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기자말]
얇은 커튼을 뚫고 거실 전체에 퍼지는 따스한 햇살. 가족의 오랜 추억이 묻어 있는 가구와 사진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 의 마지막 장면을 가득 채운 건 이토록 환하고 따스한 거실이었다. 

엄마 진숙(원미경)의 졸혼 선언과 아빠 상식(정진영)의 사고 후 가족 구성원의 충격적인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휘청였던 이 드라마의 인물들. 출생의 비밀, 이혼, 아버지의 투병, 가출 등 어느 한 가지만 겪어도 가족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웠을 일들을 진숙과 상식, 은주(추자현), 은희(한예리), 지우(신재하)는 한꺼번에 겪어낸다. 

하지만 이 가족의 마무리는 마지막 장면 속 거실처럼 참으로 따스하고 밝았다. 마지막 회가 끝나갈 무렵 카메라에 담긴 활짝 웃는 진숙과 상식,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3남매의 모습은 모두 평화롭고도 열정적으로 보였다. 도대체 이 가족은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을 겪어내면서도 이처럼 따스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걸까? <가족입니다>의 인물들이 해피엔딩을 일궈낸 심리적 과정을 따라가 본다. 
 
 tvN <(아는 것은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마지막 장면. 거실을 전체를 감싼 햇살처럼 따스하게 마무리 됐다.

tvN <(아는 것은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마지막 장면. 거실을 전체를 감싼 햇살처럼 따스하게 마무리 됐다. ⓒ tvN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채 가정을 이룬 부모

드라마의 첫 회 이 가족의 표정을 기억하는가? 이 가족은 무척이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진숙은 잔뜩 짜증이 난 채 싱크대 앞에 서 있고, 상식은 묵은지를 내놓으라며 진숙에게 호통을 친다. 은희는 출근 중 엄마의 계속되는 전화를 마지못해 받고 은주는 뾰로통하게 식구들을 대한다. 막내 지우는 냉랭한 상식과 진숙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눈치를 보며 지낸다. 도대체 이들은 어쩌다 이토록 긴장감 도는 가족이 된 걸까? 

사실 이 가족의 시작에는 내면의 상처가 함께 했다. 대학생이었던 진숙은 결혼 전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원가족(자신이 성장한 가족)에게 버림을 받는다. 가족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을 진숙은 상식과의 결혼을 통해 이런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반면 가족의 사랑을 느껴볼 겨를도 없이 떠돌며 살아왔던 상식의 마음은 늘 공허했을 것이다. 진숙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겠지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진숙을 아내로 맞이한 데는 이 공허함을 메우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욕구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각자의 상처를 안은 채 시작된 진숙과 상식의 결혼생활은 '사랑에 빠지는 단계'가 지난 후부터 삐그덕대기 시작한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진숙에 비해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상식은 진숙이 떠날까봐 두려워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진숙은 이런 상식 때문에 숨이 막히지만, '갈 곳 없는 신세'라는 생각과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받아주었다는 미안함에 참고 또 참으며 '엄마로만' 살아내기로 다짐한다. 이렇게 진숙과 상식에겐 부부로서의 삶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대화조차 하지 않은 채 삼남매의 부모로서만 살아간다.

 상처받은 부모의 마음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자신들의 상처를 내버려 둔 채 부모로서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은주, 은희, 지우는 각자의 기질적 모습을 살려 이런 부모에게 적응해간다. 장녀 은주는 가족들과 선을 긋는다. 차갑고 냉랭한 표정으로 가족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장녀로서의 책임감은 가족이 힘들 때 경제적 부양자의 역할을 스스로 떠안게 한다. "가족이 지긋지긋해"라고 종종 중얼거리면서도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은주는 가족 안에서 자유로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은희는 은주와는 반대로 적응해간다. 타고난 싹싹한 성격으로 자신의 기분은 억누르고 가족들의 기분을 맞추며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다. 은희의 이런 행동에 길들여진 가족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가장 먼저 은희에게 알린다. 은희는 역시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회사에 휴가를 내서라도 달려간다. 이런 은희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늘 없다. 회사에서 "자신이 뭘 원하는 지 알기나 하냐"는 말을 들을 만큼 자기 자신을 돌보는데는 소홀하다. 이런 은희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 

막내 지우는 집 안의 분위기 메이커다. 분위기가 싸해질 때 썰렁한 농담도 던지고 실없이 헤헤 웃으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노력한다. 마음속으로는 집을 떠날 계획을 세우면서도 전혀 티 나지 않게 말이다. 가족을 떠나려다 사기만 당하고 돌아온 지우는 16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큰누나랑 있으면 큰누나처럼 냉정하려고 하고 작은 누나랑 있으면 통통 귀염귀염 굴려고 해. 그러다가 나는 없어진 거 같고 일생 막내로 사는 건가 고민을 좀 했어. 그래서 그런 일을 벌인거지." 지우 역시 가족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한 것이다. 
 
 은주와 은희를 비롯한 삼남매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가족 안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은주와 은희를 비롯한 삼남매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가족 안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 tvN

 
사건들을 통해 되살아 난 '나 자신' 

이렇게 '자기 자신'이 아닌 '가족 구성원'으로서만 살아가던 이들에게 하나씩 밝혀지는 가족의 비밀들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은주의 이혼과 출생의 비밀, 상식이 일으킨 교통사고와 그로 인해 꾸려진 새로운 가족 등 핵폭탄급 비밀들이 밝혀지면서 굳건했던 가족의 역동은 마침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가족 구성원 각자는 가족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보다 자기다운 모습을 찾아 나선다. 

상식은 자신이 열등감에 휩싸여 가족들에게 군림하려 했음을 깨닫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평생을 못난 나랑 싸운 것 같아요. 그대가 다시는 날지 못하게 선녀 옷을 몰래 숨겨 놓은 비겁한 놈 같아서."(13회) 이를 깨달은 후 그는 진숙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예전의 '멋진 청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더 이상 진숙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 삶을 꾸려가며 보다 독립된 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상식의 진심을 알게 된 진숙 역시 상식에게 마음을 열고 순종적인 아내로 살면서 속으로는 분노를 품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에 대한 상식의 수용은 진숙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감정에 더욱 솔직해지게 했을 것이다. 마침내 진숙은 15회 자녀들에게 대한 서운함을 표현한다.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눈치 보는' 자신의 모습까지 성찰한다. 그리고 상식에게 이렇게 말한다. "좀 전에 내 속이 그렇게 무너지는데도 애들하고 당신 눈치가 보였어. 그렇게 살아서 그렇겠지."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오늘은 애들이 밉더라고."(16회) 마침내 진숙은 가족을 위해 사느라 잊었던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은주는 태형(김태훈)과 이혼 과정을 거치면서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에 눈을 뜬다. 아들의 성정체성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태형의 부모에게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12회)라고 말했던 은주는 태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도 수용해 간다. 진숙이 밝힌 출생의 비밀도 수용해내고 친아버지의 차가운 모습도 감당해내며 그런 자신의 모습을 판단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좀 더 많이 웃으며 열정적으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은희 역시 가족 문제에 대해 찬혁(김지석)과 함께 나누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깨닫는다.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진 은희는 일에서의 자신의 욕망도 깨닫는다. 이에 독립출판을 열어 자신만의 삶을 찾아간다. 지우 역시 가출 사건으로 꽁꽁 숨겨 놓았던 속마음을 가족에게 들킨 후, 보다 시원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시간을 모두 가족을 위해 썼던 진숙은 마침내 자기 자신을 찾아 집을 떠난다.

자신의 시간을 모두 가족을 위해 썼던 진숙은 마침내 자기 자신을 찾아 집을 떠난다. ⓒ tvN

 
'우리'가 아닌 '나'로서 바로 설 때 

가족은 정체감의 뿌리이자, 우리가 정체감을 형성해가는 곳이다. 그런데 부부의 미해결된 상처들이 가족 역동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때 가족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의 정체감을 찾아가는 일은 무척 어려워진다. 은주, 은희, 지우가 그랬듯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들 때문에 살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우리'로서 똘똘 뭉쳐 이 희생에 보답해 가족을 지켜내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되어 화목해야 한다는 이 같은 신념은 가족 구성원들의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희생하게끔 한다. 이럴 때 가족은 겉으로는 화목해 보일지 몰라도, 가족 구성원 각자의 내면은 숨이 막혀오면서도 자기 자신은 없는 공허함으로 가득 찬다. 

<가족입니다>의 가족들도 그랬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정체감을 회복해간다. 그리고 각자의 개별적인 삶이 존중받게 되자 이들은 보다 편안하고 따스한 온기를 품은 서로의 안전지대가 되어줄 수 있었다. 

16회 건주(신동욱)는 은희에게 새로운 책의 아이템을 제시하며 '우리는 가족입니다' 라는 제목이 어떠냐고 묻는다. 그 때 은희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랑 가족이랑 붙어 있으니까 화목을 강요당하는 느낌인데요." 

어쩌면 이 말이 이 드라마가 건네는 핵심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로서의 화목을 강요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 각자가 '개인'으로서 행복하기를 바라주고 응원해주는 곳. 그 개인들이 삶에서 지치고 힘들 때 언제든 돌아와 쉬어갈 수 있는 곳. 이것이 바로 진정한 가족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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