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9일에 있었던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트레이드를 통해 비룡군단에 합류한 외야수 김경호는 지난 25일 '친정' 두산과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1번타자로 출전해 2경기에서 9타수6안타3득점으로 맹활약했다. 물론 이날은 SK의 염경엽 감독이 경기 도중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간 안타까운 일도 있었지만 김경호는 하루 동안 7번의 출루(6안타1볼넷)에 성공하며 자신의 진가를 구단과 팬들에게 강하게 각인시켰다.

한 가지 재미 있는 사실은 김경호가 팀을 옮길 당시만 해도 트레이드의 핵심이라기 보다는 '서브'에 가까운 선수였다는 점이다. 당시 SK는 주전포수 이재원의 부상으로 안방 보강이 절실한 상태였고 두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이흥련을 영입하면서 김경호도 함께 데려 왔다. 2014년 두산에 입단해 작년 시즌 32경기를 소화한 것이 1군 경력의 전부인 김경호는 올해도 SK 이적 전까지 두산에서 한 번도 1군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KBO리그에서는 트레이드에서 중심이 되지 못한 선수가 팀을 옮긴 후 의외의 활약으로 트레이드 당시의 평가를 뒤집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록 더 좋은 커리어를 가진 선수와 함께 팀을 옮겼다 하더라도 세월이 흐른 후에는 트레이드의 중심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서브의 설움'을 딛고 트레이드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스타로 성장한 이 선수들처럼 말이다.

국가대표 1번타자로 성장

LG 트윈스는 지난 2001 시즌을 앞두고 한국시리즈 4회 우승과 골든글러브 3회 수상에 빛나는 올스타 3루수 홍현우를 4년18억 원에 영입했다. 하지만 홍현우는 LG 유니폼을 입은 4년 동안 129안타14홈런63타점을 기록하며 해태 타이거즈 시절 한 시즌 기록 만도 못한 처참한 성적을 올리고 말았다. 2004년 홍현우와의 계약기간이 끝난 후 LG의 새로운 과제는 홍현우를 팀에서 내보내는 것이었다.

LG는 2004년 겨울 홍현우를 '친정' KIA로 보내면서 2명의 투수(이원식,소소경)를 데려 왔고 팀에서 차고 넘치던 좌타 외야 유망주 한 명을 함께 보냈다. 당시만 해도 오태근(롯데 자이언츠 수비·주루코치), 이대형에 가려 대주자 및 대수비 요원으로 기회를 얻기도 힘든 1군보다 2군에 더 가까운 선수였다. 그가 바로 훗날 국가대표 1번타자로 성장하는 이용규(한화 이글스)였다.

이병규(LG타격코치), 김재현(SPOTV 해설위원), 박용택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좌타 외야라인을 보유하고 있던 LG와 달리 KIA에는 이용규처럼 발 빠르고 재주 많은 외야수가 부족했다. 이용규는 KIA로 이적하자마자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2006년 타율 .318 154안타78득점39도루를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로 성장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의 중심에도 이용규가 있었다.

야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부질 없지만 당시 LG가 이용규를 지켰다면 팀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물론 LG 역시 2007년 이대형이라는 걸출한 도루왕이 등장했지만 골든글러브 3회 수상, 그리고 국가대표 외야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용규와 도루에 특화된 이대형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들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2004년 겨울의 트레이드가 흔한 유망주였던 이용규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는 점이다.

장성호 트레이드 아닌 '김경언 트레이드'

2002년 타격왕(.343)을 비롯해 9년 연속(1998~2006년) 3할 타율을 기록한 '스나이퍼' 장성호는 FA계약 과정에서 구단과 감정이 상한 후 2010년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당초 두산과의 트레이드설이 있었지만 결국 장성호 영입에 성공한 구단은 한화였다. 한화는 투수 안영명과 박성호, 외야수 김다원을 KIA에 내주고 내야수 장성호와 투수 이동현, 그리고 외야수 김경언을 받아 오는 3:3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김경언은 경남상고 시절부터 빠른 발과 장타력을 겸비한 유망주로 주목 받으며 2001년 신인 드래프트 2차2라운드 전체15순위 지명을 받고 해태에 입단했지만 좀처럼 프로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나마 김성한 감독과 서정환 감독 시절에는 높은 잠재력을 인정 받아 1군 중용됐지만 조범현 감독 부임 후에는 김원섭과 나지완 등에 밀려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했다.

김경언은 한화 이적 후에도 3년 동안 .2할대 중반의 타율을 넘나들며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2014년 김경언은 89경기에서 타율 .313 8홈런52타점을 기록하며 프로 입단 14년 만에 처음으로 인상적인 성적을 올렸다. 김경언은 3년8억5000만원에 FA 계약을 체결한 후 2015년 107경기에 출전해 타율 .337(규정타석미달) 16홈런78타점으로 1년 만에 생애 최고기록을 다시 한 번 경신하며 우울한 한화팬들에게 위로가 됐다.

하지만 김경언의 대폭발은 2015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김경언은 2016년과 2017년 각각 66경기와 38경기 출전에 그치며 1군에서 입지가 크게 줄어 들었고 FA 계약기간이 끝난 2017시즌 종료 후 팀에서 방출돼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비록 큰 족적을 남긴 대스타는 아니었지만 커리어 내내 한 번도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음에도 3년짜리 FA 계약을 체결한 김경언에게 2010년의 트레이드는 분명 선수생활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9라운드 출신 무명 투수, 마법사네 토종 에이스로 도약

지금이야 멜 로하스 주니어, 강백호, 유한준, 황재균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중심타선을 자랑하는 kt지만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할 당시의 kt는 허약한 타선으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kt는 2017년 4월 투수 장시환(한화)과 김건국을 롯데에 내주고 장타력을 갖춘 멀티 플레이어 오태곤과 2015년 프로 데뷔 후 한 번도 1군 등판 경력이 없었던 우완 배제성을 영입했다.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9라운드88순위로 롯데에 지명을 받은 배제성은 고교 시절은 물론 프로 입단 후에도 거의 주목 받은 적이 없었다. 189cm85kg의 건장한 체격을 제외하면 배제성은 뚜렷한 장점이 보이지 않는 투수였다. 트레이드 당시 kt를 이끌었던 김진욱 감독은 배제성을 '향후 선발투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대주'라고 평가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은 야구팬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김진욱 감독의 평가는 2년 후 '예언'이 됐다. kt 이적 후 2년 간 단 1승도 없었던 배제성은 작년 시즌 중반 kt의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한 번의 완봉승을 포함해 10승10패 평균자책점3.76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트레이드 당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무명 투수가 kt 창단 후 두 자리 승수를 올린 첫 번째 토종 투수에 등극한 것이다.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하위 라운드의 대반전이었다.

배제성은 올해도 9경기에 등판해 5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3승2패3.96으로 kt의 선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 20대 중반의 젊은 투수인 만큼 경기마다 심한 기복을 보이기도 하지만 배제성은 트레이드 상대 중 한 명이었던 장시환(1승4패6.21)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3년 전 오태곤을 따라 kt 유니폼을 입었던 무명투수 배제성이 어느덧 kt 마운드에서 없어서는 안될 '토종 에이스'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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