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스틸 컷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스틸 컷 ⓒ tvN

 
진부하게 애용되는 드라마 소재인 '출생의 비밀'이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가족입니다>(아래 '가족입니다')에서는 다르게 펼쳐진다. 출생의 비밀은 대체로 이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저열한 암투나 모략으로 무성하기 마련이지만, 이 드라마에선 이 관성이 민망할 정도다.

엄마의 '졸혼 선언'으로 시작해 기억이 22살로 돌아간 아버지의 이야기를 거쳐, 김상식(정진영 분)과 이진숙(원미경 분)의 첫째 딸 은주(추자현 분)가 상식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를 알게 된 가족들은 저마다 이 비밀이 미칠 자장의 한 극으로 함몰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비밀을 알기 전과 후는 다를 수밖에 없기에, 과거를 반추하며 그 비밀로 영향받을 각자의 현재와 미래의 질서를 다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장녀라는 이유로 은주에게 과도하게 지워졌던 소녀 가장 역할은 비밀의 누설로 인해 가족 모두에게 죄책감과 책임감을 안긴다. 그렇다면 이들 가족은 누설된 출생의 비밀로 해체될 것인가 아니면 재구성될 것인가?
 
엄마 진숙으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된 은주는, "엄마 인생을 망가뜨리며 태어난"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과 자신을 "포기하지 않아서 고마"운 마음이 교차해 혼란스럽다. 이미 남편의 비밀로 일격을 당했는데, 뜻밖에 불거진 출생의 비밀까지 드러나게 되자 은주는 사면초가다. 소녀 가장으로 살아내느라 엄혹한 시절로 날려버린 20대는 공허할 테고, 독함으로 버틴 삶의 갑옷도 지친 은주에겐 무거울 것이다. 엄마에게 "그때 왜 나한테 고맙단 말 안 했"냐고 묻는 은주의 말에는 가족이라는 미명으로 기대받은 일방적 희생에 대한 회한이 짙게 배어난다.
 
오랫동안 소녀 가장으로 살았던 은주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 tvn

 
대학을 졸업하고 꽤 오랫동안 은주처럼 소녀 가장으로 살았던 시절이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 때문에 늘 초조했고 예민했고 날이 갈수록 사나워졌다. 은주처럼, 가족이라는 질곡에 잡혀 한번 펴보지도 못하고 진 꽃 같은 청춘이 서러웠고 외로웠다.

은희는 언니 은주를 "말로 연쇄살인도 가능할" 사람이라며 그 신랄함을 비난하지만, 나는 은주의 그 독함이 사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녀 가장 역할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감 그리고 지독한 고독 때문이었음을 이해한다. 그런 은주가 이 지긋지긋한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택한 수단이 새로운 가족 만들기인 결혼이었다는 것은, 독립적인 은주의 선택으로는 썩 개운치 않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족을 끊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은주의 결혼은 행복하지 못했다. 행복할 수 없었다.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동성애자 남편과 이성애자인 여자가 알콩달콩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파국일 수밖에 없는 결혼을 피하고자 아이를 가지려 난임시술까지 감내하며 노력한 은주에게 남편의 커밍아웃은 청천벽력이다. 남편 윤태형(김태훈 분)이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그의 엄마가 보이는 비인격은, 소위 '금수저' 집안이라 불리는 가족들의 실체가 실은 '쇼윈도 패밀리'에 지나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전시하고 있다.

아들의 비밀을 몰랐을 리 없는, 그것도 직업이 의사이기까지 한 시어머니는, 의학계에서 이미 반세기도 전에 성정체성은 더 이상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분류될 수 없음을 강한 자성으로 선언한 바 있는데, 여전히 아들의 성정체성을 치료할 수 있는 질병쯤으로 여기는 몰상식을 선보인다. 
 
며느리에게 아들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결혼시키는 비인격적 행위를 저지르고도 며느리에게 사과하기는커녕, 그녀는 "너무 기우는 결혼"을 선물했으니 이쯤은 눈 감아야 하지 않겠냐는 우아한 차별주의자의 본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약자에게 "칭찬을 가장한 화려한 모욕"을 표창처럼 날릴 수 있는 시어머니의 저열함은 인간으로서도 실격이다. 태형이 부모에게서 그의 성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은 적지 않은 성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게이 합창단 'G Voice'를 다룬 다큐멘터리 <위켄즈>에 등장하는 게이 대부분은 타인에게 느끼는 절망보다 가족에게 겪는 몰이해에 더 상처받고 있었다.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하고도 가족에게 내쳐지지 않고 살아가는 게이는 드물었다. 은희(한예리 분)의 말처럼 "가족은 남이 찾지 못하는 급소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언제든 강력한 한방을 날릴 수 있다". 어쩌면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어 가장 무서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은주는 막돼먹은 시어머니에게 한 방 날릴 수 있을까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취한 방편이었지만 어느덧 태형을 사랑하게 된 은주는, 그를 더 이상 부부(가족)라는 형태에 고착시킬 수 없음을 알기에 슬프다. 밝혀진 진실 앞에 남편의 성정체성을 수용하고자 애쓰는 은주의 모습은 영화 <대니쉬걸>의 아내 게르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날 벼락처럼 들이닥친 자신의 여성성에 눈뜬 남편 에이나르는 여자가 되고 싶고 여자로 살고 싶다.

에이나르가 여자가 되기 위해 당시로서는 실패할 위험이 큰 성전환 수술을 감행하고 그로서 죽을 때까지, 게르나는 끝까지 함께 한다. 당시 나는 게르나의 지극한 사랑이 뭉클하긴 했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도달하기 불가한 영역이라 혼란스러웠다. 그토록 사랑한 남편을 잃어야 하는 그녀의 상실감 또한 기막혔을 텐데도, 영화는 그녀가 변함없이 남편을 돌보는 헌신을 보여줬다. 역할이 바뀌어 아내가 남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면, 남편은 그 아내를 게르나처럼 승인하고 죽음의 순간까지 동반자가 되어주었을까. 아닐 거라는 대답이 환청처럼 들려, 진심이었겠으나 사회적으로 학습된 게르나의 헌신이 가여웠다.
 
은주는 남편 태형의 커밍아웃으로 인해 받은 충격과 사랑의 상실이라는 아픔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친구로서 "당신 슬픔은 내가 지고 갈게"라는 기꺼움은 그녀의 사랑이 이미 부부애를 관통한 우정의 싹을 발아시키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갈등을 딛고 은주가 보여주는 성숙함에 비해 태형의 뒤늦은 커밍아웃은 은근한 아웃팅의 형식으로 은주에게 폭로되었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태형의 모습은, 그가 비록 사회적으로 약자인 성소수자로서 힘든 처지였음을 감안하더라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 부모와 절연하고라도 할 수 없는 결혼은 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는 그때에도 지금도 미처 성숙하지 못한 유약함으로 상황을 회피한다. 자신밖에 모른다고 비난하는 자신의 엄마와 실상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은주가 이혼을 결심하고 시어머니를 찾아가자 시어머니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결혼보다 이혼이 더 현실적"이라며 마각을 드러낸다. 아들의 비밀을 감추고 결혼시킴으로 며느리에게 준 상처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족을 끝내고 타인이 될 때는 계산을 잘해야 한다는 속물성은, 그녀가 말하는 가족이란 실상 경제적 이익집단에 지나지 않음을 자백하는 꼴이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태형에게 버젓한 아버지가 있음에도 어째서 이 모질고 속물인 악역은 엄마로만 재현되는 것일까? 태형의 아버지는 어디 가고 오직 엄마만 자식의 불행을 즐기는 마녀로 등장하는 것일까? 마지막까지도 며느리에게 사과를 하지 않는 시어머니에게 은주는 분노한다. 은주는 이 막돼먹은 시어머니에게 유효한 한 방을 날릴 수 있을까?
 
언니 은주에게 크나큰 부채감 갖게된 은희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한 장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한 장면 ⓒ tvN


은주의 출생의 비밀을 안 동생 은희는 언니 은주에게 크나큰 부채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 번도 따뜻이 위로해 줄 줄 모르는 심장이 얼음 같은 사람이라 모질게 쏘아붙쳤지만 실은, 그 독설이야말로 언니에 대한 부채감이 반작용했던 못난 자격지심이었고, 돌이켜보니, 언니 은주가 아프고 외로울 때 가족인 자신은 얼마나 위로하는 동생이었는가에 회한이 사무친다.

아버지가 다름으로 순혈에 금이 갈까 조바심치는 이 정서는 참으로 시대착오적이지만, 가족이란 미명으로 행해지는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헌신은, 준 사람 뿐아니라 받는 사람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고, 그 상처는 온전한 관계를 해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은희가 자신이 상처 입을 것을 뻔히 알고도 과거를 헤집고 들어가 그 시절의 언니와 조우하는 모습은 그녀가 엄마 진숙의 말처럼 허당이 아니라, 매우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임을 알게 한다. 그녀는 인생 처음으로 많은 용기를 내고 있다. 출생의 비밀로 위기에 처한 가족의 순혈성을 밀레니얼 초가족 하이브리드로 가공하기 위해, 갑자기 훅 들이닥친 두 남자와 갈팡질팡 연애 아닌 연애에서 자신이 숨겨온 감정과 직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은주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동생들에게 "나는 이제 가족 관계가 달라질 거야. 알아버린 이상 달라질 수밖에 없어"라며 보이는 변함없는 냉랭한 태도는, 순혈이 아니어도 피는 피니까 물보다 진할 거라는 시청자의 기대를 가볍게 배신한다.

훈훈한 가족 드라마라면 이런 설정에서, 눈물 몇 줌을 뿌리고 변함없을 피의 인연을 과시하고 오글거리는 사랑의 말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역시 가족밖에 없어'라며 가족다움을 잔뜩 고조시키겠지만, 이 드라마는 이렇게 서툰 봉합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냥 각자 상상해보자. 내가 이 가족의 적자가 아니라는 게 알려졌고, 그런 집을 돌보기 위해 이십대를 날려버린 입장이라면, 이런 선 긋기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을 안 주인공이 나서서 가족 관계를 복원시키려는 무모함을 포기하고, 오히려 그 주변인이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로 선회하고 있다. 순혈이 아닌 것이 은주 탓이 아니고 순혈인 가족이 무슨 자격증도 아니지 않은가. 은주의 상처 난 마음은 섣부른 가족애가 아닌 치열한 성찰로 회복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드라마 12회의 마지막은 상식의 기적과도 같은(너무나 비현실적이라 판타지로 다가오는) 개과천선이 너무 늦었음을 암시하며, '고개 숙인 아버지'로 회귀하려 한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아프다고 죽는다고 무조건 휘두른 폭력에 면죄부를 주면 안 되는데... 이들 가족은 아빠의 위기로 다시 복고 가족주의로 회귀하고 마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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