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네어 레코즈는 2020년 7월 6일, 해체를 선언했다.

일리네어 레코즈는 2020년 7월 6일, 해체를 선언했다. ⓒ 일리네어 레코즈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힙합 시장의 규모는 커다란 팽창을 거듭했다. 많은 랩스타가 등장했고, 많은 초등학생의 꿈이 랩스타가 되었다. 힙합 음악을 테마로 한 페스티벌에 수천 명의 관객이 모이기도 했다. 래퍼들은 금시계와 목걸이를 과시하며 '자수성가'의 서사를 과시했다. 더 이상 힙합은 한국에서 '배고픈 음악'으로 여겨지지 않게 된 것이다.

좋든 싫든, 이 성취를 좌우한 가장 큰 변수는 엠넷 <쇼미더머니>였다. 그리고 이 현상에 공헌한 단 하나의 레이블을 뽑아야 한다면, 대다수가 '일리네어 레코즈'를 떠올릴 것이다. 도끼와 더 콰이엇, 빈지노. 이 3인 체제는 2010년대 한국 힙합신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해왔다.

그리고 지난 6일, 일리네어 레코즈의 전격 해체 소식이 전해졌다. 빈지노의 계약 해지설이 보도된 지 4일만이다.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2019년 2월 빈지노가 전역한 이후, 일리네어 레코즈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리네어의 더 콰이엇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일리네어 레코즈는 지난 10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아티스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힙합의 판도 바꿨던 세 남자

 
 2015년 투어 당시의 일리네어 레코즈

2015년 투어 당시의 일리네어 레코즈 ⓒ 일리네어 레코즈

  
소울 컴퍼니가 해체된 이후, 당시 소울컴퍼니의 수장이었던 더 콰이엇은 2011년 1월 도끼와 함께 일리네어 레코즈를 설립했다. 그리고 2011년 6월 '재지팩트'로 이름을 알린 빈지노가 합류하면서, 지금 팬들에게 가장 익숙한 3인 체제가 완성되었다.
 
'일리네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트랩 사운드와 '머니 스웩(Money Swag)', 즉 돈 자랑이다. 예전부터 본토의 힙합 뮤지션들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는 가사를 많이 썼다. 그러나 머니 스웩이 한국에서 낯선 것으로 여겨지던 2010년대 초, 일리네어 레코즈는 본토의 문법을 한국 힙합에 수혈했다. 미국의 힙합 그룹 미고스(Migos)가 유행시켰던 스타일의 '벌사치 플로우'를 차용한 '연결고리'는 2014년을 강타한 싱글이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차와 시계, 목걸이로 상징되는 '부'를 과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멋'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취를 과시하는 한편, 이 화려한 성취의 기반에는 자신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단어 그대로 'Started From The Bottom'이다. 동시에, 이들은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대중적인 사랑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연결고리' 같은 힙합곡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그리고 이러한 흐름을 창모, 수퍼비 등의 래퍼들이 이어가고 있다).

"사진기가 찰칵대고 사람들이 물어봐
zino what's that brand?" - 빈지노 ('가' 중)


'잘나가만 왔네 난 어릴 때부터 내 삭막한 삶에
꿈 바라만 봤기에 흔들림 없이 잘 따라서 왔네' - 도끼 ('내가' 중)
 
'돈 세는 것도 질려 이제 난
정말로 필요해 지폐를 세는 기계가' - 더 콰이엇 ('Profile' 중)


일리네어 레코즈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일각에서는 비판 여론도 높아졌다. 일리네어처럼 되기를 원하는 래퍼들이 양산되었고, 이들은 비슷한 스타일의 머니 스웩으로 일관했다. 이에 따른 피로감도 커졌다. 한국 래퍼들의 가사에 깊이가 사라졌다고 비판하는 팬들도 있었고, 더 콰이엇에게 소울 컴퍼니 시절처럼 감성적인 가사를 써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는 팬들도 많았다.

래퍼 제이통은 '개량한복'을 통해 도끼와 더 콰이엇을 디스했다. 그는 '거품 투성이 정신머리에 끊어진 연결고리'라며 날을 세웠다(제이통은 빈지노를 디스하지는 않았다. 빈지노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비판을 제쳐놓고, 일리네어가 한국 힙합의 규모를 키우는 데 공헌한 스타 그룹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각자의 길을 가다
 
일리네어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3인방은 어느 시점부터 서로 다른 행보를 걷게 되었다. 빈지노는 힙합에 국한되지 않는 예술적 확장을 원했다. I.A.B 스튜디오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빈지노는, 음악과 다른 예술을 펼칠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한국 힙합계의 대부' 이미지를 굳힌 더 콰이엇 역시 정력적으로 음악 활동(랩과 프로듀싱)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 활동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난 도끼는 '힙합 순수주의자'에 가깝다. 그 역시 미국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 중에 있다.
 
세 사람의 음악 여정은 계속될 것이지만, 팬들에게는 분명히 아쉬운 일이다. 일리네어, 앰비션 소속의 뮤지션들이 공연을 할 때마다 보여주던 권총 모양의 '일리네어 포즈'도 더 이상 볼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지금의 많은 젊은 래퍼들이 여전히 일리네어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일리네어 레코즈 산하의 레이블 '앰비션 뮤직'에 소속된 창모와 해쉬스완, 애쉬 아일랜드, 제네 더 질라, 김효은, 릴러말즈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렇게 일리네어 레코즈는 수많은 '일리네어의 아이들'을 뒤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영원한 것은 없음을 안다. 그러나 이것이 2010년대와의 작별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저희만이 음악에서 들려줄 수 있는 에너지는 멈추지 않겠다는 거예요.
절대로, 뭐가 어떻게 됐던간에.. 나는 내 한계를 믿지 않겠다.
어디가 끝인지 나는 정말로 보고야 말겠다." - 'A Better Tomorrow'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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