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사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사진 ⓒ CJ ENM


하루종일 손에서 떼 놓을 수 없는 스마트폰, '지니야' 부르기만 해도 원하는 걸 척척 보여주는 텔레비전, 드넓은 콘텐츠의 바다에서 취향에 맞는 동영상만 골라 보여주는 유튜브 알고리즘 등. 우리는 많은 것을 기계에 의존하는 게 당연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언젠가는 사람과 로봇을 구분하는 것조차 모호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지난 6월 30일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로봇이 우리의 일상에 다가온, 가까운 미래를 상상한 작품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시간적 배경은 2049년이다. 서울은 메트로폴리탄(행정구역을 초월해 광역 지역에 걸쳐 형성된 도시를 일컫는 말)이 되었고, 사람들은 누구나 당연하게 집안일을 대신 해주는 헬퍼 로봇과 함께 산다. 그러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로봇 제작사도 계속해서 새로운 버전의 헬퍼 로봇을 내놓는다. 자연히 구형 버전의 로봇은 주인으로부터 버려질 수밖에 없다.

헬퍼봇 버전5 올리버와 버전6 클레어의 만남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사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사진 ⓒ CJ ENM

 
외곽 지역의 한 낡은 아파트에는 사람과 완전히 흡사하게 생긴 구형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살고 있다. 주인이 떠나고 혼자 남겨진 이들은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 이젠 교체 부품 제작까지 단종돼 죽을 날(완전히 고장나는 날)만을 기다리는 신세다. 이미 아파트의 많은 로봇들이 명을 다했고 남은 로봇들도 많지 않은 상황. 외로운 시간을 견디는 구형 로봇들의 일상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우리 사회의 독거노인들을 은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올리버는 매일 아침 화분을 돌보고 잡지를 읽는 하루를 반복하던 어느날, 배터리를 빌려달라고 찾아온 다른 헬퍼봇 클레어를 만난다. 작품은 두 헬퍼 로봇이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을 따스하게 그린다.

처음 두 로봇은 버전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시기한다. 헬퍼봇 버전5 올리버는 버전6인 클레어를 "6는 수익만 추구하느라 내구성이 나쁘다", "배터리도 빨리 닳는다"며 비난하고, 클레어는 버전5에 없는 기능을 자랑하는 식이다. 그러나 외로웠던 두 로봇은 결국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로봇인 올리버와 클레어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취향도 인간과 매우 닮아 있다. 올리버는 확실한 아날로그 취향을 자랑한다. 오래된 레코드 플레이어의 노이즈를 좋아하고, 1960년대 미국의 재즈 음악가 쳇 베이커 앨범을 줄줄 꿰고 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이미 옛 버전이 되어버린 스스로에 대한 자기방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된 것에도 그만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반면 클레어는 과거 여러 주인들에게 학대 당하고 버림받았다는 기억 때문에 관계에 굉장히 냉소적이다. 인간은 언제나 변덕스러운 존재이고, 세상에 영원한 관계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클레어는 옛날 주인을 '친구'라고 부르고, 그 주인을 다시 만나 함께 지내고 싶어하는 올리버를 무시한다. 주인을 찾아가려 하는 올리버에게 "상처받을 게 분명하니 가지 말라"고 권하기도 한다. 로봇들의 이러한 모습들은 너무나 인간다워 극을 보는 사람들도 공감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2049년 인공지능 로봇들의 고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사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사진 ⓒ CJ ENM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사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사진 ⓒ CJ ENM

 
극의 중반부 클레어는 반딧불을 다시 보기 위해, 올리버는 옛날 주인을 다시 만나기 위해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두 로봇은 혼자가 아닌 함께 보내는 시간에 익숙해지면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점점 배우게 된다. 로봇을 통해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 작품은 인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2049년의 인공지능 로봇들이 하는 고민은 2020년을 사는 우리들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 로봇이 더이상 누군가를 도울 수 없다면 존재의 이유를 완전히 잃은 걸까',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행복한 기억까지 잃어도 괜찮을까'. 1인 가구 600만 시대에 <어쩌면 해피엔딩>은 우리에게 왜 이웃이 필요한지,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초연 때부터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로 호평받아온 작품이다. 당시 97회 중 70회 매진을 기록하며 창작 뮤지컬로서는 이례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후 '2017 예그린 뮤지컬 어워드' 올해의 뮤지컬상, 연출상, 음악상, 여자인기상, '2018 한국뮤지컬어워즈' 소극장뮤지컬상, 극본/작사상, 작곡상, 연출상, 프로듀서상, 여우주연상 등 국내 주요 뮤지컬 시상식을 휩쓸기도 했다. 게다가 최고 시청률 14.1%(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을 기록한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 전미도, 정문성이 이번 시즌에도 합류하면서 좌석을 구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8일 공연에도 많은 관객들이 소극장 좌석을 꽉 채웠다. '코로나 19'의 전국적인 확산으로 인해 공연업계 역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어쩌면 해피엔딩>만은 연일 매진 행렬을 기록하는 중이다. 반드시 코를 덮은 채 마스크를 착용하고, 문진표를 작성한 후 열을 잰 뒤에야 입장할 수 있게 하는 등 공연장은 방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언택트 문화에 익숙해진 지금, 온기를 나누는 로봇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오는 9월 13일 전까지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를 찾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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