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시네마'는 영화평론가이자 인문학자인 안치용 한국 CSR연구소장이 영화에서 드러난 '테크'의 동향과 의미, 문명사적 향배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속 '테크'와 영화를 만드는 데 동원된 '테크'를 함께 조명하여 영화와 '테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합니다.[편집자말]
아메리카 원주민은 석유를 "땅의 피"라고 불렀다. 석탄에서 석유로 이어진 현대문명의 특성을 반추하면 매우 합당한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석유가 인류문명의 기반으로 자리잡은, 정확하게는 석유를 전방위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의 문명을 인류가 구축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이지만, 그 이전에도 고래로부터 석유는 인간 삶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처럼 필수 에너지원이거나 플라스틱 같은 생활필수품이 아니었고, 약이나 특수도료 등으로 활용됐다.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 또한 달랐는데 영어 표기인 'petroleum'은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기름이란 뜻으로 'Petra(돌)+oleum(기름)'이란 라틴어 단어의 조합에서 비롯했다. 지구과학이나 지질학 지식이 쌓이기 전에 석유는, 피든 기름이든 인간에게 지상(地上)의 산물로 간주됐다. 현재 많은 산유국이 몰려 있는 중동에서도 석유가 흔하게 발견됐지만 근대와 함께 상업적 채유가 이루어진 곳은 러시아의 바쿠와 미국의 서부 등지이다.

제임스 딘이 척박한 땅에서 석유를 캐내는 데 성공하여, 분출한 석유가 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아래로 내리는 검은 석유 비를 맞은 영화 <자이언트>(1956년)의 장면은 영화사에서 유명한 기억의 컷이다. 제임스 딘이 서 있던 그곳이 미국 텍사스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록 허드슨 등과 함께 출연한 제임스 딘은 <자이언트>의 자신 촬영분을 마치고 얼마 후 자동차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여 자신과 이 영화를 전설로 만들었다.
 
 영화 <자이언트>에서 제임스 딘이 석유 시추에 성공하고 기뻐하는 모습

영화 <자이언트>에서 제임스 딘이 석유 시추에 성공하고 기뻐하는 모습 ⓒ 조지 스티븐스

 
사람들이 석유를 목격하고 채굴한 곳은 육상이었지만 애초 석유의 고향, 즉 생성된 곳은 바다 속일 가능성이 높다. 간단히 요약하면 머나먼 지질 시대에 바다에 살던 플랑크톤과 다양한 생물의 사체가 해저에 가라앉고 그 위에 진흙과 모래 등이 쌓였으며, 수백만 년에 걸쳐 압력과 열, 박테리아의 분해 작용에 의해 생성된 것이 석유이다.

석유는 액체이다 보니 생성 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특정한 지질구조를 만나면 흐름을 멈추고 그곳에 갇히게 된다. 석유가 고인 곳을 '오일 풀(oil pool)'이라고 하는데, '오일 풀'은 지각변동이나 대륙이동 등을 통해 바다에서 육지로 이동하여 제임스 딘 영화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반면 심해에 남아 있는 석유 또한 많다. 영국경제에 큰 활로가 된 북해유전이 대표적이며 북극해는 매장량이 막대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래의 심해유전이다.

세계 석유산업은 접근성이 좋은 육지에서 시작해 기술발전에 따라 대륙붕을 거쳐서 심해로 석유탐사 범위를 넓혔다. 특히 심해탐사는 막대한 건조비를 투입한 시추선을 해상에 띄워 수km 바닥까지 드릴을 내린 다음 거기서 구멍을 뚫어 기름을 퍼올리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수심이 1km가 넘는 해저에서도 시추공을 뚫을 수 있다.

당연히 1만m 해저에 내려가는 건 드릴이지 사람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이 달에 가는 것보다 1만m 해저에 내려가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영화 <언더워터>는 사람이 그 어려운 1만m 해저에 내려가서 생활하다가 재난을 당해 사투를 벌이며 지상으로 (전원은 아니지만)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무대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심연으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 석유채굴 작업 용도로 건설된 심해기지가 파괴되면서 간신히 탈출한 노라 프라이스(크리스틴 스튜어트) 등 직원이 지상으로 복귀하려고 노력하는 일종의 재난영화이다. 정체불명의 괴물이 등장하면서 재난영화는 스릴러로 바뀐다. 심해를 배경으로 한 '에일리언'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영화 <언더워터>에서 등장인물이 해저를 걸어가는 장면

영화 <언더워터>에서 등장인물이 해저를 걸어가는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일단 1만m 해저의 수압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이 상주할 기지를 현재 기술로 건설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100명이 넘는 사람이 살아가며, 심지어 원자로까지 가동하며 에너지를 자급하는 해저기지는 수중도시를 방불케 한다. 만일 현재 기술력으로 이런 기지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다 하여도 관건은 수익성이다.

내 능력으론 감당되지 않는 숫자가 기지비용으로 산정될 터인데, 셰일오일이나 대륙붕을 마다하고 1만m까지 내려와 기지를 만들고 석유를 파낼 경제성은 잘 상상되지 않는다. 기지 자체가 영리목적의 시설이라서 해 본 생각이다.

1만m의 수압을 견딜 수 있는 잠수복을 입고 해저를 걸어가는 장면 또한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기술적으로 허술해 보인다. 특히 영화 속에 구현된 헬멧은 맥락으로 보아 1만m는 고사하고 1000m의 압력도 버텨내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속단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수십 년 후엔 <언더워터>가 상상한 일이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30년 전에 나는 삐삐를 차고 다녔고, 급한 호출이 오면 차를 세우고 공중전화를 이용해 연락했다. 그때에, 30년쯤 지나면 저장용량이 300G쯤 되는 첨단 컴퓨터를 내가 손 안에 지니고 다닐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으니 <언더워터>의 설정이 허무맹랑하다고 단정하기는 힘들겠다.

바라건대 장차 마리아나 해구에 석유시추기지가 건설되기보다는 리조트가 만들어져서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내 노년의 버킷리스트?

영화 <언더워터>에 등장하는 괴생명체는 '크툴루'라는 환상의 존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크툴루'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활동한 판타지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바다 생명체이다. '크툴루'이든 포세이돈이든 아마도 30년 뒤에 마리아나 해구 리조트에서 조우할 현지 주민에 대해 <언더워터>와 달리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또한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https://blog.naver.com/ahna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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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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