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공포 영화감독을 꼽으라면, 필자는 짐짓 고민하는 척하다가 아리 애스터를 말할 것 같다. 2018년에 <유전>, 2019년에 <미드소마>로 공포 영화 팬들의 주목을 이끈 아리 애스터는 1년의 텀을 두고 양질의 공포 영화를 제작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한국에서는 <미드소마>를 만들 때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해 주목 받기도 했다. 그러한 인연 때문인지 아리 애스터는 <지구를 지켜라!>의 영문판 리메이크를 맡게 되었다.
 
한국의 공포 영화는 해를 거듭할수록 평론가와 대중들로부터 외면받는 처지다. 그럼에도 여름마다 공포 영화가 개봉되어 '한 철 장사'하듯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장화홍련>, <기담> 등 작품의 재미와 생각해볼 여지를 주던 양질의 한국 공포 영화는 어째서 계보가 희미해진 걸까. 필자는 어떤 대답을 하기보다 아리 애스터의 <유전>을 제시하고 싶다.
 
1. <유전>의 서사
 
미니어처 조형사인 애니 그레이엄(토니 콜렛)은 얼마 전 임종한 모친의 존재를 집안에서 느낀다. 애니의 모친은 비밀이 많고, 영문 모를 사람들과 어울리던 사람이었다. 때문인지 모친의 장례식장에서 애니는 가족들마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참석한 것을 의문스럽게 여겼다. 약간의 틱 장애를 가진 애니의 딸 찰리 그레이엄(밀리 샤피로)은 기분 나쁘게 웃고 있던 남자마저 목격한다.
 
장례식을 치른 날 밤, 애니는 모친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유서를 발견한다. "우리 희생은 큰 보상으로 올 것이다"라는 글귀와 함께. 모친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애니의 가족은 '희생하듯' 불가사의한 현상에 휩싸이게 된다.
 
애니의 남편 스티브 그레이엄(가브리엘 번)은 장모의 무덤이 파헤져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애니에겐 함구한다. 학교에서 찰리는 죽은 비둘기의 목을 가위로 잘라 주머니에 챙기는데, 먼 곳에서 자신에게 한 여자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목격한다.

한편 애니는 영화를 보러 간다고 스티브에게 거짓말을 한 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그룹에 가서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녀의 친척들 모두가 정신병을 앓고 있으며, 모친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 부친은 우울증을 앓다가 죽었고, 오빠는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모친이 자신에게 무언가 넣으려 한다며 반항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애니의 아들 피터 그레이엄(알렉스 울프)은 파티에 여동생 찰리를 데리고 가게 된다. 피터가 그곳에서 같은 반 여학생과 마약을 하는 동안, 찰리는 땅콩 알러지가 있음에도 땅콩이 들어간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호흡곤란을 호소한다. 급히 찰리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 위해 피터는 차를 몰지만, 찰리가 호흡을 위해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민 사이 사고가 벌어진다. 도로 위에 놓인 사슴의 시체를 피하던 피터가 급커브를 하고, 그 사이 찰리의 머리가 전봇대에 부딪히고 만다.
 
딸의 사망에 슬퍼하던 애니는 다시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그룹에 참여한다. 도중 빠져나온 애니에게 조앤이라는 여성이 그룹원 중 하나였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이후 애니는 조앤의 집에서 자신의 편린을 털어놓는다. 애니는 사실 몽유병을 앓고 있었으며, 찰리의 사망 이후 다시 증상이 발현되었다고 말한다. 오래 전 증상이 있었을 때 차릴와 피터, 그리고 본인 몸을 불태우려 했고 이후로 자식과의 거리가 벌어졌다고 이야기한다.
 
다음 날 애니는 조앤에 의해 강령술을 접하게 된다. 묘한 분위기 속에서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접한 애니는 뛰쳐 나오려고 하지만, 그런 애니를 붙잡고 조앤이 딸을 만나고 싶으면 가족과 함께 실천해보라며 강령술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애니는 가족 몰래 주문을 외운 뒤, 스티브와 피터를 깨워 찰리를 볼라보자고 사정한다. 내켜하지 않던 스티브와 피터가 의식에 동참하고, 애니는 무언가에 빙의된 듯 어린 여자애의 목소리로 말하게 되는데.
 
2. <유전>의 미쟝센
 

아리 애스터의 <유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소품의 활용이다. 미니어처 디자인을 하던 애니가 마감에 쫓기며 만들던 디오라마는 영화 뒷면에 위치한 서사를 해설하는 역할을 한다. 모친의 입원, 관계 맺는 애니와 스티브를 엿보던 모친, 출산하자마자 찰리를 빼앗아가는 모친 등, 영화의 서사가 시작되기 전에 있었던 불가사의한 일들을 디오라마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외에도 <유전>은 소품의 배치와 활용, 구도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서사가 다소 뜬금없어 보일 여지가 있다. 찰리가 목을 부딪혀 죽게 된 전봇대에는 어째서인지 애니의 모친이 하고 있던 목걸이와 같은 문양이 그려져 있다. 목이 잘린 비둘기는 찰리의 죽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인물의 대화, 또는 친절한 연출이 아닌 다양한 소품을 통해 <유전>은 서사의 진행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유전>의 감상 포인트는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벌어지는 와중, 그 현상 주위에 치밀하게 설치된 '음모'의 편린을 알아채는 데에 있다. 서사는 이어지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소품과 배경은 어째서인지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일관성이 작품 말미에서야 진실을 드러내며 관객을 납득시킨다.
 
이러한 특징은 작금의 한국 공포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함이다. 관객을 깜짝 놀래키기 위한 점프 스캐어에 주력한 한국 공포 영화는, 영화적인 미쟝센을 지향하기보다 승객의 스릴만을 위해 조성된 롤러코스터의 양식을 따르는 것만 같다. 멀리 보았을 때 '무서워 보인다'는 감상이 드는 모양새지만, 정작 '영화적인' 느낌은 쉽게 들지 않는 것이다.
 
롤러코스터는 가장 처음 탈 때 무서운 법이고, 타면 탈수록 무엇을 타든 스릴은 반감된다. 영화의 감독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관객은 그저 여름마다 상영하는 한국 공포 영화를 '무서운 것' 즈음으로 치부하는 이유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롤러코스터마다 다양한 이름이 있지만 결국은 롤러코스터로 치부되는 것처럼, 한국 공포 영화 역시 '무서운 것' 정도로 여겨지는 이유가 아닐까. 언젠가는 질릴 수 있는 한정된 양식으로 관객에게 작용하는.
 
3. 무엇이 공포를 만드는가
 
아리 애스터의 <유전>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된 이후 평단의 지대한 호평을 받았다. 현재 로튼토마토 신선도(영화 관련 웹사이트 가운데 하나) 89%를 유지할 정도로 명성을 쌓았다. 반면 관객의 로튼토마토 신선도는 64%에 불과했다. 나쁘지 않지만, 제법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새였다.
 
이는 <유전>의 작법이 일반적인 공포 영화와 다르게 작용됐기 때문이었다. 관객을 직접적으로 놀라게 만드는 장면은 적고, 미쟝센을 통해 서서히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식을 채용한 까닭일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작금의 공포 영화들에 익숙한 관객들이 <유전>의 방식을 따라가지 못했기에 호불호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유전>에서 시도된 작법이 시간이 흐를수록 지루함을 호소하게 만들 정도로 정형화된 공포 영화의 작법을 비튼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포 소설의 대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감정은 공포"임을 주지시키며,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라고 말했다. 공포 영화가 사람에게 내재된 두려움을 이끄는 장르 예술의 한 예라면, 앞으로 공포 영화에게 주어진 과제는 '미지의 것'을 끊임없이 관객에게 보급하는 것일 터다.
 
때문에 공포 영화는 어떤 다른 영화 장르보다도 정형화되기 쉬우며, 이를 탈피하는 데에 많은 상상력을 요구한다. 아리 애스터의 <유전>은 공포 영화라는 장르가 지속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변화'를 드러낸 기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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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사와 문학 그리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과 관찰을 통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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