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컨택트> 포스터

영화 <컨택트>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모두에게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과거, 현재 그리고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시간 중 우리는 현재에 머무르며 살아간다. 미래는 상상의 영역이지만, 과거는 이미 벌어진 일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은 기억 속에 저장되어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다. 모든 기억을 다 꺼내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문득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만난다. 그때 꺼내어 보는 기억들은 벌어진 시간 순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게 여러 기억이 뒤섞여 떠오른다. 

만약 미래에 내가 경험할 일들을 과거의 기억처럼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우리는 이미 우주에서 흐르는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구에서의 시간은 먼 우주와 다르고, 지구 안에서도 이동하고 있는 사람의 시간과 머물러 있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미래를 기억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적인 시간은 다르지만 모두 현재에 머무르며 과거의 일들을 꺼내어 보며 살아간다.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나은 미래를 얻기 위해 살아가기도 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려 노력한다. 각자가 그리는 미래는 다르고, 준비하는 방법도 다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그 미래를 떠올릴 수 없기 때문에 하는 행동들이다.

시간과 기억에 대한 영화 <컨택트>
 
 영화 <컨택트> 장면

영화 <컨택트>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영화 <컨택트>는 외계인에 대한 영화이지만 시간과 기억에 대한 작품이기도 하다. 12개의 외계 비행체가 세계 각지의 하늘에 도착하면서 언어학 전문가인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와 과학자 이안(제레미 레너)이 현장에 투입된다. 이들은 군인들과 같이 외계 물체 안에 자리한 외계인들과 만나게 되고,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특히 루이스는 보다 적극적으로 외계인들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의 처음은 루이스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루이스가 기억하는 딸과의 추억 그리고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모습까지... 그가 딸과 겪었던 희로애락이 짧은 영상으로 스쳐 지나간다. 이 기억들은 루이스가 외계 언어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순간순간마다 스쳐 지나간다. 루이스는 이런 기억들을 떠올린 후에 외계인과의 대화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고 점점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기억이란 매우 주관적인 저장 방법이다. 한 장소에서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각각 다르다. 하지만 다양한 기억의 모습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일을 저장하고 필요한 디테일을 취사선택한다. 때론 그렇게 저장된 기억이 현재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영화 속 외계인이 대화에 이용하는 문자는 시간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것은 기억과도 연관이 있는데, 필요한 시간의 기억을 현재에 떠올려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계인들은 루이스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기억 중 필요한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리고 루이스가 그들의 언어를 배워갈수록 그가 느끼는 시간의 공간과 기억은 점점 더 확장된다.

사실 영화 초반과 중간에 보여지는 루이스의 기억은 시간이 마구 뒤섞여 있다. 아이를 출산한 때, 아이와 노는 시간 그리고 아이가 아파 침상에 있는 시간 등 여러 기억들이 루이스의 현재 시점에 간간이 떠올려진다. 이 기억들은 영화 중반부 외계인과 루이스가 직접 만나 교류하는 순간 매우 구체적으로 떠올려진다. 루이스는 그 순간 떠오르는 기억들이 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경험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 <컨택트> 장면

영화 <컨택트>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외계인이 주고 간 선물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들은 문자라는 선물을 주고 간다. 그 문자의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영화는 알려주지 않지만 적어도 루이스에게만큼은 다른 사람과 다른 상대적인 시간을 선물해주고 갔다. 아니 그것은 달리 보면 저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인류를 공격과 전쟁의 늪에서 구해낼 수 있는 정보를 주었지만, 루이스는 그것으로 인해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일들을 세세하게 알게 된다.

만약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모두 알고 있고, 그 기억을 언제든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알고 있는 미래와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그 미래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루이스는 외계인과의 소통을 계기로 만나게 된 이안과 결혼하게 되고 딸을 낳지만, 딸은 성인이 되기 전 불치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 기간 동안 루이스는 즐거운 기억과 슬픈 기억, 화나는 기억 등 다양한 희로애락의 기억을 가지게 된다. 그 모든 기억을 다 알고도,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루이스는 그 기억을 그대로 따라간다.

사실 루이스에겐 얼마든지 선택권이 있다. 현재에서 미래를 향하는 길에 벌어질 불행한 일을 막기 위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아예 의미 없는 수동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좋은 기억을 택했다. 딸과의 수많은 즐거운 기억들, 아이가 토라져 있는 모습, 아이와 뛰어놀던 즐거운 한때 등이 그 길을 가게 만들었다. 심지어 딸이 아파 병상에 누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그 순간조차 루이스에게는 소중한 삶의 기억이다.

남편인 이안은 그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고 루이스를 떠난다. 이혼한 두 사람의 관계를 딸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객관적인 시선에서 루이스를 바라보는 관객들 가운데에는 그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살아온 기억들 중에는 버릴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나쁜 기억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주변에는 분명히 작게나마 좋은 기억들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들을 버리라고 한다면 사실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 기억이 자신의 자식과의 기억이라면 더더욱 버리기 어렵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아이가 자라는 모습 하나하나는 머릿속 기억에 어딘가에 저장되고, 삶을 살아가는 순간 순간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기억들이 내가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 내가 알던 아이와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면, 그건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영화 <컨택트> 장면

영화 <컨택트>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현재를 즐기며 경험해가는 기억들

영화 <어바웃 타임>엔 주인공 팀이 시간 여행을 갔다가 과거의 무언가를 바꾸었더니, 현재 태어난 아이의 성별이 바뀌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팀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다시 그 문제를 그대로 두는 것으로 마음을 바꾼다. 부모에게 한 번 태어난 아이는 절대 바꿀 수 없다. 그 아이와 함께한 수많은 추억들은 어떤 순간이 와도, 그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슬픈 기억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이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은 축복이고 버리지 못할 기억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루이스도 미래에 자신에게 벌어질 그 기억들을 바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직 현재에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루이스에게 이미 절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루이스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알고 있는 길을 밟아간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하나하나 다시 경험해 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소중하다. 외계인을 만나 소통하며 모든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루이스가 깨닫게 된 건, 바로 현재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이미 무슨 일이 벌어졌든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즐겨야 한다. 그 소중한 시간들은 흘러가지만, 그때의 감정과 기억들은 고이고이 간직된다. 그리고 몇 번이고 그 경험을 다시 하게 만든다.

말이 통하지 않던 외계인들과 소통하게 되고, 그들로 인해 모든 세계가 다시 화합하여 평화를 되찾는 모습은 결국 전 세계가 나아갈 방향이 '모두 함께'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중반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소통을 끊으면서 그것을 해석하고 공격적으로 나가려 하던 각 나라들이 다시 화합의 길을 선택했을 때, 외계인이 주고 간 선물은 안전하게 전달되고 세계 공통의 문제는 순식간에 해결된다. 

영화 <컨택트>는 외계인의 문자와 행동을 빌려 거시적으로는 소통과 화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개별 구성원들의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현재를 어떤 태도로 지나가야 하는지를 미시적으로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벌써 영화가 개봉한 지 수년이 흘렀지만, 작품은 큰 위기 속에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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