랫동안 서로의 마음을 감춰온 상식(장진영 분)과 진숙의 관계는 상대에게 독심술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때로 혼자만의 결론으로 성난 마음을 내색하지 않는 가장된 평화보다는 차라리 왜 그랬냐고 싸우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가족 간의 사랑과 이해에도 대가가 따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받았다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며, 잘못했다면 사과하는 것이 순리이다. 이 계산은 통상의 회계 처리와는 차이가 난다.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지불 수단이 된다. 부모이건 자식이건 가족의 이해와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며 공으로 먹는다면 언젠가는 체하기 마련이다. 그 통증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아 그랬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밀은 없다

드라마 <가족입니다>의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하나씩 품고 있다. 진숙과 상식은 은희가 상식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남매들에게 말하지 않고 있었다. 상식은 가족들에게 영식(조완기 분)과 관련한 사고를 숨기고 있었다. 태형(김태훈 분)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긴 채 은주와 결혼했다. 찬혁(김지석 분)은 형이 사고로 죽은 일을 오랜 친구 은희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있었다.

비밀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많은 경우 비밀이 곧 '허물'이거나 '상처'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잘못이 아니라도 당당하게 밝힐 수 없어서, 또다른 상처를 만드느니 홀로 감내하기 위해서, 말하기는 것조차도 너무나 아파서 등 비밀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드라마는 이 비밀들이 밝혀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삶의 많은 순간들은 비밀로 접근 가능한 치트키를 숨겨놓고 있다. 비밀 자체가 아니더라도 비밀과 관련된 내용이 단 한번도 표현되지 않는 비밀이란 존재할 수 없다. 좁게는 한 번의 눈짓에서, 한 마디의 말 속에서, 보통과 다른 이상한 행동에서, 넓게는 허물의 반복과 상처의 확장과 재생산 등으로, 비밀은 지속적으로 그 낌새를 드러낸다.

비밀의 본질은 감춰지는 데 있기보다는 밝혀지는 데 있다. 아이러니하게 비밀은 드러나기 위해 존재한다.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이라면, 영원히 감추고 싶은 비밀이라면 타인이 드러내는 표식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망각하는 수밖에 없다. 마치 상식의 기억상실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도처에 존재할 목격자와 관련자는 어찌할 수가 없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 tvN

 
비밀은 비밀이 가진 내용 자체뿐만 아니라 비밀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도 상처를 만든다. 특히, 잘못을 숨기기 위해 감추었던 비밀은 그동안 기만당했다는 상대의 분노까지 더해져 그 상처가 더욱 크다. 잘못을 감추는 비밀이 상대를 위한 것이었다는 말은 엄밀히 본다면 핑계의 하나다. 몰랐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명목은 비밀을 가진 자의 의도대로 상황을 통제하려는 욕심일 뿐이다.

허나, 매순간 모든 것을 떳떳히 밝힐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의도치 않은 고통과 혼란 속에서 잠시의 시간은 필요할 수 있다. 사과조차 할 수 없었다는, 은주를 향한 태형의 진심어린 사죄는 비밀이 만든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은주가 진숙에게 친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은희는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그런 은희에게 은주는 그냥 있으라며 이제는 그러지 말자고 한다. 어차피 밝혀질 일들을 부러 숨겨 비밀의 존재와 내용이 만들어내는 이중의 상처를 더하는 짓을 이제는 멈추자는 의미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비밀이 있으며, 모든 비밀을 밝히라는 것은 강요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알아야 할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 드러날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 솔직하지 못한 가정도 평온할 수 있다. 그 평온은 가족 모두의 아픔을 감추고 만들어진다.

생각해 보면, 밝히든 감추든 불행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밝혀진다하여 뾰족한 수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숨겨진 상태로는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가 없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한다는 오해 속에서 진숙과 상식이 흘러보낸 시간은, 지금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감추느라 전전긍긍하며 반목한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성실한 아버지와 따뜻한 어머니, 책임감 강한 첫째와 인정 많은 둘째, 애교 많은 셋째, tvN 월화드라마 <가족입니다>의 가족이다. 자녀 수가 적어진 요즘을 감안하더라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다. 문제가 없는 가족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런 보통의 가족은 그저 좋아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살을 생각하고, 어머니는 졸혼을 선언한다. 첫째 딸은 이혼을 하고, 둘째 딸은 애인이 있는 바람둥이와 연애를 하고, 셋째 아들은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며 외국으로 떠나버린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콩가루 집안'이다. 열거된 사실 그 자체만으로는 다소 경악스럽지만 드라마의 진행은 그다지 경악스럽지 않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런저런 사연이 없는 평탄한 가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 tvN

 
다행스럽게도 드라마의 가족은 갈등 후에 '나'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을 적당히 조율하는 방법을 터득한 듯 보인다. 상식과 진숙의 소원했던 초반의 가족 관계를 드러내는 듯했던 널따란 거실은, '나'의 영역이 인정되어야 가족의 행복 또한 보장될 수 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부대끼는 것이 가족이라지만 갑갑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일정한 간격이 필요하다.

드라마는 각자의 자리에서 화목을 되찾는 엔딩을 보여주지만, 사실 실제의 가족 관계에 '해피엔딩'이 존재할 수는 없다. 천일야화와 같은 끝도 없을 이야기가 어느 가족에게나 이어진다. 또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여주고 치유받는 드라마의 해법이 바람직하더라도 모든 가족들에게 통용될 수는 없다. 각자의 사연에 걸맞은 저마다의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드라마 속 또다른 가족, 은주와 태형은 이혼을 한다. 이들은 서로를 여전히 위하지만 그 마음만으로 가족의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다. 이들은 비록 서류로 엮인 가족은 아니지만, 어디서든 서로를 응원하는 관계로 남는다. 친아버지를 만난 은주의 모습은 가족이란 관계가 곧 혈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굳이 가족이란 말을 붙이지 않아도 어디서든 심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관계를 영속시키는 긍정적인 힘일 것이다.

은주와 태형은 또다른 상대를 만나 새로운 가족을 이룰 수 있다. 해체된 가족은 그 해체를 지속할 수도, 언제든 새로운 결합을 할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가족을 이루든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가족을 이루고 싶은 소망의 가부를 결정할 권리는 당사자들에게 있다. (성인들의 선택이라면) 누군가의 가족이 사회 통념상 다소 논란이 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매우 단순한 사실이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 tvN

 
은희와 찬혁은 친구였다가 연인이 된다. 이들은 곧 가족이란 관계로 묶일 수도 있다. 찬혁을 향한 "가족보다 네가 더 날 잘 아는 것 같아"라는 은희의 말은 곧 다른 말로 대체될 수도 있다. 더 잘 아는 만큼 상처도 깊게 줄 수 있다. 밀착된 은희와 찬혁의 현재의 관계는 '거리 두기'는 생각할 수 없게 한다.

만약, 가족이 된다면 예고가 없더라도 예상되는 갈등을 이들은 어떻게 풀어나갈까. 공짜도 비밀도 정답도 없다는 세상의 유머를 기억한다면 조금은 접근이 쉬워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선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