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을 주부로 살아보니 주부구단의 요건 중 하나는 '냉장고 잘 파먹기'임을 알겠다. 점점 자투리 재료들이 모이고 사망 직전의 식재료가 발생하면 재빨리 그러모아 그럴듯한 한상을 차려내는 능력, 그것은 가정경제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지구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는 주부구단이 된 듯한 뿌듯함은 덤이다.
 
'제로 웨이스트'란 단순히 쓰레기를 잘 처리하는 것 이상의 포괄적 의미를 지닌다. 자원의 라이프 사이클을 재디자인해서 모든 생산품이 재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즉 쓰레기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일련의 원칙들을 말한다. 쓰레기가 매립지나 소각장, 혹은 바다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5개국어로 번역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의 저자 비 존슨은 제로 웨이스트의 실천방안으로 5R을 제시한다. Refuse(거절하기), Reduce(줄이기), Reuse(재사용하기), Recycle(재활용하기), Rot(썩히기)가 그것이다.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고 비닐봉지, 빨대 등은 거절한다.(Refuse) 꼭 사야하는 것은 최소한의 양만 포장이 적은 것으로 구입하거나 직접 용기를 가지고 가 벌크로 구매한다. 장바구니와 텀블러를 이용해 일회용 쓰레기를 줄인다.(Reduce) 충전식 건전지를 이용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와 컵 등은 재사용한다.(Reuse) 거절하거나 줄이거나 재사용할 수 없는 것은 재활용한다.(Recycle) 나머지는 썩혀서 퇴비로 만든다.(Rot)
 
이런 방식으로 비 존슨의 4인 가족이 1년에 배출하는 쓰레기는 1리터 남짓. 실제로 그녀는 한국 강연회에 쓰레기가 담긴 1리터 짜리 유리병 하나를 들고왔다.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기 위해 소비를 줄이자 연간 40% 가량의 생활비가 감소됐고, 소비를 위해 쓰이던 시간은 가족과의 활동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제로 웨이스트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았다고 말한다.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이어지는, 쓰레기를 없애려는 노력
 
 8일 방송된 tvN 예능 <식벤져스>의 한 장면

8일 방송된 tvN 예능 <식벤져스>의 한 장면 ⓒ tvN

 
세계 곳곳에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레스토랑들이 있다. 그중 헬싱키의 '놀라'를 소개하고 싶다. 주방에 쓰레기통조차 없는 식당이라니. 작년 7월 비즈니스 매체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에 소개된 '놀라(Nolla)'는 이름부터가 핀란드어로 '제로(0)'를 뜻한다.
 
'놀라'가 오픈 후 가장 먼저 당면한 과제는 배달되는 식재료의 포장재였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인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일회용 포장재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 이에 커피를 진공 비닐백에 담아 배달하던 업체에는 반복 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용기를, 농작물 배달 업체에는 상자를 이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공급업체들도 경비절감의 효과가 있으므로 기꺼이 동참했다.
 
'놀라'의 셰프들은 제철재료를 선정한 뒤, 어떻게 하면 야채와 생선을 한 조각도 남김없이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신중히 메뉴를 계획한다. 네 가지나 여섯 가지로 구성된 세트메뉴를 제공하는데, 주문이 편중되어 상대적으로 잘 팔리지 않은 음식의 재료가 남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하루 영업이 끝날 때까지 어디에도 사용되지 못하고 남은 음식 쓰레기는 퇴비통에 넣어두었다가 농부들에게 되돌려보내거나 손님들에게 나누어준다.
 
쓰레기를 없애려는 노력은 아주 세심한 부분에까지 이어진다. '놀라'의 기프트 카드를 받는다면 마당이나 화분을 꾸밀 수 있는 씨앗까지 함께 얻게 된다. 플라스틱 대신 씨앗이 담긴 종이로 기프트 카드를 만들기 때문. 메뉴는 메뉴판을 사용하지 않고 셰프들이 직접 칠판에 적어넣는다.
 
이외에도 덴마크의 '아마스'는 보통 쓰레기라 불리는 과일껍질, 씨, 야채줄기를 이용해 양념이나 야채칩을 만들고 심지어 발효음식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미국의 '블루힐' 역시 야채 착즙 찌꺼기로 만든 버거, 비트 뿌리 절임, 당근 꼭지 마멀레이드 등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개발한 신박한 음식들을 선보이고 있다. 버리는 게 당연해서 식재료라 생각지 못했던 재료들이 전문기술과 창의성을 만나 신메뉴로 재탄생한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 버려지는 식재료의 양
 
 8일 방송된 tvN 예능 <식벤져스>의 한 장면

8일 방송된 tvN 예능 <식벤져스>의 한 장면 ⓒ tvN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아직 이런 레스토랑이 없다. tvN의 예능프로그램 <식벤져스>의 등장이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 이유다. 해외에서의 한식당 운영과정을 담으며 최고시청률 14.1%, 16%을 기록했던 <윤식당1,2>, '김치밥이 피오씁니다', '니가 비비바락 국수', '수근이 몇 살? 부챗살!' 등 작명센스 돋보이는 메뉴들을 선보이며 웃음까지 선사했던 <강식당1,2,3>, 제주의 감귤농장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수익금을 전액 기부했던 <커피 프렌즈>.

그 프로그램들을 통해 tvN은 이미 연예인들의 '식당 운영'이라는 콘셉트를 성공시킨 바 있다. 이번에는 거기에 '제로 웨이스트'를 결합시켜 일명 '제로식당'을 열었다. 배우 봉태규, 문가영과 아이돌 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 그리고 세 명의 셰프들이 의기투합했다.
 
'제로식당'은 미리 계획한 메뉴에 따라 재료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의 푸드 로케이션을 통해 버려지는 식재료를 기부받아 그에 맞춰 요리를 해야 한다. 이것이 기존 '제로 웨이스트' 레스토랑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식벤져스>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이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쳤던 식재료의 엄청난 비밀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 찾은 곳은 서울 '광장시장'의 육회거리였다. '육회 낙지 탕탕이'에 쓰이지 못하고 버려지는 식재료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단지 메뉴에 적합하지 않아서 버려지는 낙지 대가리는 한달 평균11만 개, 달걀 흰자 연 평균 200만 개, 자투리 소고기가 한달 평균 500kg이었다. 쉽게 가늠조차 되지 않는 양이다. <식벤져스> 팀이 기부 받은 것만 해도 낙지 대가리 약 700개, 소고기 자투리 부위 26kg, 달걀 흰자 약 18L, 열무 뿌리 8kg, 각종 채소 자투리 10봉지였다.
 
자, 이제 그 재료들을 남김없이 소진할 수 있는, 그러면서 맛도 훌륭한 '신메뉴'를 만들어낼 시간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버려지는 매번 다른 재료들로 메뉴판에 존재한 적 없는 요리를 '창조'해야 하니 전문셰프들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중식 사대문파 '아서원' 계승자인 '주방의 화(火)신' 유방원 셰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수셰프 출신인 '도마 위의 아티스트' 송훈 셰프. 컨템퍼러리 한식을 선보일 '식재료 연금술사' 김봉수 셰프. 가히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지만 그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고심 끝에 선보인 메뉴들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방원 셰프는 낙지 대가리를 주재료로 소를 만든 뒤 달걀흰자를 이용한 머랭으로 만두피처럼 겉을 감쌌다. 그런 뒤 '활유(滑油, 뜨거운 기름을 끼얹어 음식을 익히는 조리법)'로 정성스레 익혀 '미스터리 유'라는 메뉴를 만들었다. 겉보기에도 눈송이처럼 사랑스러운 이 음식에 손님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송훈 셰프가 만든 '새벽에 후니가 몰래'는 달걀 흰자, 배 자투리 부분, 배 껍질을 이용해 만든 디저트였다. 머랭으로 브리오슈를 채웠고, 배껍질은 와인과 설탕을 만나 달달한 토핑과 그라니타(얼음과자)로 탈바꿈했다. 배껍질이 요리에 이용될 줄 누가 알았을까. 첫날 영업을 마친 뒤 낙지 대가리는 약 700개 중 30개, 달걀 흰자는 약 18L 중 0.5L가 남았다. '식재료'를 '식제로'로 바꾸었다 말해도 좋을 만한 성과였다.
 
<식벤져스>의 행보를 응원한다
 
 8일 방송된 tvN 예능 <식벤져스>의 한 장면

8일 방송된 tvN 예능 <식벤져스>의 한 장면 ⓒ tvN


3회에서 밝혀진 식재료의 비밀 역시 충격적이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작게 개량된 꼬꼬마 양배추는 알맹이를 제외한 겉잎이 버려지는데 그 양이 연간 500 톤이다. 중량 미달로 버려지는 꼬꼬마 양배추도 약 100 톤에 달한다. 더 놀라운 것은 19호 닭이었다.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닭은 1kg 정도인 10호. '닭은 크면 질기고 맛없다'는 편견 때문에 그보다 큰 닭은 판매되지 못한다. 코로나 여파로 적기를 놓쳐 너무 커져버린 19호 닭들은 급랭보관되고 있었는데 1년 이상 보관은 불가능하다 했다. 현재 냉동고에 보관중인 닭은 약 25만 마리. 뿐만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브로콜리는 꽃부분일 뿐, 그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잎과 뿌리는 먹을 수 있음에도 모두 버려지고 있다. 한해 버려지는 브로콜리잎은 2만 톤이다.
 
꼬꼬마 양배추 겉잎 7포대, 브로콜리 잎 2포대, 19호 닭 50마리, 죽순 껍질과 뿌리 1포대. 두 번째로 재료가 도착했으니 다시 셰프들이 나설 차례였다. 처음 시도한 요리들은 낯설고 조합마저 생소한 재료들 탓에 부족함이 보였다. 진땀나는 수정과 보완을 거쳐 탄생한 메뉴는 '봉수 월과채'와 '난리났네 유서방'. 꼬꼬마 양배추 겉잎, 죽순 뿌리, 아스파라거스 밑동, 19호 닭을 이용해 만든 '봉수 월과채'는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손님들의 호기심을 가장 잘 충족시키는 메뉴'라는 봉태규의 극찬을 끌어냈다. '난리났네 유서방'은 '피엔'(중식도의 칼등을 이용해 재료를 밀고 짓이기는 기법), '마티다오'(말발굽 소리를 내며 다지는 기술), '부유'(浮油, 재료를 기름에 뜨게 해 익히는 조리법) 기법과 '브로콜리 즙으로 지은 밥'을 결합시켜 시식한 이들의 동공을 확장시켰다.
 
다음 주 수요일(15일)에는 이 요리들이 손님과 만나는 과정이 그려질 것이다. '제로 웨이스트'의 실천이라는 미덕을 넘어 손님들의 미각도 만족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동안 구입한 재료만 알뜰살뜰 다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님을 <식벤져스>를 보며 깨닫는다. 우리 모두는 멀쩡하게 버려지는 식재료를 방치함으로써 후대에게서 빌려쓰는 지구에 죄를 짓고 있었다. '제로 웨이스트'가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자연스런 일상이 되길 바라며, '먹기만 해도 지구를 구하는 초특급 에코 프로젝트' <식벤져스>의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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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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