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도>에서 민정 역을 맡은 배우 이정현.

영화 <반도>에서 민정 역을 맡은 배우 이정현. ⓒ NEW

 
그간 재난상황에서 여성과 아이가 이토록 활약하는 영화가 있었던가. 15일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반도>를 요약하자면 희망 잃은 자의 희망이 된 '대안가족'이지 않을까 싶다. 

<부산행> 이후 4년 만에 나온 속편 격으로 <반도>는 좀비 창궐 이후 폐허가 된 한반도를 조망한다. 가족을 살리지 못한 채 가까스로 반도를 떠났던 전직 군인 정석(강동원)이 어떤 계기로 다시 반도로 잠입해 민정(이정현)의 가족을 만나며 새로운 희망을 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초반이 정석의 시선과 정서 중심이라면 중반부턴 지옥과 같은 반도에서 따뜻함을 잃지 않은 채 가족으로 살아가는 민정, 준(이레), 유진(이예원), 그리고 김 노인(권해효)으로 무게가 옮겨간다. 민간인 구출 작전을 담당하다가 타락해 버린 631 부대원들과 대비를 이루며 영화는 일종의 휴머니즘을 묻는다.

가족의 소중함을 실감하다

시작은 연상호 감독의 연락이었다. "저와 함께 영화 하셔야죠"라는 말과 함께 연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내왔고, 읽자마자 이정현은 재미를 느꼈다. "사실 2012년에 한 영화제에서 함께 심사위원을 했고, 제가 좀비가 나오는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는 것 외에 별 인연이 없었는데 먼저 떠올려서 연락주셔서 너무 행운이었다"고 이정현은 당시를 회상했다. 여성 서사가 강화된 점도 그에겐 매력 포인트였다.

"CG가 많을 것 같았는데 감독님이 사전 제작을 1년간 하셨더라. 현장에 가면 해당 그래픽과 합성한 결과물을 보여주시곤 했다. 시스템적으로 너무 완벽했다. 그래서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민정의 전투력은 모성에서 나온다고 (감독님이) 말하셨는데 납득이 됐다. 저도 내 자식이 걸린 문제라면 폐허가 된 곳에서도 전투력을 발휘할 것 같다(웃음).

사실 무술감독님과 (촬영 전) 3개월 간 액션스쿨에서 구르면서 총쏘기, 발차기 등 별의별 거를 다 준비했다. 근데 현장에선 한 동작만 시키시더라(웃음). 불필요한 액션을 안 찍으니 사고 한 번 없었다. 감사한 현장이었지. 감독님이 커트 계산이 빠르시더라. 어떤 날은 오전 9시에 시작해 점심 식사 전에 촬영이 끝난 적도 있다."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 (주)NEW

 
어린 배우와 호흡도 낯선 영역이 아니었다. 결혼 후 자녀는 없지만 조카만 8명이라고 한다. 이정현은 "조카들 기저귀도 많이 갈았고, 이레와 예원이 모두 내 딸인 것처럼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반도>에 묘사된 대안가족에 대한 생각을 언급했다. 민정의 친딸이 유진이라면 카체이싱을 소화하는 준이는 631부대에서 함께 탈출한 소녀라는 게 영화 속 설정이다.

"가족은 말 그대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다. 나 자신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존재가 가족인 것 같다. 정말 폐허가 된 상황이라면 영화 속 설정처럼 가족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다. 저도 전투력을 발휘해 민정처럼 살지 않을까 싶다(웃음). 지킬 존재가 많거든. 강아지도 지켜야 하고, 아이 낳으면 아이도 지켜야 하고, 부모님도 지켜야한다. 

지옥같은 세상이라도 가족으로 인해 살아갈 힘이 생길 것 같다. 결혼하고 나니 안 그래도 가족이 소중했는데 더 소중해지더라. 제가 잘 되든 안되는 항상 제 편인 사람이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현장 집중력도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영화가 흥행이 잘 안돼도 응원해 줄 남편이 옆에 있고, 토리(반려견 이름) 봐 줄 사람이 있으니(웃음)."


여전한 연기 열정

출연 배우, 그것도 주연이라면 그의 말처럼 흥행 부담감은 필연적이다. 가족의 힘으로 부담감을 덜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정현은 스스로 내려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공 가도, 침체기를 두루 겪은 외길 인생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데뷔한 지 25년이 됐다. 내려놓는 법, 기대 안하는 법을 배워서 좋다. 지금까지도 다 잘하려 했다거나 기대를 놓지 않았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살면서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받아들이니 좋은 일이 생기면 훨씬 기쁘더라. 그래서 어제(15일) <반도> 개봉 스코어를 보고 기뻤다. 앞으로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웃음). 

<꽃잎> 이후 확 성장한 이후 탑을 찍었다가 다시 내려갔다가, 가수로 정점을 찍었다가 또 내려갔다가 한류의 정점에 올랐다가 또 내려갔다가 이런 걸 계속 경험하면 사람이 미친다. 나이 들면서 기대하지 않고, 내려놓기를 배웠지. 그리고 그런 힘듦을 해소하기 위해 배운 게 요리다. 맛집에 가서 먹어보고 집에서 따라했는데 똑같으면 그렇게 좋더라(웃음)."

 
 영화 <반도>에서 민정 역을 맡은 배우 이정현.

"지옥같은 세상이라도 가족으로 인해 살아갈 힘이 생길 것 같다. 결혼하고 나니 안 그래도 가족이 소중했는데 더 소중해지더라." ⓒ NEW

 
최근 예능 프로에 출연하면서 그의 요리 솜씨가 새삼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이정현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중요한 취미기도 했다. 최근 요리책을 내기까지 한 그다. "계속 예능을 할 순 없고, 주부님들이 많이 원하시기도 했다"며 그는 "책으로 기록을 남기면 좋을 것 같았다. 주부님들이 제 레시피로 남편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 댓글을 달아주시기도 한다"고 나름 느낀 보람을 전했다.

보다 대중에 친숙하게 다가가며 내려놓기를 배웠다지만 이정현은 천상 배우기도 하다. 8년 전 <범죄소년> 당시 기자에게 "할머니가 돼서도 연기하고 싶다"고 한 걸 상기시키며 여전히 그 바람이 유효한지 물었다.

"그렇다. 다른 건 없다. 나이들어서도 절 찾아주셨으면 하고,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저예산, 독립영화 시나리오도 계속 받고 있다. 아직 마음에 드는 건 못 만났는데 상업영화와 병행하고 싶다. <반도>가 정말 시스템적으로 완벽했던 현장이었는데 꼭 그와 같진 않더라도 영화에 대한 애정이 많은 스태프들과 함께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현장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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