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실패하는 것은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보다 강하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개혁 주체 내부에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의 등장인물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개혁이 끝내 실패한 것도 상당부분은 개혁 세력의 내부 문제에 기인한 것이었다.
 
대원군의 개혁이 실패한 것은 동아시아가 서양에 굴복하는 서세동점이라는 세계사적 조류 때문이기도 하고, 개혁의 수장인 대원군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인 섭정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우군 세력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점 또는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점도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다.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소규모 집단은 몰라도 국가 같은 대규모 집단의 개혁은 지도자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우군 세력 혹은 개혁 주체의 역량이나 결속력이 그 성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복잡한 구도 속 정권 확보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한장면.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한장면. ⓒ TV조선

 
<바람과 구름과 비> 속의 흥선대원군(전광렬 분)은 조 대비로 불리는 신정왕후 조씨(김보연 분)의 지원과 더불어 가상의 역술가인 최천중(박시후 분)의 헌신에 힘입어 아들 고종(박상훈 분)을 왕위에 앉히고 이를 토대로 섭정 자격을 얻게 됐다.
 
이에 더해, 왕족인 종친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왕조 국가의 정치 시스템도 대원군의 권력 획득에 크게 이바지했다. 드라마 속의 대원군은 그런 시스템 속에서 신정왕후·최천중의 지원, 그리고 아들 고종의 존재에 힘입어 최고 권력에 다가서게 됐다. 이런 배경에 힘입어 드라마 속의 대원군은 조선왕조를 뒤흔들 일대 개혁에 착수하게 됐다.
 
실제의 흥선대원군은 드라마보다 복잡한 구도 속에서 1864년에 정권을 확보했다. 신정왕후의 지원, 신정왕후의 친정이자 과거의 세도가문인 풍양 조씨, 고종 등극 직전까지의 세도가문인 안동 김씨 일부 세력의 도움이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런 가운데, 그는 수렴청정(대리통치) 권한을 가진 신정왕후의 위임을 받아 섭정 자격으로 나라를 이끌게 됐다.
 
그렇게 해서 권력을 갖게 된 대원군은 외척(왕실 사돈) 출신의 세도가문을 약화시키고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세도가문들은 대다수 양반층을 배제하고 권력을 독차지한 뒤 서민층을 수탈하는 방법으로 권세를 공고히 했다. 그래서 이들의 힘을 빼는 방향으로 전개된 대원군의 개혁은 서민층은 물론이고 선비층의 지지까지 얻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대원군은 안동 김씨 일부 및 풍양 조씨와의 협력을 토대로 그 목표에 도달하고자 했다. 세도가문을 약화시키는 개혁 정치를 추구하면서, 다른 가문도 아닌 세도가문 출신들을 핵심적인 우군 세력으로 뒀던 것이다.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할 사람들을 개혁 주체의 자리에 앉혔던 것이다. 그래서 대원군의 개혁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출발점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개혁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약해지고 군주권이 강해지는 양상이 그의 집권기에 나타났다. 1800년 정조 임금의 사망 이래로 국정 운영의 주역이었던 세도가문들이 역사 무대에서 퇴장하게 됐다.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출발한 대원군의 개혁이 기대 외의 상당한 결실에 도달한 것이다.
 
이는 대원군이 훗날 개화파의 구심점이 될 박규수 같은 신진 인물과 더불어 비주류 당파인 남인당·북인당 등을 중용해 자파 세력을 어느 정도 구축한 결과이기도 하고, 대원군의 강력한 의지와 정치적 수완 등이 개혁 작업에 유리하게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 세도정치의 폐해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그만큼 누적돼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색에 잠긴 흥선대원군.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의 운현궁에서 찍은 사진.

사색에 잠긴 흥선대원군.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의 운현궁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정치적 패자로 역사에 남다

그처럼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인데도, 흥선대원군은 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정치적 패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정권을 잡은 지 9년 만인 1873년에 실각하게 됐고, 이로 인해 자신이 추구한 정책적 기조가 부정되는 장면들을 지켜봐야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개혁을 실패로 몰아간 요인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내부적 요인은, 개혁 의지를 공유할 강력한 주체 세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조 대비, 풍양 조씨, 안동 김씨의 지원에 힘입어 정권을 잡은 그는 머지않아 그들과 척을 지게 됐다. 세도가문을 약화시키겠다는 목표를 수립한 이상, 그들과의 협력 관계가 오래 유지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었다.
 
거기다가 대원군이 육성한 신진 그룹도 그의 집권기 내에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그가 짊어져야 할 어깨의 짐이 한층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우리 머릿속에 대원군 한 사람만 주로 기억되고 그의 동지들이 별로 기억되지 않는 것은 그의 개혁이 상당부분은 그 한 사람의 노력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혁의 대의에 공감하는 세력과 함께 역할을 분담해 개혁을 추진하는 일이 쉽지 않다 보니, 그는 더욱 더 자신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그가 권위주의적인 인물로 비치게 만든 원인이 됐다. 이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적들이 그의 주변에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더해, 그는 잠재적 우군세력인 선비층을 적으로 돌리는 불운까지 맞게 됐다. 세도정치 타파는 서민층은 물론이고 유림층에도 절실한 과제였다. 이것은 세도가문들에 억눌려 국정 참여의 기회가 축소 혹은 봉쇄된 선비층에게도 하나의 커다란 숙원이었다.
 
그래서 대원군의 '세도정치 타파'는 유림들의 지지를 얻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유림층이 조선시대의 최대 오피니언 그룹이었으니, 이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면 대원군은 좀더 유리한 고지에서 싸움을 전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충분한 우군 세력이 형성되기도 전에 싸움의 전선을 확대하는 과오를 범했다. 세도정치 타파에 이어 기득권층 타파의 일환으로 그 유명한 서원 철폐를 단행한 것이 결과적으로 화근이 되고 말았다.
 
서원 철폐는 물론 잘한 일이었다. 그것은 서원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득권층을 상대로 타격을 입히는 일이었다. 서원의 약화는 조선 왕실의 오랜 숙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서원은 선비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부조리가 생기는 곳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회의 동량들을 키워내는 곳이기도 했다. 우군 세력이 견고하지 못한 대원군은 서원 철폐의 단행으로 인해 대다수 선비들을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준비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너무 큰 세력을 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우군 세력이 공고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대 오피니언 그룹을 적으로 돌렸으니, 그의 개혁이 성공할 가능성은 한층 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할 사람들을 우군 세력으로 삼아 개혁을 추진한 그는 결국 우군들과 알력을 빚게 됐다. 또 자파 세력을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개혁의 동력이 될 만큼의 강력한 자파 세력을 육성하는 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우군이 될 수도 있었던 유림 세력을 너무 허망하게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이런 상태에서, 최고의 동지여야 할 그의 아들 고종마저 그에게 등을 돌리는 사태가 1873년에 발생했다. 이 때문에 대원군은 뜻하지 않게 강제 하야를 당하고 말았다.
 
대원군의 권력은 고종의 왕권에 법적 기반을 두고 있었다. 대원군이 철석 같이 믿었던 아들 고종이 자기 세력을 구축해 아버지를 외면함에 따라, 대원군은 순식간에 권력을 잃게 됐다. 우군 세력을 철저히 단속하지 못한 그의 불철저함이 그의 정치적 실각과 개혁 좌초를 초래하는 결정적 원인 중 하나가 됐던 것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개혁은 시대적 당위성을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개혁은 꼭 성공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개혁을 주도할 주체 세력이 공고하지 않은 탓에 그 개혁은 결국 좌초됐다.
 
대원군은 우군 세력 혹은 개혁 주체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고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도 실패했다. 그래서 자신의 '개인 플레이'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흥선대원군의 개혁을 실패로 몰아간 내적 요인 중 하나였다. 좋게 표현하면, 그는 '너무 고독한 개혁가'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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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저서: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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