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과 비> 스틸 컷

<바람과 구름과 비> 스틸 컷 ⓒ TV조선

 
지난 5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TV조선 토일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가 21회를 끝으로 26일 막을 내렸다. 수려한 연출과 일관성 있는 작품 전개로 평균 5%를 넘는 시청률을 올린 이 작품은 그동안 작품성 있는 사극에 목말라 하던 시청자들의 갈증을 달래주기 충분했다. 

이병주 원작의 소설을 21부의 드라마로 각색한 <바람과 구름과 비>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왕좌의 꿈을 꾸었던 점쟁이 최천중의 야심으로 시작된 원작 소설을 강직한 강화군수인 아버지를 둔 양반가 자제였지만 권문 세가의 야욕에 희생되어 멸문지화의 위기에 몰린 최천중(박시후 분)이란 인물로 새로이 각색해내며 시작되었다.

드라마 속 최천중은 과거에 급제했던 총명한 선비였으나 요절할 운명이라는 산수도인의 예언으로 인해 관직에 나가는 대신 강화 군수인 아버지를 돕는다. 그러나 장동 김문의 모략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 자신도 생명이 위태롭게 되자, 자신의 운명에 맞서기 위해 '사주 명리학'을 무기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몇 년 후 한양에 나타난 최천중은 자신의 세 치 혀로 권문세가 김문은 물론, 대왕대비 조씨, 그리고 상갓집의 개처럼 지내던 야인 대원군(전광렬 분)을 사로잡는다. 

자신을 멸문지화로 삼은 장동 김문에 복수를 하는 대신 자신의 손으로 제대로 된 권력을 세우겠다는 포부를 갖게된 최천중은 진정 백성을 위하는 왕을 옹립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눈에 띈 왕재는 바로 대원군, 그리고 그의 아들 고종이었다. 마치 '도원결의'를 하듯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대원군과 손을 맞잡은 최천중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 고종을 왕위에 등극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권문 세가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그런 그의 꿈은 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내세우며 모든 권력을 장악해가면서 균열이 생긴다. 또한 왕권에, 아니 자신의 손아귀에 권력을 집중하고자 하는 대원군의 눈에 가난한 백성들을 도우려 동분서주하는 최천중은 동지처럼 여겨졌지만, 최천중이 만든 '삼전도장'에 갈 곳 없는 백성들이 모여들고 그들이 최천중을 '왕'처럼 의지하자 '권력'의 위험 요소로 보기 시작한다. 심지어 대원군이 탄압하는 천주교인에 외국인까지 최천중의 그늘로 숨어들자 대원군의 의심은 극에 달한다. 최천중의 '애민심'이 대원군의 눈에는 또 다른 권력 의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옹립한 대원군 암살에 나선 최천중 

결국 대원군에 의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 최천중은 그를 피해 3년간의 외유 생활을 한다. 그리고 돌아와 자신이 옹립한 권력 대원군을 '척결'하고자 한다. 그를 위해 훗날 '명성황후'가 되는 민자영을 돕는 한편, 중신들과 대비와 도모 대원군을 '제거'하고자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그가 최후에 선택한 방법 대원군을 제거하는 것이다. 

21회, 영길리에서 배운 기술을 통해 대원군의 잔칫상에 놓인 거문고에 화약을 숨기고, 거기에 술을 흘려 폭발을 시도한 최천중. 하지만 '대의'를 앞둔 그의 눈 앞으로 어린 소녀들이 지나간다. 눈으로 소녀들을 쫓던 최천중은 스스로 다시 뛰어들어가 거문고를 멀리 던져 버린다. 화약은 폭발했지만 최천중이 던져버린 덕분에 대원군은 목숨을 구하게 되고 최천중은 팔과 다리가 잘린 채 효수될 처지에 놓인다. 

자신이 벌인 '암살 시도'를 스스로 무위로 돌려버린 최천중. 이 어이없는 상황은 주인공 캐릭터의 '자멸'이었을까? 아니 외려, <바람과 구름과 비>는 실제 '역사' 속에서 가상의 영웅 최천중을 통해 주제를 전달하고자 한다. 

앞서 20회, 최천중은 궁정에서 대원군을 축출하려 했지만, 그의  의도를 누설한 김병학으로 인해 실패하고 만다. 그런 최천중에게 대원군은 자신과 다시 한번 함께 할 것을 권유하고, 그는 대원군의 명에 따라 병인양요가 일어난 강화로 향한다. 대원군의 청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전쟁터로 가겠다는 최천중은 처형장에서 죽을 위기에 놓인 자신의 오랜 연적 채인규(성혁 분)를 동행한다. 그리고 그의 도주를 눈감아 준다. 

자기 주변에 있는 그 누구라도 더는 죽음을 당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최천중에게 오랫동안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옛 벗 채인규도 예외 대상이 아니었다. 그뿐이 아니다. 최천중은 자신의 오른팔과 다름없는 용팔용(조복래 분)을 잡아간 대원군의 앞에서 기꺼이 무릎을 끓는다. 그런 최천중이었기에 대원군의 목숨이라는 대의 대신, 기꺼이 희생양이 될 뻔한 두 소녀의 목숨을 앞세운 것이다. 지금까지 '대의명분'을 앞세웠던 '역사적 인물', '영웅'이라 일컬어진 사람들의 행보와 다른 길을 간 것이다.

대원군을 암살하러 갈 때에도 앞장섰던 최천중은 자신이 실패할 때를 대비하여 그와 함께 했던, 자신을 따랐던 사람들을 도피시킬 장소를 마련해 놓는다. 그런 그들이 힘을 합쳐 최천중을 구했지만 그는 그들을 연해주로 보내고 홀로 대원군을 찾아가 마지막 총구를 겨눈다. 

실패한 영웅, 최천중의 길 
 
 <바람과 구름과 비> 스틸 컷

<바람과 구름과 비> 스틸 컷 ⓒ TV조선


그 마지막 대결에서 최천중은 한때는 뜻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적'이 되어버린 자신과 대원군의 길이 다른 이유를 말한다. 대원군이 '왕권' 중심의 '왕권 강화'를 일관되게 고집하고, 그를 위해 다시 한번 자신과 손을 맞잡을 수 없겠냐며 애증의 권유를 하지만, 최천중은 말한다. 이제야 자신은 진정한 '왕재'를 보았다고. 늘 최천중이 다른 권력에 대한 야욕이 있을까 두려워했던 대원군은 그 말에 눈이 번쩍하지만, 최천중이 말한 '왕재'는 다름 아닌, '민중', '백성'이었다. 

명리학을 통해 권문 세가를 징벌하고 백성들을 위한 왕으로 고종과 그의 아비 대원군을 도왔던 최천중. 강화의 백성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애썼던 아버지를 도왔던 이래, 최천중의 화두는 늘 '백성'이었다. 그 백성을 위한 정치를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그가 도달한 곳은 한 사람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왕'에 의해 다스림을 받지 않는, '백성'들이 주체가 되는 '나라'였다. 왕조국가의 '지양', '민주주의'에 대한 '자생적'인 깨달음이자 '지향'을 '선포'한 것이다. 

<바람과 구름과 비>는 최천중이 백성들을 위하는 정치를 찾기 위해 대원군도, 명성황후도 도왔지만, 그들이 결국 도달한 곳은 '백성'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리고 최천중이라는 이상적인 개혁가를 통해 '민주주의의 탄생'을 예언한다. 

그리고 그 예언은 그저 '예언'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살리려 하는 한 사람(비록 그가 자신의 적이었든, 지나가다 본 가엾은 가족이었든, 혹은 적을 죽이러 들어간 암살의 현장에 등장한 소녀였든)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경애를 일관되게 보여주며, 민주주의 주체가 진짜 누구인가를 드러낸다. 

역사적 사실을 빗겨갈 수 없듯이 가상 인물인 최천중에 의한 대원군 암살은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실패였을까? 우여곡절 끝에 목숨을 거둔 최천중은 그가 일찍이 마련해 놓은 연길리의 조선인 마을로 돌아간다. 이미 그곳에는 그를 따르던 삼전도장 사람들이 '마을'을 일구고 그가 미리 써놓은 '지침'에 따라 이제 '학교'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 결국 '조선'이라는 난파선에서 최천중이라는 부표를 따라 간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란 암시를 주며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그들만이 아니다. 강화도에서 그가 살려준 소녀의 이름은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였다. 그렇게 '최천중'은 이제 망해갈 조선 구하기에 앞장 설 독립 운동의 씨앗을 뿌렸다고 드라마는 덧붙인다. 이렇게 <바람과 구름과 비>는 그간 역사물이 말해왔던 '영웅'과는 다른 영웅담을 논한다.

최천중은 실패했다. 그는 백성을 위한 권력을 옹립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 그는 실패한 것일까? '거사'는 실패했지만, 최천중은 망해갈 조선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했다. 드라마는 그런 최천중의 실패한 성공을 통해 진짜 영웅에 대해 묻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바람과 구름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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