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 스틸 컷

MBC 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 스틸 컷 ⓒ MBC


 
MBC 월화 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가 주인공들의 달달한 해피엔딩으로 마감했다. 14일 방송된 최종회에서는 김해경(송승헌)과 우도희(서지혜)가 교제 1년 후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제주도에서 '처음 함께했던 식사'를 재연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저녁 가티 드실래요>(아래 '저녁')는 나란히 실연의 상처를 가지고 있던 두 남녀 주인공이 '디너메이트'(밥친구)라는 독특한 관계를 통하여 서로의 취향과 추억을 공유하게 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을 다룬 '음식 로맨스'물을 표방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드라마가 시작(코미디)-중반(미스터리 스릴러)-결말(멜로)의 진행 과정에 따라 이야기와 장르가 전혀 달라지는 '3단 변신'을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한다'는 행위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 활동이자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대인관계의 보편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나홀로족이 늘어나면서 혼술혼밥 문화가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시대에 '밥친구'라는 것은,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가장 사적인 시간과 취향을 공유하며 특별한 사이가 되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작은 남녀주인공이 다양한 종류의 식사를 같이하면서 서로의 평범한 일상과 과거의 연애사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내용으로 팬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드라마도 초반부에는 이러한 원작의 매력을 잘 따라가는 듯했다. 오감을 즐겁게하는 다양한 음식 먹방, B급 감성이 묻어나는 '병맛'스러운 유머 코드, 배우들의 전작을 연상시키는 기발한 패러디 등으로 눈길을 끌며 대체로 밝고 유쾌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전개됐다. 짝사랑 전문에서 털털하고 코믹한 로코퀸으로 돌아온 서지혜-나이를 거꾸로 먹는듯한 송승헌의 훈훈한 비주얼 케미도 돋보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는 스토리와 캐릭터가 방향을 잃고 산으로 가버리는 듯했다. 남녀주인공의 전남친-전여친으로 정재혁(이지훈)과 진노을(손나은)이 가세하면서 드라마는 음식 로맨스라는 본연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익숙하고 진부한 4각관계의 치정멜로로 퇴행했다.

전 애인에 대한 미련을 넘어 스토킹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정재혁과 진노을의 모습은 공감대보다는 불편함을 자아내면서 오히려 등장 때마다 이야기의 맥을 끊어놓기 일쑤였다. 특히 중반부와 클라이맥스는 사실상 모든 사건의 중심이 정재혁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진 주인공'이 중간에 바뀐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줬다. 
 
 MBC 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 스틸 컷

MBC 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 스틸 컷 ⓒ MBC

 
극의 메인이 돼야할 김해경과 우도희가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뒤로 밀려나고, 정재혁이 끊임없이 벌이는 사건사고에 휘둘리며 뒷수습하는 내용의 반복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드라마는 최종회에 개과천선한 정재혁이 키에누(박호산)와 극적으로 화해한 뒤 치료를 다시 받아들이며, 진노을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관대하고 평화로운 마무리를 선택했다.

결국 정재혁의 관점에서 이 드라마를 다시 이해하게되면, 억압적인 가정환경과 실연의 상처로 '괴물'이 되어버린 한 청년이, 옛 연인에 대한 집착과 질투, 스토킹 과정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다시 찾고 치유받게된다는 감동적인 '정신의학 스릴러' 혹은 '사이코 치정 호러물'이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재혁이 벌인 일들이 용서 받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협박, 무고, 자해, 가택 무단 침입, 교통사고를 통한 살인미수까지, 중범죄를 저지를 사람이다. 현실에서의 스토킹이나 데이트폭력이 여성에게든 남성에게든 얼마나 큰 고통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정재혁에게 주어진 결말은 현실성도 공감대도 떨어지는 허술한 마무리였다.

정작 드라마가 엉뚱한 곳에서 벌여놓은 에피소드를 겨우 수습하느라, 키아누와 남아영(예지원)의 로맨스, 김해경의 어머니 이문정(전국향)의 이야기 등, 조연들의 에피소드는 제대로 풀어보지도 못하고 급하게 마무리된 기색이 역력하다. 

어쩌면 <저녁>은 웹툰 각색의 나쁜 예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 웹툰의 인기가 높아지며 많은 작품들이 드라마-영화화되고 있다. <미생>이나 <이태원 클라쓰>처럼 원작 못지않게 인기와 완성도 모두 호평받는 작품들도 있지만, 영상화 과정에서 원작의 매력을 훼손하거나 드라마 문법에 걸맞은 재해석에 실패하며 원작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작품들도 적지 않다. 

<저녁>의 경우, 원작 웹툰과 비교하여 등장인물들의 직업과 배경, 성격 등이 모두 크게 각색됐다. 원작에서 출판사 직원이었던 김해경을 '음식심리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로 회사원이었던 도희를 온라인 콘텐츠 제작사의 PD로 각각 변경한 것은 원작 팬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는데 실질적으로 드라마만의 오리지널 캐릭터에 가까웠던 정재혁(극중 의학전문기자)과의 연관성을 제외하면 굳이 필요없는 설정이었다. 한마디로 정재혁이라는 캐릭터가 이 작품의 성격 자체를 뒤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원작은 '맛있는 음식-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를 매개로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법한 일상의 경험과 공감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잔잔하면서 유머러스한 '힐링 코드'가 가장 큰 매력포인트였다. 그런데 드라마는 엉뚱하게도 음식 로맨스를 그저 남녀주인공의 만남을 이어주는 소도구로만 썼을뿐이다. 웹툰 팬들이 원작을 훼손했다며 드라마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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