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운동뚱'의 한 장면

'오늘부터 운동뚱'의 한 장면 ⓒ 코미디TV


최근 코미디 TV의 인기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이 방송 5주년을 맞이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예능 프로그램이 이토록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기도 드문 일이라 관심을 갖고 관련 기사를 찾아 읽었다. 그중, <맛있는 녀석들>이 처음 기획되었을 때 제작진은 물론 출연진 중 그 누구도 프로그램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뚱뚱한' 네 명의 코미디언이 시종일관 먹는 것으로 승부를 보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과연 무슨 재미나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을 것인지 나 역시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맛있는 녀석들>은 출연진들의 재치있는 입담과 쫀쫀한 케미, 그리고 그동안 어디서도 본 적 없던 '한 입만!'으로 입소문을 타며 코미디 TV의 대표 예능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2018년에는 케이블방송대상 예능 부문 대상을 받았고, 2019년 2월에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워낙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재방송도 자주 하는 모양이다. 별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틀었다가 몇 해 전 방송된 편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지금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훨씬 날씬해 보이는 출연진들의 과거 모습 때문이었다. 방송을 진행하는 몇 년 사이 저렇게나 체중이 표나게 불어나다니, 프로정신인가 싶어 감탄스럽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대체 얼마나 많이 먹은 거야, 싶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저래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떠올랐다.
 
복스럽게 잘 먹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라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전문가가 비만을 각종 성인병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만큼 출연자들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포착되고 있고, 그것이 프로그램에서 기인했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운동뚱'의 시대가 열렸다 
 
 '오늘부터 운동뚱'의 한 장면

'오늘부터 운동뚱'의 한 장면 ⓒ 코미디TV


그런데 그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맛있는 녀석들> 5주년 기념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제작진이 네티즌에게, 출연진들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을 때 응답자의 45% 이상이 운동해서 더 건강해진 출연자를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 온 것이다. 여기에 착안해서 <맛있는 녀석들> 제작진은 요즘 각종 방송을 통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양치승 트레이너와 함께 '오늘부터 운동뚱'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았다.
 
추첨을 통해 출연진 중 홍일점인 김민경이 양치승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하게 될 주인공으로 당첨되었다. 많은 사람의 기대 속에 그렇게 '운동뚱'의 시대가 열렸다.
 
사실 <맛있는 녀석들>에서 '운동뚱'의 콘텐츠 제작을 처음 알렸을 때 나는 좀 못마땅했다. 기획자의 의도를 짐작해본 결과, 고도 비만의 여성 출연자는 전문가가 시키는 대로 운동의 바른 자세를 따라 하지 못할 것이 뻔하고 그래서 엉뚱하게 버벅이거나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며 저질의 웃음을 끌어내려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섣부르게 오해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도 장삿속이 빤히 보이는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는 내 편협한 시각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김민경의 숨겨진 '운동 실력'이었다.
 
김민경은 고도의 비만 여성은 당연히 운동을 하지 못할 것이란 모두의 선입견을 비웃듯, 매번 시도하는 종목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안정된 자세와 실력을 뽐내고 있다. 덕분에 유튜브 조회 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고, 프로그램의 연장을 위해 담당 피디가 무릎을 꿇는 명장면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시청자는 알고 보니 '운동 잘하는 뚱'으로 밝혀진 김민경에게 열광했고 '근수저(근육 금수저)'라는 별명을 붙이며 태릉 선수촌이 아까운 인재를 잃었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김민경의 숨겨진 운동 실력보다 더 큰 반전은, 일단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당연히 김민경이 몸매를 위한 다이어트에 매진해서 몰라볼 정도로 살을 쫙 빼고 '짜잔'하는 퍼포먼스를 향해 달려가는 대장정이 펼쳐질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사뿐히 즈려밟은 프로그램의 진정성이었다. 날씬해지기 위한 운동이 아닌 건강해져서 더 잘 먹기 위한 운동을 하겠다는 그녀의 각오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세상 사람이 죄다 날씬해질 필요는 없지 않나? 
 
 '오늘부터 운동뚱'의 한 장면

'오늘부터 운동뚱'의 한 장면 ⓒ 코미디TV


김민경은 헬스도, 종합격투기도, 필라테스도 거침없이 거의 완벽한 자세로 해내면서 시청자들의 잠자는 운동 욕구를 끌어 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운동이 끝난 뒤에는 변함없는 식욕을 뽐내면서 여전히 잘 먹는다. 날씬해질 생각이 없다는 그녀의 당당함은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한다. 그래,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 죄다 날씬해질 필요는 없지 않나?
 
고백하자면 나는 한때 아침마다 몸무게를 쟀다. 그리고 전날보다 1kg만 늘어 있어도 하루종일 기분이 가라앉았다. 또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듣고 난 뒤, 어쩐지 불쾌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것이 곧 "너 살쪘는데?" 하는 질책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다이어트 강박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살면서 한 번도 평균 체중 이상으로 살이 찐 적이 없으면서도 나는 늘 다이어트를 했고, 돌이켜보면 은연중에 그것이 당연한 자기관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운동뚱' 김민경을 보다가 새삼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날씬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먹기 위해서, 더 건강하게 지기 위해서 운동을 하겠다니,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겠다는 그 당찬 마인드가 부럽고 또 장하다. 그래서 마르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는 그녀를 나는 지금 열렬히 응원하는 중이다.
 
내가 당장 김민경처럼 근수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오늘도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그녀의 유연한 몸짓이 자꾸만 내 도전의식을 자극하니 이것 참 큰일이다. 그녀가 하는 대로 홀린 듯이 허리를 세우고 팔을 쭉 뻗어보려 버둥대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이런 말이 나왔다.

"이게 필라테스라고? 어쭈, 이참에 나도 한번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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