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성 소수자는 한국영화에서 더 이상 '낯선' 소재가 아니다. 여성이 되고 싶어하는 소년의 이야기는 2006년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통해 여전한 건재함을 과시한 김희애는 지난해 개봉한 <윤희에게>에서 레즈비언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무관중 온라인 영화제를 진행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작 상영작 중 2편이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 퀴어영화(<담쟁이>, <괴물, 유령, 자유인>)임을 고려해볼 때, 이제 퀴어는 영화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소재와 주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영화제 측의 일방적인 온라인 무료 상영 진행 시도로 홍역을 치른 제1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도 역시 다양한 퀴어 소재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이 중에서 메시지, 주제 전달력은 물론 빼어난 완성도로 영화팬들의 눈을 사로잡은 두 편의 퀴어 영화 <굿 마더>, <신의 딸은 춤을 춘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굿 마더>, <신의 딸은 춤을 춘다> 모두 오는 1일까지 네이버 SERIES ON을 통해 유료 관람할 수 있다. 

<굿 마더>, 성소수자 부모의 시선에서 바라본 퀴어 
 
 제1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상영작 <굿 마더>

제1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상영작 <굿 마더> ⓒ 호우주의보

 
고등학교 교사인 수미(오민애 분)는 최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딸 지수(김예은 분) 때문에 고민이 깊다. 일찌감치 커밍아웃을 선언한 딸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며, 딸의 애인과 같이 밥도 먹는 쿨한 면모를 보여 주기는 하지만, 다른 집 딸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은 딸이 미덥지 않게 느껴진다. 

제1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상영작 <굿 마더>(이유진 감독)는 레즈비언인 딸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이해하고자 하지만, 마음껏 지지하고 응원할 수 없는 중년 여성의 고뇌를 다룬 단편 영화다. 

성 소수자 부모 입장에서 퀴어를 다룬 영화인만큼, <굿 마더>는 동성애 그 자체보다 성 소수자와 그들의 사랑에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은밀한 폭력에 초점을 맞춘다. 딸의 성적 정체성을 존중하고자 하지만, 딸의 동성애가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수미의 양가적인 감정은 성소수자에 대한 지인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기인한다.

반면, 성 소수자 인권 단체에서 일하며 자신의 성적 지향에 당당한 태도를 견지하는 지수는 동성애를 부정하는 수미의 동료 교사들은 물론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하지 못하는 엄마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가부장적인 시선 속 여성 혐오와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지식인들의 위선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는 자식의 성적 정체성을 두고 갈등하는 어머니와 딸의 섣부른 화해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지수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후배 교사를 통해 성 소수자 어머니로서 꿋꿋이 살아갈 수미의 여정에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보낸다. 지난 29일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최근 공개적인 동성 결혼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김규진의 저서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와 연관 지어서 보면 더 좋은 영화다. 

<신의 딸은 춤을 춘다>, 보수적 세상 향한 트렌스젠더 여성의 일침
 
 제1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상영작 <신의 딸은 춤을 춘다>

제1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상영작 <신의 딸은 춤을 춘다> ⓒ 변성빈

 
<뿔>, <우주의 닭>, <손과 날개> 등 꾸준히 소수자, 장애인 문제에 기반을 둔 영화를 만들어 온 변성빈 감독의 신작 <신의 딸을 춤을 춘다>는 어쩌면 한국 퀴어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을 수 있는 놀라운 영화다.

병역판정검사를 받기 위해 병무청을 찾은 트랜스젠더 여성 신미(최해준 분)의 기가막힌 하루를 다룬 영화는 소수자의 약자성을 강조하는 대신, 다양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인 세상에 통쾌한 일침을 날리는 신미의 화려한 살풀이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편견과 차별에 맞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하고 싶어하는 주인공에게는 늘 그(녀)를 괴롭히는 악당(?)이 존재하는 법. 신미의 정체성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보수적인 임상 병리사(임호준 분) 때문에 일은 점점 꼬이게 되고, 늘 그랬듯이 좌절과 울분으로 끝나는 것 같았던 신미의 험난했던 여정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클럽 음악 소리로 반전을 맞게 된다. 

MTF(트렌스젠더)의 황홀한 성장담을 다룬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또다른 성 소수자 혁태(김우겸 분)의 묵묵한 응원과 지지에 있다. 신미의 열렬한 팬이지만,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길 원치 않는 혁태는 그와 달리 정체성에 당당한 태도를 견지하는 신미에게 귀감을 받고, 결정적인 순간에 신미를 돕는 기지를 발휘한다. 

성 소수자들의 연대와 유쾌한 반란을 다룬 <신의 딸은 춤을 춘다>는 어떻게든 자신을 이상한 남자로 낙인 지으려는 세상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살고 싶을 뿐인 존재의 아름다움을 각인시킨다.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며 매사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살아가는 신미에게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주인공에게 강요된 굴레를 벗어던진 마무리가 다소 파격적으로 느껴질지언정, 그 또한 독립 단편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기에 흔쾌히 박수를 보낼 수 있다. 기회가 되면 <신의 딸은 춤을 춘다>를 극장 스크린을 통해 다시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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