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도>에서 정석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영화 <반도>에서 정석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 NEW

   최근까지 배우 강동원의 선택은 재난 상황이거나 폐허가 된 배경의 이야기였다. 영화 <반도>도 그 연장선일 것이다. 어쩌면 가장 극한 상황일지 모른다. 좀비 출몰 이후 4년,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되어 버린 한반도 상황에서 강동원은 구사일생으로 반도를 떠났다가 다시 잠입하게 되는 정석 역을 맡았다. 

비중이나 역할로만 보면 정석은 허무주의에 빠진 채 다소 무기력한 인물이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가진 그는 좀비 떼 세상인 반도에서 가족을 이뤄 살아가는 민정(이정현)과 준(이레), 유진(이예원), 그리고 김 노인(권해효)을 만나며 일종의 희망을 품는다. <부산행>의 속편으로 알려졌기에 부담도 느꼈음을 고백한 강동원은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명확하게 출연 계기를 전했다.

강동원의 아이디어

"영화 매체 장점 중 하나가 극단 상황에 몰아넣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 같다.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 세계가 파괴된 극단적 상황을 보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보며 631 부대원이 모여 사는 곳도 궁금했다. 다른 영화에선 비슷한 장면들이 있었지만 한국영화에선 못 본 것 같다. 아이들이 운전하며 주도적으로 액션을 한 것도 신선했다. 거기에 보편적 메시지도 있었고. 너무 신선하면 사람들이 못 따라오거든. 전 뒷좌석에서 최대한 지원하려 했다. 연상호 감독님이 저 보고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더라(웃음)."

정석이 주인공 중 하나긴 하지만 흐름상 중반부터 민정의 가족으로 이야기의 무게감이 옮겨간다. 배우로서 자칫 서운할 수 있는 부분인데 강동원은 "원래 시나리오가 그랬다"며 분량과 역할에 아쉬움이 전혀 없음을 강조했다.

"극 구조가 그리 짜여 있어서 전 거기에 맞춰 최대한 살리려 했다. 정석이 끌고 가는 지점까진 관객이 최대한 따라올 수 있게 하자는 거였지. 정석이 수동적이고 답답한 면이 있기에 그런 캐릭터를 표현할 때 배우로서도 늘 까다롭고 답답한 면이 있긴 하다. 매 촬영 때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영화 전체를 보거나 앞장면, 뒷장면 생각하면서 흐름을 만들어 가려 한다."
 
 영화 <반도> 관련 사진.

영화 <반도> 관련 사진. ⓒ 영화사 레드피터

 
나아가 강동원은 상대 배우가 돋보일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냈다. 영화 말미 민정이 어떤 선택을 할 때의 표정, 액션 장면에서 합 등에 적극적으로 감독에게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전직 군인이었던 덕에 정석은 총기 사용이 능했지만 정작 강동원은 "그 이상 특별한 액션을 보이진 않고, 그래서도 안되는 거였다. 정석의 액션은 특징이 없다는 게 특징"이라며 말을 이었다.

"정석은 감정 변화가 더 중요했다. 죄책감과 허무함에 빠져있다가 반도에 들어간 후 아마도 아직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에 가장 놀랐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민정 가족을 보며, 자신을 돌아봤을 것이다. 꿈에서 죽은 누나가 나오는 장면은 감독님과 얘기하다가 대사를 바꾸기도 했다. 정석이 죄책감을 느끼는 지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잊고 있었던 희망을 오히려 생지옥과도 같은 반도에서 찾게 된다. 연상호 감독은 이런 묘사를 통해 "어디에 사느냐 보단 누구와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나름의 희망 기준을 밝힌 바 있다. 강동원 역시 <반도>가 품고 있는 희망의 속성에 공감하고 있었다.

"정석은 반도를 떠나 홍콩에서 난민처럼 살았지만 분명 그 4년간 따뜻한 사람도 만났을 거다. 2시간짜리 영화라 안 들어간 것뿐이지. 정석 본인의 트라우마도 있고, 여러 부족한 점을 생각하며 살다가 진짜 더 힘들고 열악한 곳에 살면서도 희망을 품은 사람을 보면서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희망은 마음가짐에 달린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힘든 시기라도 마음에 해를 품고 있다면 좋은 날이 올 거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대한 기대

강동원에겐 <반도>가 재밌고, 설레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함께 했던 이레와 이예원 등 아이 배우들을 떠올리며 그는 "종종 현장에서 마음이 열리지 않은 아이들도 있는데 이 친구들과 너무 재밌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편하게 대해서일까. 지난 언론 시사회 때 이예원은 해맑은 표정으로 강동원과 이정현에 대해 "예전엔 인기가 많으셨다고 들었다"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하기도 했다. 강동원은 "뭐, 제가 활동했던 때에 예원은 태어나기 전이니 그럴 수 있다. 그 말이 웃겼고, 재밌었다"며 "무대에서 내려온 뒤 예원에게 네가 우릴 한 방에 보냈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모델 활동 포함 이제 데뷔 21년째가 된 그다. 여전히 그는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과거에 다짐했던 말을 간직하고 있었다. "<반도>를 통해 한국에서도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가 잘 나올 수 있다는 평을 듣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강동원은 본인의 현재 상태를 다시금 돌아보는 말을 이었다.

"배우의 장점이 죽을 때까지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거잖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어? 이제 일한 날이 일을 안 한 날보다 많아지고 있네. 좋아, 나도 어른이 되어 가고 있어! (웃음)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 예전에 신인상 받을 때도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 말 한마디만 하고 내려온 적이 있다. 혹시나 제가 병에 걸리거나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 때면 실제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그렇게 연기하다 가는 삶도 배우로서 좋지 않나 생각한다."
 
 영화 <반도>에서 정석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결국 희망은 마음가짐에 달린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힘든 시기라도 마음에 해를 품고 있다면 좋은 날이 올 거다." ⓒ NEW

 
배우 활동과 함께 최근엔 종종 유튜브나 웹 예능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했다. 브이로그, <문명 특급> 등에 출연한 것에 그는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다만 SNS 활동 등에 대해선 경계하는 모양새였다. 민주화 항쟁을 전면으로 드러낸 영화 < 1987 > 등에 출연하며 개념 배우로 언급되기도 했던 그는 "배우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한데 전 영화로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목소리 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목소리를 안 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안 하는 것도 답답하거든. 저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때마다 참고 영화로 얘기하자고 다짐한다. 그래도 SNS로 소통하시는 분들 보면 되게 좋아 보이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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