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 브릿팝 >

신간 < 브릿팝 > ⓒ 안나푸르나

 
TV에 나오는 댄스 가요를 가장 좋아했던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해외 록밴드는 오아시스(Oasis)였다. 한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해외 록밴드 중 하나다. 오아시스의 음악은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멋'이 있었다. 친구의 MP3 플레이어에 담겨 있었던 'Wonderwall'이 첫 경험이었다. 노엘 갤러거가 만들어내는 서정적인 멜로디, 시종일관 건들거리는 리암 갤러거의 모습은 나를 매료시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아시스의 라이벌이 블러(Blur)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Charmless Man'의 경쾌한 리듬과 재치에 푹 빠졌다. 그리고 20대 초반, 한 록페스티벌에서 밴드 스웨이드(Suede)의 공연을 보았다. 무대 위에서 셔츠를 걷어 올리고 도발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보컬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날부터 스웨이드는 내 마음 속에서 오아시스를 제치고 첫 번째 록스타가 되었다.
 
오아시스와 블러, 스웨이드, 펄프. 이 밴드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1990년대에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으며, '브릿팝'이라는 이름으로 수식되었다는 것이다. '브릿팝'은 한국의 음악팬들에게 몹시 익숙한 단어다. 우리 가요계에서도, 아티스트의 신곡이 발표될 때 '브릿팝 풍의 감성적인 기타 사운드'와 같은 소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브릿팝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창구는 거의 없었다. 궁금증을 확실하게 해소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난 5월 발간된 책 <브릿팝>(권범준 저)을 추천하고 싶다. 한국에서 발간된 책 중에서, 이만큼 브릿팝 음악과 1990년대 영국 록 음악을 진지하게 연구한 책은 없다. 저자 권범준씨는 지금은 사라진 음악 잡지 <핫뮤직>, <재즈피플>, <파라노이드> 등 많은 음악 매체에서 글을 써 왔으며, 오아시스와 스트록스, 스타세일러, 누노 베텐코트(익스트림) 등 수많은 록 뮤지션들과의 인터뷰 경험 역시 갖추고 있다.

브릿팝은 '영국 팝'이 아니다
 

저자는 브릿팝이 1990년대 영국 문화 예술계에 한정된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브릿팝은 1980년대의 매드체스터 음악을 비롯, 영국 록 음악 역사의 여러 순간들을 포착해서 집대성한 기타 중심의 록 음악이다. 브릿팝은 시대적인 흐름과도 그 궤를 함께 한다. 너바나(Nirvana)를 중심으로 미국의 그런지 음악이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 영국 언론과 음악팬들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영국적인' 록 음악을 바랐다.

1994년 여름, 마가렛 대처에 이어 집권한 토니 블레어 정권은 '쿨 브리태니아' 운동을 통해 영국의 국가 브랜드를 재고하고, 신선한 이미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때 국가주의적 홍보의 수단으로 쓰인 것 중 하나가 '브릿팝' 음악이었다. '영국적인 것'을 최고의 기치로 삼았던 매체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 는 스웨이드에게 영국의 상징인 유니온잭을 입히기까지 했다(이것은 아티스트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브릿팝'이라는 단어는 여러 차례 오남용되곤 했다. 브릿팝 자체에 매우 비판적이었던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가 브릿팝 밴드로 분류되기도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팬들에게 친숙한 콜드플레이(Coldplay)와 트래비스(Travis) 역시 브릿팝 밴드가 아니다. 이들은 브릿팝 밴드들의 영향을 받은 밴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확히는, 1990년대 브릿팝 시대가 종식된 이후 등장한 '포스트 브릿팝' 밴드에 가깝다.
 
저자는 이 책에서 브릿팝의 개념을 정확히 하는 것은 물론, 브릿팝과 그 이후의 영국 록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들어보아야 할 120여장의 앨범들을 소개했다. 여기에는 오아시스와 블러, 펄프와 스웨이드처럼 시대를 정의한 이들도 있고, 오퇴르나 블루톤즈처럼 한국에서는 매우 생소한 이름들도 있다. 그 뿐 아니라 프란츠 퍼디난드의 댄스록 앨범 < You Could Have It So Much Better >, 카사비안의 < KASABIAN > 등 브릿팝에 포함되지 않는 2000년대 영국 록 앨범들도 소개되어 있어, 록팬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모든 음악은 역사적인 연결고리 속에서 탄생하기 마련이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유명한 노엘 갤러거도 스미스(The Smiths)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두고 언제나 경의를 표한다. 비틀즈와 데이빗 보위에 이어,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사라진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 폴 웰러(Paul Weller)가 없었다면 브릿팝 현상도 없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브릿팝>은 1990년대 영국 음악계를 직접 누리지 못한 한국의 음악팬들을 브릿팝 시대로 인도한다. 풍부한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 한 만큼, 당시 영국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길라잡이가 된다. 저자가 의도한 것처럼, 이 책은 한국 최초의 '브릿팝 개론서'로서 등장하는 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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