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 tvN

 
대다수 우리나라 가족 드라마에는 일종의 '전형'이 있다. 어떤 사연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 구성원은 가족에게 닥친 어려움, 경제적이거나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다거나 하는 '위기'를 기회로 다시 뭉친다. 얼굴 붉히며 싸웠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을 모아 가족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간다. 그렇게 함께 위기를 돌파하는 것으로 어느 순간 가족 간 갈등은 얼음이 녹듯 풀어진다. 이후 가족은 함께 웃으며 '그래도 가족이 최고'라며 훈훈하게 드라마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만으로 그간 가족 사이에 쌓여왔던 갈등이 손쉽게 해소될 수 있을까? 
    
21일,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아래 '가족입니다') 역시 가족이 행복하게 함께 웃으며 16회로 막을 내렸다. 그런 면에서는 여느 가족 드라마의 엔딩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웃음에 이르는 그 과정에서 드라마가 선보인 해법은 그간 우리나라 보통의 가족 드라마가 추구했던 방식과 좀 다르다.
 
드라마의 마지막, <가족입니다>는 단호하게 말한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제대로 서야, 그리고 각자가 행복해야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가족이란 '공동체'가 아니라 그걸 구성하는 개인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엄마가 떠났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 tvN


20일 방송된 15회 말미에 엄마 진숙씨(원미경 분)는 가족들을 불러 모은다. 과거 '엄마표 음식'을 자식들의 입에 한 숟갈이라도 더 넣으려 했던 진숙씨는 웬일인지 자식들에게 저녁을 먹고 오라고 한다. 은희(한예리 분), 은주(추자현 분), 지우(신재하 분)가 차례로 집에 도착하고, 그들을 앉혀놓은 엄마 진숙씨는 그간 자식들에게 쌓인 감정을 폭발시킨다.
 
진숙씨는 과거 은희가 언니 은주와 의절 아닌 의절했던 시간을 언급하며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토로한다. 당시 은희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의 배신에 상처를 받아 언니를 찾아가 하소연했지만, 언니 은주는 공감해주거나 달래주기보단 은희의 단점을 언급하며 '팩트폭행'을 날렸다. 그 후 은희와 은주는 무려 몇 년 동안이나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또 엄마 진숙씨는 이혼을 결정하면서 자신과 한 번도 의논을 하지 않았던 큰딸 은주에게도, 단지 아버지처럼 살기 싫고 가족의 존재가 뭔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몰래 집을 떠나려 했던 막내 지우를 향해서도 울분을 토해낸다. 도대체 너희에게 부모는 무엇이냐며 말이다. 자식의 신변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엄마인 자신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는데, 그런 부모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의논 한 번 없이 늘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린 사실에 분노했다. 그리고 엄마 진숙씨는 물었다. "너희에게 가족은 뭐니?"
 
엄마가 이렇게 그간의 설움을 폭발하면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막내는 대번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막내에게 아버지는 "당장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친다. 그리고 은주도, 은희도 자신들에게 서운함을 가지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풀고자 애쓴다. 이 일반적인 '가족들의 노력'이라는 해법으로 여느 가족 드라마가 가는 '해피엔딩'의 길을 걸어가는가 싶었는데... <가족입니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엄마가 떠난 것이다. 엄마 진숙씨는 '졸혼'에서 한 발 더 성큼 내디뎠다. 엄마는 가방을 싸들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1년여 동안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버렸던 시간을 스스로 치유한다. 엄마의 버킷 리스트였던, 정처 없이 떠나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실천한 것이다.
 
앞서 엄마를 제외한 모두가 집을 떠났었다. 은주는 결혼을 했고, 은희는 독립을 했고, 막내는 '가족'이란 이름의 부담을 피해 떠나려 했다. 또 아버지 상식씨는 '졸혼'을 하겠다는 엄마의 의견을 존중해 집을 나섰었다. 모두가 떠났을 때도 엄마는 집과 '가족'을 지켰다. 그런 엄마가 이제 떠났다. 
 
<가족입니다>는 '졸혼'에 이르기까지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고 지친 엄마에게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가족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야 했던 엄마가 스스로 자존감을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그렇게 엄마가 도보여행으로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동안 남은 가족들은 집을 지킨다.
 
따로 또 같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 tvN


<가족입니다>가 그린 결말 중 인상 깊은 건 이뿐만이 아니다. 지나왔던 시간 동안 자신의 비겁한 열등감으로 인해 가족,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에서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아버지가 변화하면서 진숙씨와 상식씨는 다시금 22살 그때처럼 애틋해지지만, '졸혼'을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가 당당한 한 사람으로 서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한다. 아버지 상식씨는 지게차 자격증에 도전하고, 진숙씨는 도보여행으로 상처를 치유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늘 공동체라는 일체감에 '자신'을 용해시키는 것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공동체가 개인의 행복을 담보할 수 없는 시절이 되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삶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시대가 왔으니 이제 가족도 변해야 한다고 <가족입니다>는 말한다. 
 
아버지 상식씨는 그동안 쌓여왔던 오해를 풀었지만 '졸혼'을 선택한 아내의 의사를 존중한다. 그로 인해 나무 등걸처럼 딱딱해진 부부 관계의 굳은살이 조금씩 풀어진다. 시작은 연민이었다. 어느 틈에 늙고 병든 배우자에 대한 연민. 대다수 드라마들이 노년의 삶을 연민으로만 포장하는 것과 달리 <가족입니다>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존중'의 의미를 덧붙인다. 드라마는 나이가 든 뒤에도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 tvN

 
큰 딸 은주의 아버지가 다르다는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뒤 서먹해졌던 삼남매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연다.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두 자매는 첫째 은주의 이혼 과정에서 둘째 은희가 보여준 한결같은 따스함으로 인해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를 겪는다. 또 가족과 타인 모두에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차갑고 객관적인 조언을 날리던 은주가 오랜 시간 형제들 앞에 쳐놨던 '거리감'을 허물자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 진심의 무게로 전해진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가족입니다>가 드라마 말미에 전하는 메시지는 '각자도생'이란 단어를 넘어서지 않는다.
 
누군가는 궁금할 것이다. 그렇게 각자도생해야 한다면, 가족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각자도생'의 과제가 '가족'의 해체는 아니라고 드라마는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서로가 온전히 자신 스스로를 지켜낸 후에야 제대로 된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족들이 1년여 만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 진숙씨를 활짝 웃으면 반길 수 있었던 건, 각자 자신을 잘 지켜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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