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스태프와 관계자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고 최숙현 선수의 사건이 사회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부산의 숙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보도 등에 따르면, 최숙현 선수는 경주시청 감독과 팀 닥터 등으로부터 오래전부터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 성희롱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체육계 고질적인 병패로 꼽히는 폭행과 가혹행위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만 봐도,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출신 이승훈 선수가 과거 후배 선수들을 수차례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며 지난해 7월 출전정지 징계 1년을 받았다. 2016년에는 역도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이 후배에게 전치 6주의 상해를 가한 사실이 알려지며 자격정지 10년의 중징계를 받고 사실상 역도계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는 선수 4명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여자축구의 최인철 전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던 지난해 8월, 과거 클럽과 학원팀 감독 시절 선수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폭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나야했다. 이밖에도 그동안 체육계에서 불거진 조직내 왕따와 군기잡기, 인격모독 등을 둘러싼 사건들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다.

하지만 거듭되는 사건사고와 비판 여론에 불구하고 이러한 가혹행위는 체육계에서 여전히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체육계 특유의 엄격한 서열주의와 폐쇄성, 성적지상주의를 내세워 가혹행위조차 기강확립이나 훈육이라는 관행으로 합리화하려는 잘못된 인식이 여전히 체육계 전반에 깊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인권 감수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발전한 21세기에도 이러한 악습은 세대를 넘나들며 곳곳에서 여전히 대물림되고 있는 실정이다.

군기잡기 문화 수준 넘어선, 야만적인 행위
 
 2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경주시체육회 사무실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왼쪽)이 출석하고 있다. 경주시체육회는 전 경주시 소속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고 최숙현 선수가 지도자와 선배들 가혹행위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감독과 선수들을 불러 인사위원회 청문 절차를 밟고 있다.

2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경주시체육회 사무실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왼쪽)이 출석하고 있다. 경주시체육회는 전 경주시 소속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고 최숙현 선수가 지도자와 선배들 가혹행위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감독과 선수들을 불러 인사위원회 청문 절차를 밟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최숙현 선수가 생전 팀 내에서 당했다는 가혹행위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최 선수는 슬리퍼로 뺨을 맞는 등 수시로 폭행을 당했고, 체중 조절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며칠간 금식을 하거나 몇 십 만 원어치 빵을 한번에 먹게 하는 식고문까지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체육계 특유의 '군기잡기' 문화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야만적인 행위다.

최 선수가 당한 가혹행위는 이러한 군기 문화에 비교적 익숙한 과거 세대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도저히 용납되기 어려운 수위의 심각한 인권유린이다. 국민은 아직도 이 정도의 가혹행위가 백주대낮에 자행되고, 누군가 목숨을 잃은 뒤에야 뒤늦게 알려졌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이 더욱 분개하는 이유는 고인이 끝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기까지 체육계, 나아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숙현 선수는 생전 스포츠 인권센터를 비롯하여 각종 협회와 경찰 등에 사건을 알리며 구조를 호소했지만 사건을 빠르게 해결하려 노력한 곳은 없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인권센터에 처음 사건을 신고한 것은 지난 4월이었지만 이후로 구체적인 조치가 내려진 흔적은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숙현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저지른 경주시청 관계자들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피해자임에도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못한 최 선수는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체육계의 관행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사안이 흐지부지되거나 처벌이 내려진다고 해도 솜방망이 처분으로 끝날 가능성도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선수가 세상의 불공정성과 냉혹함을 직면하며 느꼈을 불안과 고독, 절망감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과거에도 같은 변명...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없어

생전에 최숙현 선수의 간절한 호소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이른바 '책임자'들은, 결국 고인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뒤 미디어를 통하여 대대적인 공론화가 이뤄지고 나서야 고인을 애도한다느니, 엄중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느니 뒤늦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은 이승훈, 사재혁, 조재범의 사건 때도 같은 변명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냉정히 말하여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지 않았더라도 과연 태도가 달라졌을까.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가혹행위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더 넓게는 대한체육회와 체육계 관계자들 모두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은 더 이상 체육계 스스로의 자정능력이나 기존의 시스템만으로는 제2, 제3의 최숙현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씁쓸한 진실이다. 거듭되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혁신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체육계 카르텔, 극단적인 이슈가 있을 때만 겨우 반응하는 미디어와 정치권의 선정적 포퓰리즘을 극복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선수들을 보호하고 가혹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선 기존의 낡은 신고체계나 체육계 특유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 체육계 카르텔에 얽매이지 않는 민간 참여의 비중을 높이고, 대한체육회만이 아닌 해당 협회나 지방 행정기구 등에 독자적으로 징계권과 운영권을 부여하여 각종 폭력과 비리를 상호 견제-검증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최숙현 선수가 생전에 부모에게 마지막 남겼다는 유언은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고인의 마지막 희망과 안타까운 희생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었고, 다시 일어나지는 않아야할 사건이다. 최 선수의 안타까운 비극을 끝으로 체육계에 만연한 잘못된 가혹행위 문화는 근절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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