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기념식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지만, 나를 잡아끌던 장면은 북에서 70년 만에 돌아온 147구의 국군 유해가 봉헌되던 순간이었다. 70년 만에 다시 밟은 고국 땅이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아직 이름을 찾지 못했다.

모든 전쟁은 상처를 남기지만, 한국전쟁이 여전히 슬프고도 아픈 전쟁인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이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우리의 무책임한 역사는 언제까지 되풀이되어야 할까? 여기 또 다른 슬픈 역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강상우 감독의 2018년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이다.

"성명불상 무장시민군, 김군"

1980년 5월의 광주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역사이다. 실재한 사실에 대해, 여전히 수많은 논쟁이 계속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우리는 그 역사의 순간을 함께했던 민중들의 이름마저 제대로 찾아주지 못했다. 강상우 감독이 <김군>을 통해 1980년 광주의 '성명불상 무장시민군'을 찾아가는 여정은, 우리의 역사가 기록해내지 못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쓸쓸하고 슬프다.

광주의 5월이 벌써 40번이나 반복되었으나 포스터의 사진 속 '성명불상 무장시민군'의 이름을 기록하지 못하는 동안, 비어버린 역사의 순간을 가로채서 그들에게 유리한 대로 이용하려는 자들의 욕망은 거침이 없었다. 우리의 게으름으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건 속의 민중이, 사실을 매도하려는 자들의 도구가 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인가?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의심에 찬 눈빛은, 우리의 군대가 시민을 죽여야 했던 당시 사건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그 사진을 '시민군을 조직하여 대항했던' 역사의 증거로 이용했을 뿐, 눈빛의 주인공을 역사에 기록하지 못했다. 늦었지만 이것을 기록하겠다며 나선 사람들이, 사건이 발생했던 1980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라는 것도, 그동안의 역사를 외면하며 진실 찾기에 나태했던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감독이 사진 속 '김군'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순간의 장면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사진 속의 시간과 장소를 탐문하며 증인들을 만나지만, 40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억은 변질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당시의 광주는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한 회한과 겹쳐지며, 우리가 그동안 독재 정권의 폭압에 저항했던 투쟁으로만 그렸던 피 끓는 광주의 이미지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갖게 했다. 그동안 우리가 만나왔던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기록과는 이야기의 온도부터 다르다.

<택시 운전사>(2017)나 <화려한 휴가>(2007)에서 보이는 광주는 거대한 사건이 삼켜버린 역사만이 남았을 뿐, 그 안에서 상처를 견뎌냈을 우리네 이웃들은 이름을 잃었다. 거대한 사건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어서, 사건 안에서 숨 쉰 채 견뎌냈을 민중의 상처를 돌볼 여유는 없었다. 아무리 근사한 영웅담으로도, 사건에 그대로 살아있던 모든 민중의 이야기를 품어낼 수는 없다. <김군>이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그 '거대한 사건' 안에서 잊힌 이웃들, 이름을 잃어버린 수많은 '성명불상 무장시민군'의 역사였다.

감독이 만난 광주의 시민군들은 이제 막 노년에 접어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투철한 사명감과 폭압에 대한 투쟁의식을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광주는 환하고 순수했던 젊음의 열정이었고, 인생 최고로 아름다웠던 날들이었으며, 고된 고문으로 인해 기억해내려야 다시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넝마주이'로 대표되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고, 적극적으로 투쟁에 참여했던 그들의 기록되지 못한 역사가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외면했던 역사의 이면에는, 원래부터 그들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는 판단이 있지는 않았을까. 자신들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었으니까. 이것이 불과 40년 전의 대한민국이라는 것도 믿어지지 않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소외된 우리가 있지는 않은지 계속 마음이 쓰였다.

<김군>을 통해 우리의 역사인식 방식에 대해 끝없이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소수의 영웅만을 기록하는 것으로 역사에 대한 책무를 다했다며 자위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가 벌어진 거대한 사건으로 포장되는 순간, 종종 우리는 그 안에서 상처를 입고 아파했던 수많은 개인을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것은, 그 안에서 상처 입은 우리 이웃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의 모든 순간,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상'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며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아픔의 유효기한이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한국전쟁 70주년을 보내는 6월, 고국에 다시 돌아오신 백마흔 일곱 분 전사자의 시신을 보며, 40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여전히 논쟁 중인 1980년 5월의 광주가 잊은 또 다른 우리를 기억한다. 영화는 과연 '성명불상 무장시민군'의 이름을 찾아주는데 성공했을까? 마지막 장면, 소리 없이 닫힌 옛 광주 시청의 철문이 대답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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