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전날의 9점차 패배를 하루 만에 똑같은 9점차 승리로 설욕했다.

김태형 감독이 이끄는 두산 베어스는 1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홈런1방을 포함해 장단 19안타를 터트리며 14-5로 대승을 거뒀다. 키움과의 시리즈 전적을 1승1패로 만든 두산은 이날 kt 위즈에게 5-11로 패한 LG 트윈스를 다시 4위로 밀어내며 하루 만에 단독 3위 자리를 되찾았다(29승20패). 

두산은 외국인 선수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가 5안타2타점4득점으로 공격을 주도했고 주장 오재원은 2개의 싹쓸이 2루타로 5타점을 쓸어 담았다. 유격수 김재호가 컨디션 난조로 빠져 있는 두산은 이날 다소 독특한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주전 3루수 허경민이 2016년 9월 27일 한화 이글스전 이후 무려 1373일 만에 유격수로 선발 출전한 것. 하지만 허경민은 유격수 포지션에서도 공수에서 완벽에 가까운 활약을 펼치며 두산의 대승을 이끌었다.

 
 
김민호-손시헌-김재호로 이어진 두산의 유격수 계보

유격수는 말이 필요 없는 내야 수비의 핵심이다. 작년 최하위에 머문 롯데 자이언츠가 타격 성격이 변변치 않았던 딕슨 마차도를 외국인 선수로 영입한 것도, LG에서 2010년부터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던 오지환에게 4년 40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안겨 준 것도 같은 이유다. 유격수가 내야 수비에서, 더 나아가 그 팀의 한 해 농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은 90년대 중반부터 유격수 계보가 비교적 잘 이어진 편이다. 팀의 간판타자였던 임형석이 유격수보다는 3루수에 더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1993년, 김민호(KIA 타이거즈 수비코치)라는 건실한 유격수가 등장해 1995년 골든글러브와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김민호가 잦은 부상으로 예상보다 일찍 전성기가 저물어가던 2003년에는 손시헌(NC 다이노스 수비코치)이라는 공수를 갖춘 좋은 유격수가 등장했다.

손시헌은 군복무로 빠진 2007~2008년을 제외하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 두산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손시헌이 군에 입대했을 때는 트레이드를 통해 이대수를 영입해 쏠쏠하게 활용했다). 은근 잔부상이 많았던 손시헌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한 시즌에 100경기 이상 출전한 적이 없었지만 손시헌이 자리를 비웠을 때는 백업 내야수 김재호와 허경민이 돌아가면서 손시헌의 빈 자리를 잘 메웠다.

2014 시즌을 앞두고 손시헌이 NC로 이적한 후 두산의 유격수 자리를 차지한 선수는 바로 두산팬들이 '천재 유격수'로 부르는 김재호였다. 안정된 수비와 정확한 타격, 평균 이상의 주력까지 겸비한 김재호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두산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두산의 왕조 건설을 이끌었다. 같은 기간 김재호는 3번의 3할 타율과 함께 3개의 우승반지, 그리고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청소년 대표 출신으로 입단 당시 많은 기대를 모았던 허경민은 군 전역 후 김재호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유틸리티 내야수 역할에 머무는 듯 했다. 하지만 광주일고 시절부터 유격수 이미지가 강했던 허경민에게 유격수가 아닌 핫코너에서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주전 도약에 목 말라 있던 허경민은 3루 자리에서 찾아온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18년 골든글러브 출신 3루수, 유격수도 문제 없었다

두산은 2015년 외국인 3루수 잭 루츠가 타율 .111 1홈런3타점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조기 퇴출됐고 새로 영입한 데이빈슨 로메로 역시 전문 3루수는 아니었다. 김태형 감독은 수비 안정을 위해 허경민을 중용했고 허경민은 타격에서도 117경기에서 타율 .317 1홈런41타점64득점8도루를 기록하며 두산의 핫코너를 차지했다. 특히 그 해 가을야구에서는 15경기에서 23안타를 때려내며 역대 단일 시즌 PS 최다안타 기록을 세웠다.

허경민은 박건우, 김재환과 함께 2010년대 중·후반 두산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주력 선수로 활약하며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타율 .324 10홈런79타점85득점20도루로 프로 입단 후 최고의 성적을 올린 2018 시즌에는 35홈런을 때린 최정(SK 와이번스)을 제치고 생애 처음으로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하기도 했다. 

비록 장타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허경민이 공수주를 갖춘 엘리트 3루수임을 부정하는 야구팬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허경민은 3루수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김재호의 백업 역할도 류지혁(KIA)이 주로 맡으면서 허경민이 유격수로 나설 기회는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올 시즌 잔부상을 달고 경기 출전을 강행하던 김재호가 지난 6월 28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김재호의 빈자리를 메운 신예 권민석은 2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김태형 감독은 1일 키움전에서 허경민을 1373일 만에 유격수로 출전시켰고 허경민은 4타수2안타1타점2득점으로 활약하며 유격수 포지션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허경민뿐 아니라 부상 복귀 후 처음 주전으로 나선 오재원이 2루타 2방으로 5타점을 올렸고 3루수로 나선 최주환도 몇 번의 호수비와 함께 3안타3타점2득점으로 맹활약했다. 허경민이 유격수로 변신하던 날, 두산의 새로운 내야 조합이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다.

자신에게 날아온 4개의 타구를 깔끔하게 처리하며 수비에서도 경쾌한 움직임을 선보인 허경민은 김재호가 돌아올 때까지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한 유격수로 활약할 확률이 높다. 허경민의 유격수 활약은 두산에게 주전 유격수 김재호의 공백을 최소화해 줄 뿐만 아니라 FA를 앞둔 허경민의 가치 상승에도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FA시장에서 멀티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선수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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