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반도>의 주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반도> 스틸컷

영화 <반도> 스틸컷 ⓒ (주)NEW

 
한국 영화계에서 연상호 감독이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독립 애니메이션, 정확히는 잔혹하면서도 현실적인 성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고, 제작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현재는 상업영화 감독이자 드라마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활동량과 범위만 놓고 보면 한국 영화 감독 중 가장 바쁜 이가 아닐까 싶다.

그가 최근 내놓은 <반도>는 코로나19 상황 속에 개봉한 첫 대형 프로젝트 영화다. 위축된 극장가에서 개봉 7일 만에 누적관객 200만을 돌파하며 선전 중이다. 해외 선판매를 제외한 손익분기점이 250만이니 나름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반도>를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영화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해 봤다(관련기사 : 좀비물로 쓴 희망... '반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① <반도>는 본래 <부산행>과 관계가 없었다? 

애초 <반도>는 '어린아이가 좀비를 밀어낸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부산행>이 크게 흥행한 직후 속편 이야기가 솔솔 나오긴 했지만 정작 구체화 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부산행>(2016) 주연이었던 배우 공유가 여러 인터뷰에서 감독에게 속편을 제안했다고 말한 바 있으나 연상호 감독은 "석우(극중 공유의 캐릭터 이름)는 기차에서 떨어졌을 때 목이 부러져 죽었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연상호 감독은 배에서 좀비가 창궐한 이야기, 비행기에서 창궐한 이야기 등 <부산행> 속편 관련 시놉시스롤 꽤 받기도 했다.

오히려 <염력>(2017) 개봉 후 연상호 감독은 위와 같은 초기 아이디어를 말했고, 제작사와 투자배급사가 <부산행>과의 연결 고리를 제안했다. <반도> 인터뷰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몇 년 뒤인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속편을 그린다면) 완전 별개 영화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감독이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폐허가 된 세상 이후의 이야기) 설정을 더한 결과물이 <반도>로 탄생했다.

② 준과 유진, 민정의 관계는 곧 기존 가족 개념의 파괴를 의미한다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 (주)NEW


<반도>에서 민정(이정현)과 준(이레), 유진(김예원)의 존재는 정석(강동원)에겐 일종의 구원이자 희망이다. 가족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는 정석은 좀비로 가득한 지옥과도 같은 반도에서 가족을 이룬 채 인간답게 살아가는 민정 가족을 보며 허무주의를 버리고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영화 초반 민정은 어린아이를 안고 정석에게 도와달라 호소하지만 정석은 그녀를 외면한다. 민정의 남편이 피를 흘리고 있었기에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중후반 민정은 두 아이의 엄마 역할을 한다. 여기에 김 노인(권해효)도 합류해 할아버지로 불린다.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님은 분명한데 영화에선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는다. 

연상호 감독은 "외국영화에서도 다인종 가족이 등장하는 사례가 있는데 따로 설명하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감독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즉, 폐허가 된 세상에서 전통 가족 개념을 파괴하고 희망으로 뭉친 새로운 가족을 제시함으로써 관객에게 일종의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셈이다.

③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UN군의 정체

<반도> 후반에 등장하는 UN군은 흔히 이런 블록버스터류 영화에 등장하는 구원자, 조력자의 모습과 살짝 다르다. 훤칠하고 잘생기고 강인한 신체의 남성 혹은 백인이 아닌 그을린 피부의 동남아시안이다. 정확히는 말레이시안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 역시 연상호 감독의 의도였다. 이는 "상업영화를 통해서도 일종의 영화 운동적 성격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연상호 감독의 오랜 생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민정 가족 설정과 비슷한 식의 여러 설정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된다"고 귀띔한 그의 말을 미뤄 보아 나름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 영화 문법을 비틂과 동시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 초반 정석이 홍콩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병균 취급을 받는 것 또한 현재 한국 사회에도 만연한 일종의 차별의식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서양에서 인종차별 피해자가 되곤 하지만, 한국에는 역으로 동남아시아, 조선족 등을 차별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반도> 속 정석과 UN군은 이런 현실을 빗댔다고 볼 수 있다.

④ 공권력 불신

연상호 감독은 지난 22일 기자와 통화에서 <반도> 속 공간 설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보탰다. 영화에선 반도를 둘러싼 일본, 중국 등의 열강과 미국이 전혀 역할을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버려진 땅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등장인물들이 돈다발이 실린 트럭에 집착하는 이유와 연결된다. 영화에서 정석을 비롯해 631부대 서 대위(구교환), 민정네 가족 등은 모두 이 트럭을 인천항까지 몰고 가 홍콩으로 떠나는 배를 타려고 한다.

"특수부대가 투입돼서 어마어마한 좀비를 퇴치하곤 하는 게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클리셰인데 <반도>는 그럴 가치가 없는 세계로 그렸다. 기본적으로 반도 속 사람들 특징 중 하나를 공권력 자체를 믿지 않는 걸로 설정했다. 정석도 탈출한 상태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아 새 삶을 살 수도 있는데 그런 것 자체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반도로 들어가려고 하지. 631 부대도, 민정도 누군가 언젠가 구하러 올 거라는 믿음보단 돈을 가지고 오면 탈출시켜준다는 말을 더 믿잖나. 그만큼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크다." (연상호 감독)

⑤ 631 부대원들의 좀비화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 (주)NEW


<반도>에서 631 부대원은 정석과 민정네 가족을 끝까지 위협하는 악당으로 묘사된다. 연상호 감독은 "애써 사람이 좀비보다 더 무섭다는 걸 주제로 삼진 않았지만 631 부대원과 좀비의 공통점을 설정해 놓긴 했다"고 지난 인터뷰에서 말했다.

"황 중사(김민재) 등 631 부대원은 일종의 변종 좀비라고 생각했다. 자극을 되게 좋아하는 이들이지. 희망도 절망도 없는 상태에서 자극만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굳이 출동하지 않아도 되는데 황 중사는 출동해서 사건을 일으키잖나. 뭔가 자극을 향해 우르르 가는 좀비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실제로 촬영 때도 누가 좀비이고 누가 군인인지 모르겠더라(웃음)."

⑥ 강동원의 깜짝 아이디어

일부 알려진 대로 이미 여러 액션 블록버스터를 경험한 강동원은 <반도> 촬영 때 감독과 동료 배우에게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연상호 감독은 "원래 시나리오에서 정석이 꾸는 꿈은 지금과는 달랐다"며 "친누나가 꿈에서 정석에게 말하는 대사를 강동원씨가 직접 제시했다"고 말했다. 정석의 죄책감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대사다. 

또한 영화 후반 민정이 트럭 안에 갇히는 장면도 강동원 배우가 현장에서 이정현에게 특정 동작을 제안한 결과물이다. 이로 인해 민정의 모성애와 급박한 긴장감이 더욱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밖에 마지막 액션신도 강동원이 무술 감독과 상의해서 정석의 모습이 너무 튀거나 영웅화되지 않게 조정된 경우였다. 연상호 감독은 "정석이 뭔가 돕는 느낌이 아닌 민정 스스로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해서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⑦ <반도> 속편 나오나

일부 기사에서 631 부대와 민정 가족의 기원을 다룬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는 내용이 보도된 바 있다. <반도>의 속편이자 시점으로 치면 <부산행>과 <반도>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인데 연상호 감독은 "그런 설정을 생각하고는 있는데 드라마가 될지 단편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영화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영화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 new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