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 <# 살아있다>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살아있다> 장면

영화 <#살아있다>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여느 때처럼 배틀 그라운드 인터넷 방송을 하던 '준우(유아인)'는 원인불명 증세의 사람들의 공격에 통제 불능에 빠진 도시를 목격한다. 좀비들의 거센 공격에 어쩔 수 없이 집에 고립된 준우는 혼자서라도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전기와 수도는 물론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전화 모든 것이 끊긴 채 고립되고 최소한의 식량마저 바닥이 나자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진 그. 바로 그 순간 건너편 아파트에 있던 또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이 신호를 보내오고, 준우는 유빈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많은 장르 영화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좀비 영화는 특정한 공식에 맞춰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최근의 많은 좀비 영화들은 인간의 이기심과 잘못으로 생겨난 좀비로 인한 아포칼립스 상황을 다룬다. 좀비가 인육을 탐닉하고 소리에 민감한 것, 또 그들에게 물리지만 않으면 좀비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설정들은 거의 모든 좀비 영화가 공유하는 설정이다. 특히 좀비들이 철저히 도구나 배경으로 소비된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다.

좀비와 인간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 <웜 바디스>를 제외하면, 좀비는 스펙터클을 보여주고(월드 워 Z), 화려한 액션의 도구(부산행)이며 심지어는 유머의 대상(좀비랜드)이다. 그러나 유아인, 박신혜 주연의 < # 살아있다 >는 다르다. 이 작품은 좀비 영화의 공식을 대부분 따라가면서도 좀비를 단순히 눈요깃거리로 소비하는 대신, 좀비로부터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지에 대해 사유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좀비가 된 모녀, 좀비가 된 경찰
 
 <#살아있다>박신혜

<#살아있다>박신혜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야기의 흐름만 놓고 보면 <#살아있다>는 다른 좀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인 준우와 유빈은 원인불명의 경로로 좀비들이 나타났을 때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는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상실감에 빠지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위로를 받기도 하며, 좀비들의 특징과 약점을 조금씩 알아채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한다. 마지막 순간 또한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활용해 좀비와의 전쟁에 나서거나 안전지대로 대피하는 데 성공하는 다른 좀비 영화 속 주인공들과 유사하다.

대신 < # 살아있다 >는 좀비를 색다른 방식으로 묘사한다. 특히 인간이 좀비가 되는 과정을 유독 구체적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예를 들어 좀비가 처음 등장한 상황에서 영화는 한 모녀가 좀비로 변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딸은 엄마를 애타게 찾고, 칼 든 채 좀비들을 경계하던 엄마는 딸을 발견하자 곧장 껴안는다. 그러나 재회의 순간도 잠시, 이미 좀비에 물린 상태였던 딸은 이내 엄마를 물고 그들은 함께 좀비로 변한다.

또한 한때 동료였으나 좀비로 변한 경찰들로부터 한 여자 경찰이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도망치는 모습 역시 세밀하게 카메라에 담긴다. 하지만 좀비로 변한 인물들이 주인공들과 관련이 있거나 이후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연출은 의아한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화는 좀비가 되는 과정을 자세히 포착하지만, 대상자들의 서사를 제시하지는 않고 그들이 모녀 관계이거나 경찰이라는 가장 간단한 인간관계만 알려준다.

< # 살아있다 >는 새로운 설정을 좀비에게 추가하기도 한다. 작중 좀비들은 인간이었을 때의 직업적 습관을 그대로 할 수 있는 존재들로 등장한다. 그래서 다른 영화나 드라마 속 좀비와 다르게 경비원이었던 좀비는 손으로 문을 열고, 소방관이었던 좀비는 로프를 타고 아파트를 올라가기도 한다. 경찰옷을 입은 좀비들은 조직을 이뤄서 나름 체계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을 사냥한다. 이러한 설정들은 좀비 영화에서 흔히 기대할 수 있는 클리셰를 비틀면서 극의 긴장감을 유지시키기도 하지만, 가끔 등장하는 서프라이즈를 제외하면 극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이처럼 색다르지만 그 자체로는 다소 어색한 연출과 설정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그 의미를 찾는다. 우선 딸이 엄마를 감염시키고, 한 집단에 속했던 이들이 다른 동료를 공격하는 장면은 준우에게 식량을 보내주는 유빈과 본인도 위험한 상황에서 유빈이 위기에서 벗어날 시간을 먼저 벌어주는 준우가 생존에 성공하는 모습과 대비를 이룬다. 기초적인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물론 사회적 공동체의 관계가 모두 파괴되었음을 보여주면서 시작한 영화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롭게 관계를 맺을 때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며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 맺음에 대한 통찰은 SNS를 비롯한 모든 연락수단이 끊기는 등 희망이 보이지 않는 영화의 분위기가 준우와 유빈 사이에 로프 하나가 연결되는 것을 기점으로 전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위 장면들의 대비는 영화가 좀비로 변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 서사 없이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드러나는 이들에 주목한 결과 더욱 두드러진다. 구체적인 서사가 없다는 점에서 좀비가 된다는 것은 특정한 개인의 사연 이상의 불특정 다수의 이야기로 거듭난다. 이에 더해 최소한의 인간관계만을 알려주는 것은 좀비로 변하는 과정이 단지 한 개인이 죽는 것이 아니라 그 주위를 구성하는 관계가 끊기는 과정임을 암시한다. 영화는 후반부에 좀비가 된 아내를 놓지 못하는 남자와 자신을 죽여달라는 유빈의 부탁에 끝까지 망설이는 준우의 최후를 대조시키는데, 이 역시 인간은 관계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주제의식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좀비가 인간일 때처럼 행동한다는 설정은 유빈의 대사와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그녀는 자살을 시도한 자신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준우에게 "살려고 했으니깐 살아있는 거예요"라면서 살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스스로를 구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간에 굴복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행동할 때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뭔가 돌파구를 찾기보다는 집 안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가던 준우의 모습은 좀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면,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와중에도 집 밖으로 나서서 자신의 어려움을 어떻게든 타개해보려는 준우와 유빈의 모습은 진정으로 살아있는 인간처럼 보인다.

이처럼 <#살아있다>는 다른 좀비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연출과 설정을 통해 인간은 관계 안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주면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는 정의를 제시한다.

몰입감 끌어올리기에는 성공했으나
 
 <#살아있다> 스틸샷

<#살아있다> 스틸샷 ⓒ 롯데엔터테인먼트


하지만 명확한 주제의식과 이를 효과적으로 살려낸 부분을 제외하면 < # 살아있다 >는 전체적으로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과감하게 배경 설명을 생략한 채 곧장 본론을 꺼내며 관객들의 몰입감을 끌어올리는 것이나, 짧지 않은 시간 홀로 극을 이끌어 가면서 공포, 두려움,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낸 유아인 배우의 연기만큼은 분명 인상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내 일관성과 개연성 및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준우가 집안 가구를 부수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던 좀비들이 단순히 탁자가 하나 넘어지는 소리에 반응하거나, 아파트 현관문도 부수는 좀비가 평범한 인간의 완력을 당해내지 못하는 등 좀비에 대한 설정이 필요에 따라 쉽게 바뀌는 대목은 이 영화의 부족한 일관성을 보여준다. 또한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서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장면들도 다수 등장한다. YTN 긴급 재난 보도 도중에 진라면 PPL이 나오는 장면이라든가, 빗물을 받아서 사용할 정도로 물이 없는데 굳이 라면을 끓여먹는 전개, 재난이 시작된 지 20일이 지난 와중에 정전된 상태에서 핸드폰이 마지막까지 충전되어 있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문제점을 드러낸 결과, <#살아있다>는 이전에 접했던 작품들을 단순히 짜깁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SNS와 드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장면은 작년 여름 개봉한 <엑시트>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제목에 #을 포함시키고도 인터넷 방송과 같은 뉴미디어가 작품의 전개에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엑시트> 만큼의 신선함이나 기발함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재난으로 인해 주인공이 홀로 고립되어서 구조를 기다리는 전개는 이미 <터널>에서 등장한 바 있다. 

사실 그간 그저 배경과 도구로 소비되던 좀비의 존재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그로부터 인간다움과 인간다운 삶에 대해 사유하고 정의 내리는 시도만큼은 충분히 주목해볼 만한 대목이다. 이미 좀비 영화를 구성하는 일정한 법칙이 완성된 상황에서 시도된 차별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영화의 디테일이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기반이 될 만큼 치밀하지 못했고, 그 결과 < # 살아있다 >는 자신의 잠재력을 스스로 짓눌러 버렸을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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