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포스터.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포스터. ⓒ 소니 픽처스 코리아

 
쿠엔틴 타란티노를 어떤 식으로 소개하든 식상할 게 뻔하다. B급 감성 투철한 오마주 범벅이지만 대중 친화적인 요소 다분한 영화를 내놓는 감독. 폭력성, 희화성 강한 주제와 영화적 구성 완벽한 각본으로 평론가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감독. 그의 영화는 배경지식 없이도 충분히 재밌지만, 배경지식이 얼만큼 있느냐에 따라 재미가 끝없이 상승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작년 여름께 그는 10번째 영화로 연출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이후 곧 영화 한 편을 내놓았으니, 앞으로 딱 한 편만 남은 셈이다. 은퇴 선언이라는 게 그동안의 무수한 선례들을 돌아볼 때 크게 와닿지 않지만, 아직까진 번복하지 않았다. 타란티노 감독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을 볼 때 번복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50대 한창 나이일 때 은퇴한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20년 전 30대 초에 데뷔하자마자 유명인사가 되어 지금에 이르렀으니 스스로가 생각했을 땐 꾸준히 내리막길이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9번째 영화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다. 2017년 여름께 최초 보도되었던 바, 미국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으나 이후 직접 찰스 맨슨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아니라 전체의 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극을 이끌 주연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 그리고 마고 로비라는 최고의 캐스팅을 완성시켰다. 브래드 피트와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는 <장고: 분노의 추격자>로 함께하며 좋은 하모니를 연출한 바 있다. 

한물간 스타와 전담 스턴트의 좌충우돌

1969년 2월 할리우드, 한물간 서부극 스타 릭 달튼은 자신의 전담 스턴트 배우 클리프 부스와 함께 세월을 술로 달래며 악역으로 배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말이 전담 스턴트지, 클리프는 사실상 달튼의 매니저이자 비서이자 친구다. 그는 달튼을 촬영장에 태워주고 집으로 가던 중 히피 히치하이커 푸시캣을 태운다. 그녀는 거주하는 곳을 클리프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옛날 달튼과 클리프가 서부극을 촬영했던 세트장이 아닌가. 클리프는 의아함이 들어 이것저것 확인해 보려 하지만, 히피족들은 그를 경계한다. 

달튼은 촬영에 임하며 중심을 잘 잡지 못한다. 배우 생활을 이어가야 하지만 악역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결정적으론 과거 한때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이젠 쓸모가 없어져 버림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함께 연기하는 8살 꼬마 아가씨와의 진솔한 대화로 마음이 열린 듯하다. 달튼은 절치부심 끝에 인생 연기를 펼치고 감독한테 최고의 칭찬을 받는다. 

한편, 릭 달튼의 옆집엔 유명한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살고 있다. 부인이자 유명한 배우 섀런 데이트는 시내를 거닐며 극장에 들어가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본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좋아한다. 시간이 지나 폴란스키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임신우울증으로 힘들어한다. 와중에, 찰스 맨슨이 찾아와선 레코드 프로듀서 테리 멜쳐가 살고 있는지 물었다가 돌아간다. 

이보다 더 절묘한 팩션은 없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누군가에겐 너무 재밌고 풍부한 영화로 느껴질 테고 누군가에겐 별 다른 스토리도 없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로 느껴질 테다.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50년 전의 1969년 미국 LA 할리우드의 단면을 옮겨놓다 보니, 그것도 사실 그대로가 아닌 '대체 역사'라고 할 만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픽션으로 보이다 보니, 역사적·시대적 사실을 모르면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일례로,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 중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부터 알기 힘들다. 두 주인공인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는 만들어진 인물이고, 찰스 맨슨, 로만 폴란스키, 섀런 데이트를 비롯 스티브 매퀸, 이소룡 등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이런 뒤섞임이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이는 영화의 만듦새 측면에서 보면 이보다 더 잘 만들 수 없다 싶은 점으로 작용된다. 실제와 실존 인물, 픽션과 만들어진 인물을 교묘하게 짜맞춘, 가히 천재적인 솜씨가 발현된 것이리라. 고로, 이 영화는 2번 볼 때부터 진가가 발휘될 테다. 

타란티노 감독의 다른 영화가 떠오른다. 다름 아닌, 브래드 피트 주연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다. 그 영화 또한 실존 인물과 만들어진 인물이 뒤섞여, 잘 알려진 나치 수뇌부가 실제와 다르게 무참히 죽어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배경지식을 아는 만큼 재밌기도 할 테지만, 타란티노식 유머가 결합되어 유쾌·통쾌·상쾌함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대체 역사는, 또 다른 역사라고 할 만큼 탄탄한 한편 믿기 힘든 판타지적 요소도 함께한다.

1969년 당대의 할리우드를 보듬다

영화에서, 할리우드 말고도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히피'이다. 1969년이 히피 문화에서 중요한 해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데, 같은 해 8월에 뉴욕에서 열렸던 '우드스톡 페스티벌'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한편 며칠 전 벌어졌던 찰스 맨슨의 '폴란스키가 살인 사건'과 4개월 뒤의 롤링 스톤즈 '알타몬트 공연'으로 치명타를 입고 몰락했기 때문이다. 즉, 히피는 1969년 한 해 동안 정점을 찍고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코로나19로 무수한 산업계가 타격을 입었지만, 영화계가 입은 타격 또한 심상치 않다. 지금 할리우드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일 것이다. 과거, 1960년대 미국은 텔레비전 보급이 원할하게 이루어져 거의 집집마다 가져다 놓았으니 황금기를 지난 할리우드로선 위기 아닌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와중에 히피 문화를 몰락시킨 찰스 맨슨의 살인 사건이 할리우드와 맞닿아 있다는 게 운명적이지 않은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할리우드인 만큼, 이목이 집중된 크나큰 사건이 당대 가장 잘 나가는 감독의 부인이자 당대 가장 잘 나가는 여배우를 대상으로 이뤄졌던 거다.

물론, 영화에선 역사적 사실 그대로 이뤄지진 않을 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처럼 '나쁜 놈'들이 '나쁜 일'을 당했을 것이다. 영화는, 사실 별 다른 게 없다. 딕 달튼과 클리프 부스와 섀런 테이트 등의 인물을 통해 1969년 당대의 할리우드를 들여다보고 응원하고 보다듬어(?) 주려 한다. 그 폭력성 강한 타란티노 감독이 말이다. 진심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광팬'으로서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랑스러운 '이기심'이 발동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역설적으로 타란티노식의 광팬들은 이 작품을 의아해 할 테고, 영화의 광팬들은 이 작품을 아련하게 받아들일 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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