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뉴스룸> 엔딩 음악은 이제 틀지 마라.'

최근 모 인터넷 매체의 전 편집장은 페이스북에 이런 취지의 글을 게재했다. 본인이 듣기에 과거 '손석희 앵커' 시절 엔딩 곡들과 현재 방송되는 리스트의 느낌이 사뭇 달라졌다는 토로였다. 풀이하자면, 손석희 JTBC 사장이 보여준 음악팬으로서의 방대한 취향과 앵커브리핑과의 절묘하고 울림 있는 조화를 그리워하는 '팬심'어린 '지적질'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 ⓒJTBC

 
손 사장 역시 얼마 지나지 않은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던 걸까. 지난 11일 손 사장은 본인의 인터넷 팬 카페에 올린 글에서 20년 쓴 안경을 잃어버린 일화를 소개한 뒤 "살다 보면 어느 때인가는 그동안의 익숙했던 것들과 이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말입니다"라며 이런 소회를 털어놨다.

"매일 뉴스를 들여다보고, 앵커브리핑을 고민하고, 엔딩 음악까지 골라야 했던 익숙했던 일상은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좀 가혹했습니다. 칼 날 위에서 수십 년을 보냈으니 평평한 땅 위로 내려온 것이 오히려 생소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평평한 땅 위의 삶이 훨씬 좋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얼핏 보면 특별할 것 없이 담담한 어조로 일상의 소회를 전한 글로 볼 수 있을 터. 지난 8일 공갈미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김웅 프리랜서 기자의 1심 판결 이후 처음으로 안부를 전한 손 사장은 코로나19 전후 달라진 일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사이 시작된 코로나는 또 다른 일상을 요구하네요. 누군가를 의심하고, 누군가를 멀리하고, 누군가를 혐오하고, 그러면서도 그 누군가들과 함께 지냈던 세상을 그리워합니다.

코로나 발생 후 반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앞으로의 세상은 그 이전의 세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갖는 게 맞는 것일까를 늘 고민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어떤 일이든 그 시간에 묻어가버리며, 저는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오늘 올리는 글은 그렇게 제가 여러분께 보내드리는 신호입니다."


"잘 지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손 사장. 하지만 "그 시간에 묻어가버리"는 것들 중 이대로 망각하면 안 되는 것들도 있다. 김웅 기자가 손석희 사장에 대한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2019년 초, 사실 검증이란 명목 하에 언론사가 쏟아냈던 자극적인 기사들 말이다. 대표적인 것이 SBS < 8뉴스 >였다.

녹취록 공개했던 SBS

"손석희 JTBC 사장이 폭행 혐의로 최근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손석희 사장이 지난 2017년 경기도 과천의 한 주차장에서 견인차와 접촉 사고를 냈다는 것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저희는 접촉 사고 당사자의 진술이 없는 상황에서는 명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그동안 이 소식을 전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희 취재진이 손석희 사장과 접촉 사고 당사자가 통화한 내용을 입수했습니다. 이 통화는 손석희 사장 관련 의혹 보도가 나오기 하루 전인 지난주 수요일에 이뤄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내용과 달리 이 통화는 직접 사고 당사자끼리 나눈 대화여서 가장 사실에 근접한 내용이라고 봤고, 또 접촉 사고 피해자의 주장인 만큼 여러분께 전해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2019년 1월 30일 SBS < 8뉴스 >, <손석희 녹취파일…'피해자 기억'과 다른 주장 반복> 앵커 멘트)


김웅 기자의 공갈미수 사건이 아닌 손 사장의 폭행 혐의를 앞세운 것이 눈길을 끈다. 해당 보도에서 SBS는 지상파 방송사 최초로 같은 달 23일 손 사장과 견인차 기사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전체 분량은 6분이 넘었지만, SBS가 < 8뉴스 >에서 공개한 대화 중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대목은 이랬다.

"젊은 여자가 타고 있었더라 뭐 이런 얘기를 했다고 저한테 협박을 해 가지고… 그런 사실이 없었거든요." (손 사장)
"우리 저기 손 사장님께서 아니다, 라고 그러시면 제가 뭐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현장에서 여자분이 내리는 거는 봤거든요(...).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미 그 자리에서 그분은 내렸고." (견인차 기사)
"아니, 아니, 내린 사람이 없어요. 정말로 없어요." (손 사장)


이후 SBS는 기자 리포트를 통해 견인차 기사가 "SBS와의 통화에서 몰랐을 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라고 한 반면, "입장 차가 있는 만큼 손 사장 측 설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 사거리에 서서 그렇게 보닛, 트렁크를 쾅쾅 두들기는데 몰랐다고요?"라는 견인차 기사의 음성과 함께.

방송 직후, SBS는 6분여의 녹취록을 SBS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에 대해 지난해 2월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출연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일단 통화 녹취 전문을 공개한 것은 잘했다"면서 SBS 보도 내용과 전체 녹취록을 비교하며 이렇게 평했다.

"SBS는 본인들은 이게 가치가 있어서 보도를 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 그 보도를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손 사장이 입막음을 하려고 협박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 이 보도에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피해자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이미 그 자리에서 그분은 내렸고'라고 말하니 손 사장이 '아니, 아니. 내린 사람 없어요. 정말로 없어요'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녹취 전문을 보면 제가 세어봤어요. 그랬더니 한 5번에서 6번 정도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어요, '어두워서 확신이 들지 않아요'라는 이야기들을 계속 거듭하고 있거든요. 이 내용이 SBS 보도에서는 나오지 않거든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녹취 전문엔 견인차 기사가 잘못 봤을 수도 있다거나 확신이 들지 않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는 것. 하지만 SBS 보도에선 이런 뉘앙스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심지어 견인차 기사의 "몰랐을 리가 없다"는 주장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정파적 보도와 선정주의가 만났을 때
 
 2019년 1월 2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손석희 JTBC 대표이사

2019년 1월 2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손석희 JTBC 대표이사 ⓒ JTBC

 
"언론인 집단, 특히나 약간 정파적인 언론인 집단에서는 손석희라는 인물과 갑자기 부상된 JTBC라는 데가 언젠가는 한 번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그런 질시가 없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같은 방송에서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어떤 의도가 반영되지 않았다면 이런 보도가 나올 수 없다는 진단이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그전까지만 해도 소위 말하면 '지라시'라든가 이런 것으로 수많은 의혹들이나 수많은 루머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왜 안 올라왔을까? 스피커가 없었거든요"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경찰 고발이라고 하는 어떤 핵심적인 사안이 실제로 나오고 그걸 누군가 말해줄 사람이 나오는 순간 여기에는 보도의 가능성들이 생겨난 거죠. 그래서 불같이 갑자기 올라오게 됐고.

현재와 같이 사실 보도 가치가 없는 내용들임에도 불구하고 특히나 기존의 언론 사주들이나 언론 대표이사나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보였던 침묵의 태도와는 전혀 상반된 방향으로 이와 같은 보도를 했다고 하는 건 그와 같은 인지부조화적인 심리적 배경, 이게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실제로 그랬다. 극우 유튜버들은 각종 루머를 양산해내고 있었고, < TV조선 >과 <채널A> 역시 관련 기사를 쏟아내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해당 SBS 보도는 그런 루머에 설득력을 실어주는 기폭제 역할을 했고, <신의 한 수>와 같은 유튜브 채널은 SBS가 공개한 녹취록을 가지고 따로 영상을 만들며 루머를 확대재생산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의 판결문에 따르면, 이 견인차 기사의 증언은 블랙 코미디 영화에 나올 만한 어이없는 상황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판결문을 분석한 14일 <미디어오늘> 기사에 따르면, 사건 당사자인 견인차 기사가 최초 다른 카센터 사장에게 이야기를 옮겼다.

이 카센터 사장이 A기자에게 말을 옮겼고, 이 A기자가 또 다른 B기자에게, B기자가 김웅 기자에게 손 사장 접촉사고 이야기를 흘렸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견인차 기사가 동료와 나눈 "바람이라도 폈나"와 같은 농담이 "젊은 여성과 밀회"로 바뀌어 있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풍문 수준의 제보를 가지고, 즉 적어도 4단계 이상의 전문으로서 그 신뢰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김씨는) 사건 당사자인 견인차 기사들에게 대한 사실관계 확인 절차 없이 주차장 사건의 언론 제보 여부를 놓고 약 5개월간이나 피해자에게 JTBC 채용, 합의금과 같은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 (14일 <미디어오늘>, <'손석희 공갈 미수범'에 놀아났던 언론> 중)

김 기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손 사장에게 수 개월간 갖은 협박과 공갈을 벌였던 셈이다. 이후 증폭된 소문이 돌고 돌아 결국 견인차 사장과 합의에 나선 손 사장의 통화 녹취록을 SBS가 공개하고, 견인차 기사에 대한 취재에 나선 것이다. 이쯤 되면, 김웅 기자의 취재는 물론이고, 견인차 기사의 증언이나 녹취록을 주요하게 보도했던 언론들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가차 저널리즘의 희생양

숱한 기사를 쏟아냈던 언론들은 1심 판결 소식을 단신으로 전하는 데 그쳤다. 판결문을 꼼꼼히 분석한 언론도 <미디어오늘>이나 KBS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반면 앞서 소개한 손 사장의 '안부'를 '따옴표 저널리즘'식으로 전한 매체는 상당수였다.

어쩔 수 없이, 근래 들어 주목받고 있는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이란 표현이 두둥실 떠오른다. "딱 걸렸어!"란 영어 표현인 'I got you'의 준말에 저널리즘을 붙인 이 '가차 저널리즘'은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실수나 해프닝을 꼬투리 삼아 집중보도하는 행태를 말한다.

연예매체들이 손쉽게 클릭 장사에 이용하는 보도 행태이자, 옐로우 저널리즘의 특질이라 할 만하다. 정준희 교수는 최근 방송한 TBS <정준희의 해시태그>에서 이 가차 저널리즘보다 한 발 더 나아가 '포르노그래피 저널리즘'이라 정의하기도 했다. 시간에 묻어가 버릴지 몰라 강조하자면, 손 사장 역시 이 시대 우리 언론이 주도한 '가차 저널리즘'의, '포르노그래피 저널리즘'의 희생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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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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