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 이후 4년 만에 속편 <반도>를 선보인다. ⓒ new

 
한국형 좀비물의 시초격이라 할 수 있는 <부산행>(2016) 제작 당시 연상호 감독은 폐허가 된 한반도의 이야기를 막연하게 상상하곤 했다. 영화는 성공했고, 주위에서 속편을 만들라는 말이 나오면서 연 감독은 애초에 품고 있던 아포칼립스 이후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다.
 
그렇게 태어난 <반도>는 말 그대로 좀비로 가득한 한반도를 탈출했던 한 남자(강동원)가 어떤 계기로 다시 반도로 들어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그는 정부도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 지옥 같은 그곳에서 살아내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일종의 희망을 품게 된다. 운전과 RC카 조종에 능한 두 아이와 그들의 보호자 민정(이정현), 김 노인(권해효) 등이다.
 
시작은 아이들?... "어른으로서 염치 있어야"
 
연상호 감독에겐 두 가지 방향이 있었다. 좀비 자체에 집중할 것인가, 좀비 틈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집중할 것인가.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했다. 여기에 좀비 세상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자동차를 몰며 좀비를 쓸어버리는 상상을 더했다. <반도>가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어른이 아닌 아이와 여성, 그러니까 보호의 대상이자 약자로 표현되던 이들이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부산행>과도 차별점이 분명했다.
 
"<반도>를 기획할 때 몇 가지의 그룹을 상상했다. 하나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군인 집단, 또 하난 좀비 세계에서 통용하는 윤리를 주장하는 윤리주의자들, 마지막으로 윤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광신적 집단이 있었는데 카체이싱 설정을 잡으면서 군인 집단으로 정했지. 민정이 바로 (타락과 윤리적 집단의) 접점과도 같다. 아이들 때문에 사는 거지. 아이들 입장에선 좀비로 가득한 세상 이전의 기억이 없으니 현실 자체가 그들에겐 평범한 거지.
 
그렇게 가닥을 잡고나서 아이가 자동차로 좀비를 밀어내는 걸 상상했던 것 같다. 사실 아이들은 어떤 세계에 던져지든 적응을 빠르게 하는 존재더라. 과거를 보면 4살 먹은 아이가 소를 치기도 했잖나. 요즘엔 상상도 할 수 없지(웃음). 아포칼립스 세계라고 해서 아이들이 타락한다거나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민정은 그래서 군인들과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 (주)NEW

  
 15일 개봉하는 <반도>

15일 개봉하는 <반도> ⓒ NEW

 
<반도>를 비롯해 연상호 감독 작품의 주인공은 대체로 연약하고 지질하다. 걸출한 능력, 모두가 인정하는 대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강동원이 맡은 정석이라는 인물 또한 그렇다. 4년 전 가족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 허무주의에 빠진 캐릭터로 결정적인 순간에 무기력해지곤 한다.
 
"대의를 품은 인물, 혹은 완전한 악인 등을 상상하기 힘들더라. 시시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 제 작품에선 주인공이었다. <반도>의 배경도 그래서 상징적인 곳보다는 좀 곁가지가 맞다고 생각했다. 강남대로에서 카체이싱을 할 수도 있고, 631부대의 근거지가 국회의사당일 수도 있는데 그런 걸 배제하고 싶었다. 왜냐면 이들이 반도에 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아니었으니까."
 
오목교 지하차도, 새빛둥둥섬, 인천항만, 쇼핑몰 등 영화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공간 설정을 설명하며 연상호 감독은 기이하고 특이한 상황 속에 남겨진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별히 주인공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공감하길 원하는 투였다. 여성 캐릭터가 중후반부를 이끌어 가며 사실상 정석의 감정과 생각을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는 점도 <반도>의 특징이다. 연상호 감독이 말을 이었다.
 
"사회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부산행>과 <염력>까지도 관성적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상업영화니 큰 배우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등 말이다. 영화라는 건 몇 년 후를 내다보고 기획해야 하는데 관성적으로 할 수는 없겠더라. 주인공으로 보이는 정석이 초중반 이후 다시 세팅되는 느낌을 받으실 거다. 강동원 배우가 불만을 가질 법도 한데 오히려 더 이해하고 즐기면서 했던 것 같다. 현장에선 이레(<반도> 속 카체이싱을 이끈 준이 역할)가 주인공 아니냐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웃음).
 
아이를 낳고 나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이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불행한 일을 안 겪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한편으론 애가 불행을 한 번도 안 겪고 크면 어떤 사람이 될까, 다른 사람의 불행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생각도 든다. 근데 아이가 크면서 알아서 잘하더라. 저와 다른 인격체이기에 제가 고민할 게 아닌 것 같다. 다만 어른으로서 뭘 줘야 하나 고민한다. 지금 생각하는 건 조금이라도 염치를 갖는 게 중요하겠다는 것이다. 뭔가를 해내기보단 염치를 알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대의를 품은 인물, 혹은 완전한 악인 등을 상상하기 힘들더라. 시시한 욕망을 가진 인물에 제 작품에선 주인공이었다." ⓒ new

 
"관객들 더 헷갈리게 만들고 싶어"
 
학교 폭력을 통해 인간의 계급 의식을 나타낸 <돼지의 왕>, 광적인 모습을 부각한 <사이비>, 나아가 상업영화로서 용산 참사를 전면으로 짚어낸 <염력> 등 연상호 감독은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반도>는 메시지보단 장르적 재미가 한층 강화된 모양새다.
 
"<반도> 자체로 어떤 (사회적) 운동의 성질을 가져야 한다는 건 아니었다. 이건 아주 보편적 이야기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로 야만성을 보이면서 휴머니즘을 보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에 몇 가지 (운동적) 뉘앙스가 존재하긴 하는데 강조하진 않았다. 외국영화를 보면 아빠와 딸이 주인공인데 인종이 다른 경우가 있다. 굳이 영화에선 설명하진 않는다.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라 하는 거지. <반도>에서도 준이와 유진(이예원)이 민정의 친딸인지 우연히 만난 딸인지 설명하진 않는다. 영화 내에 그런 게 꽤 있다.
 
<반도>도 사실 주제가 명확하긴 하다. 대사로도 나오잖나. 결국 탈출인데, 어디에서 탈출하는지가 중요하다. 정석이 대체 어디로부터 탈출하는지 그걸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전 단편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누구는 알아차리고 누구는 못 알아차리는 주제로 영화를 만드는 건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도 마찬가지였다. 1년에 100편을 보든 1편을 보는 사람이든 똑같이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알아먹을 수 있는 사람만 보라는 건 일종의 문화적 계급주의랄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체인질링> 엔딩을 좋아하는데, 대사로 마지막에 분명하게 말하잖나. 어제 없던 희망이 생겼다고."

 
한국형 좀비물, 이른바 K 좀비물의 창시자로 언급되는 그지만 연상호 스스로는 그런 수식어에 갇히길 거부하고 있었다.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 기록을 세우며 흥행 부담도 매번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는 초연한 모습이었다.
 
"<부산행>이 흥행 기준으로 언급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제 전작이니까. 개인적으론 다행, 아니 감사하게 생각하는 측면도 있다. <부산행> 때도 <돼지의 왕> <사이비>와 비교해주셨고, <염력>도 <부산행>과 비교해 주시더라. 제가 업자가 아닌 작가라고 생각하시니 그런 시선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전 다양한 걸 하고 싶다. 어린이 영화도 만들고 싶다. 관객을 더 헷갈리게 해야지 하는 이상한 욕구도 있다(웃음).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이 <스파이 키드>를 만들었잖나. 제겐 더욱 그를 좋아하게 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론 좀비물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사극도 있었고 최근엔 < #살아있다 > 정도인데 현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물도 더 보고 싶다. (좀비물 창시자로 알려진) 조지 로메로 감독이 만약 좀비 저작권을 주장했으면 이렇게까지 세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픈 소스처럼 내버려둔 결과지. 사실 절 두고 무슨 K 좀비물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제가 저작권료를 받는 것도 아니잖나. 오픈 소스 가지고 마음대로 창작하는 창작자지." 

 
 영화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1년에 100편을 보든 1편을 보는 사람이든 똑같이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 new

 
플랫폼의 변화... "영화보다 속도 훨씬 빨라"
 
<부산행>의 성공 이후 꾸준한 상업 영화 제작, 여기에 최근까지 드라마 <방법> 작가로 참여했던 연상호 감독은 플랫폼의 다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과거 <발광하는 현대사>를 제작하며 극장이 아닌 IPTV 유통을 실험하는 등 다양한 플랫폼, 유통 방법을 고민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최규석 작가와 함께 웹툰 <지옥>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선보이는 것 또한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플랫폼이 다양해지는 게 전 좋다고 생각한다. 플랫폼의 성격을 무시한 채 영화를 만들긴 힘들다. 예전처럼 극장만 생각했다면 제 작품의 성격은 매우 좁아졌을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여러 소재를 극장용으로 만들었을 때 다수 대중의 사랑을 받긴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방법>을 영화로 했다면 아마 잘 안됐을 것이다. <지옥>도 예산은 큰데 극장용으로 하기엔 무리였을 것이고.
 
요즘엔 제가 전에 봤던 영화들을 몰아보고 있다. <강시 선생>,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들도 다시 보고 있다. 예전엔 단순히 즐기는 입장으로 봤다면 이젠 기획자 입장에서 저런 건 어떻게 가능했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플랫폼의 진화가 작품의 혁신보다 빠른 시대이다 보니 그걸 잘 읽어서 거기에 맞는 혁신성을 가져가고픈 욕심이 있다.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무엇일까? 요즘 많이 생각한다. 저도 어릴 때 대부분 TV나 비디오로 작품을 봤지 극장엔 자주 가진 않았다. 제겐 일종의 맘 먹고 나가는 나들이였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 영화를 준비했다. 극장 문이 오래 닫혔다가 이제 열리기 시작하는데, 안전하게 나들이 가서 <반도>라는 영화를 보고 기분 좋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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