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을 걸을 것 같던 남북관계에 적신호가 들어온 건 지난달의 일이다. 한반도에 긴장감이 조성됐다.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촉구하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로 시작된 북한의 대남 공세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이어졌고, 급기야 '서울 불바다설'까지 야기된 것이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행동을 보류시킴으로써 대남 공세 상황은 일단락됐으나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왜 하필 대북전단일까.
 
지난 18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왜 하필 대북전단이었을까?' 편에서는 탈북민단체 등의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갈등을 들여다보고, 북한이 왜 하필 대북전단을 문제 삼은 것인지, 그 의도와 향후 전개될 남북 및 북미관계를 짚어봤다.
 
 SBS <뉴스토리> ‘왜 하필 대북전단이었을까?’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왜 하필 대북전단이었을까?’ 편의 한 장면 ⓒ SBS

   
대남 공세의 빌미, 대북전단 살포
 
지난달 8일, 강화군 석모도의 한 마을에서 탈북자단체와 주민 간 충돌이 빚어졌다.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이날 섬 주민과 갈등을 빚은 사람은 탈북민 출신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였다. 이 조용한 섬마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취재진은 김상열 석모도 이장의 안내에 따라 항포리로 향했다. 이곳은 박상학, 박정오 형제 등 일부 탈북민 및 종교 단체가 북한을 향해 페트병을 띄운 장소다. 실제로 섬 반대편 해변은 북한에 보내려다 되돌아온 대북전단과 쌀 등이 담긴 페트병들로 어지러웠다. 간조와 만조가 반복되는 서해안의 특이한 조류 현상으로 인해 페트병의 상당수가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되돌아온 것이다. 이들은 해양 쓰레기로 둔갑하는가 하면 어민들이 쳐놓은 그물을 훼손시켜 조업에도 막대한 차질을 빚게 했다.
 
북한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민감했다. 전단이 살포된 곳을 향해 원점 타격을 예고했고, 대남전단 1200만 장을 준비했다며 맞불을 암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는 박상학, 박정오 형제가 대표로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등 대북전단 살포 단체들이 남북교류협력법, 공유수면법 등을 위반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아울러 지난 17일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의 법인 설립허가가 전격 취소됐다.
 
남북관계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전단 살포의 기원은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은정 한국외대 교수는 "UN에서 북한이나 중공, 소련을 대상으로 뿌린 게 28억 장, 북한군이 UN이나 남한에 뿌린 게 3억 장"이라며 "주로 투항이나 귀순, 전력의 우세, 그리고 향수를 유발하는 내용"이라고 귀띔한다. 전쟁 뒤엔 체제 우월과 경제 발전상이 전단의 주된 테마였고, 종종 연예인들의 사진을 실어 홍보와 심리전의 효과를 높이기도 했다.
 
남북이 전단 살포 등 선전활동을 중지키로 합의한 건 지난 2004년 6월에 이르러서다. 남북은 2년 전 4.27 판문점선언에서도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등 적대 행위 중지에 다시 한 번 합의했다. 하지만 일부 탈북민 및 종교 단체는 여전히 대북전단 살포를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건 접경지역 주민들이다. 지난 2014년 경기도 연천에서는 대북전단을 향해 북측이 고사포를 발사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탈북민들 사이에서는 대북전단 살포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비등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탈북민 김련희 씨는 "나도 북에 있을 때 남쪽 드라마 실컷 봤다. 누구나 다 본다. 전단으로 흔들릴 사람은 전혀 없다"며 "대북전단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해치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3만 탈북자들의 자리까지 빼앗는 무서운 행위"라고 일축한다. 대북전단으로 북한을 모욕하고 비난하면 오히려 거부감만 유발할 것이고, 북측에 살아있는 탈북민들의 가족이 고초를 겪게 된다는 주장이다.
 
 SBS <뉴스토리> ‘왜 하필 대북전단이었을까?’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왜 하필 대북전단이었을까?’ 편의 한 장면 ⓒ SBS

   
지난 2016년 대법원은 대북전단 살포 방해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한 탈북자단체 대표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도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권태준 변호사는 "야간에 몰래 비닐풍선을 살포하더라도 북한이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할 수 있는 군사도발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막은 건 적법하다"고 주장한다.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역시 "우리는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 언론 종교의 자유가 다 보장된 나라"이며 "그런데 그게 무제한 보장될 수는 없고, 적어도 접경지역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이고 인터넷과 언론 등에 기고함으로써 자신의 사상과 종교를 얼마든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북한은 왜 하필 이 시점에 대북전단을 대남 공세 카드로 꺼내든 것일까. 아울러 구체적인 군사행동계획까지 끄집어낸 북한이 느닷없이 보류 결정을 내린 이유는 또 무얼까.
 
최고 권력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태도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난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당시 비를 맞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수막 속 사진을 본 북측 응원단의 행동은 그들의 최고 존엄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 사례다. 전문가들은 최고 존엄을 신성시하는 북한 사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비난하는 대북전단은 북한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전단은 체제 비판을 넘어 북한의 최고 권력자와 그 가족에 대한 외설적 내용 등 모욕적인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전 통일부장관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북한은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편제된 체제이며, 과거보다는 개인숭배가 덜하지만 완전한 개인숭배에 기초했던 체제이고 지금도 그 기본적인 특성은 변함없다"며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최고지도자에 대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포르노성에 가까운 허구로 자극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남 공세의 근본적인 배경
 
북한은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최악의 경제 상황에 직면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주변국가와 밀무역을 통해 거래를 해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스스로 차단했다고 볼 수 있다"며 "북한이 말했던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의 목표를 거의 다 실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나마 돈벌이로 여겨졌던 관광사업마저 미룬 채 방역에 관심을 돌린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종석 위원은 "삼지연이나 양덕온천관광지구, 갈마해안관광지구 등이 완벽하게 완성된 게 아니다"며 "그 마무리를 뒤로 미루더라도 평양의 종합병원 건설에 최우선의 관심을 두려는 게 북한의 전략적 우선순위의 변화"라고 말한다. 우선순위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내부 결속이 절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비록 대북전단을 명분으로 삼은 상황이지만 대북 제재와 코로나로 더욱 위축된 경제 문제야말로 이번 대남 공세의 근본적인 배경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북한은 올해가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마지막 해다. 때문에 제재 국면 속에서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며 악화된 경제난을 해결하려는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SBS <뉴스토리> ‘왜 하필 대북전단이었을까?’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왜 하필 대북전단이었을까?’ 편의 한 장면 ⓒ SBS

   
지난달 24일, 북한은 대남 공세 30일 만에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이에 대해 조성렬 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볼 때는 단계적으로 남북관계를 재조정하고 더 나아가 미 대선 이후까지 겨냥해야 하는데 전반적으로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라며 "조기에 남북관계가 악화하면 사실 북미관계의 동력을 찾기도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결국 남측을 이용하여 미국과의 관계를 풀어 나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은 미국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협상에는 "더 이상 응하지 않겠다"는 기본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과 오는 11월 3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은 향후 북한의 태도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조성렬 위원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라면 북측이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전시작전권 반환을 위한 CPX훈련이라면 북측에 대해 모종의 양해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북한 김여정이 지난 10일 담화에서 "미국의 독립기념일 행사를 담은 DVD를 꼭 얻고 싶다"고 언급한 대목은 "북미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아놓지 않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북미 간 접촉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결국 북미관계는 미국 대선의 향배에 따라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고, 남북관계 역시 당분간 그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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