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깡' 뮤직비디오

비 '깡' 뮤직비디오 ⓒ 지니뮤직

 
2020년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밈(Meme)' 문화다. 수많은 이들의 틱톡 챌린지에 힘입어, 릴 나스 엑스(Lil Nas X)의 'Old Town Road'는 빌보드 싱글차트의 역사를 바꿨다. 한국에서는 지코가 '아무 노래'로 연초를 평정했다. 

밈(meme)이란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개념이다. 밈은 모방(mimesis)과 유전자(gene)가 섞인 신조어로서, 새로운 문화가 전달되고 모방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물론 지금 이 단어는 재미있는 것의 전파로 설명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요즈음 가요계에서 가장 컬트적인 인기를 누린 주인공은 단연 '깡'의 비(정지훈)일 것이다. '깡'은 발표 당시 여러 혹평에 직면했고, 철저한 실패작으로 평가되었다. 이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깡'은 실패했기에 성공했다. 재창조와 패러디의 장이 펼쳐지면서, '깡'은 비의 손을 떠나 수많은 이들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6월 현재 '깡'의 조회 수는 1600만을 돌파했다.) 

비는 2000년대를 수놓았던 '월드스타'의 아우라를 포기했다. 오히려 대중들의 놀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화려한 조명', '꼬만춤' 등 그들이 의미를 부여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깡' 현상이 상징적인 이유는 이것이 인기를 얻게 된 시점이 발표 직후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7년 연말에 나온 콘텐츠가 2년 후에서야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과거의 콘텐츠가 더 이상 과거의 전유물이 아니다.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저서 <레트로 마니아>에서 말했듯이, 이제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은 곤죽처럼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모든 시대의 정보가 같은 타임라인에 배열된다. 양준일의 귀환, 드라마 <야인시대>의 재창조 역시, 이 시대의 특수성이 만든 풍경일 것이다.

정보의 도서관 속에서 돌아온 노래들

요즘 유튜브에서는 제국의 아이들의 무대 영상 역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미 몇 년 전에 활동을 종료한 그룹이지만, 최근 달린 댓글들이 많다. 제국의 아이들은  스타제국 엔터테인먼트가 야심차게 준비한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활동이 종료된 2016년까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마젤토브(Mazeltov)'로 데뷔한 이후, 6년의 활동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른 적이 없다.
 
오히려 멤버들이 개인 활동에서 거둔 성취가 더욱 크다. 임시완은 동 세대에서 가장 높은 신뢰를 받는 남자 배우 중 하나로 우뚝 섰다. 광희는 10년 가까이 성공한 예능인으로 활약했으며, 2015년에는 <무한도전>에 입성하는 쾌거도 거뒀다.  박형식은 <진짜 사나이>에서 '아기 병사'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여러 드라마에서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김동준 역시 성공적인 배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제국의 아이들, '숨소리' 가득한 입김춤 미니앨범 '퍼스트 옴므(FIRST HOMME)'로 컴백한 제국의 아이들이 3일 오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와팝홀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타이틀곡 '숨소리' 등 신곡을 열창하며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용감한 형제와 별들의 전쟁의 합작품인 타이틀곡 '숨소리'는 유로팝 특유의 피아노 라인과 타악기, 강렬한 기타 사운드가 조화를 이룬 감성적인 곡으로 헤어진 연인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 제국의 아이들, '숨소리' 가득한 입김춤 미니앨범 '퍼스트 옴므(FIRST HOMME)'로 활동할 당시 제국의 아이들 모습. ⓒ 이정민

    지금 보면 스타들이 모여 있는 팀이지만, 정작 그룹의 노래와 무대에는 허점이 많았다. 데뷔곡 '마젤토브(Mazeltov)'는 2010년 발매 당시에도 조잡하고 난해한 가사로 화제가 되었다. 연인과 헤어진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노래였지만, '라틴 걸'과 '멕시칸 걸', '재팬 걸'이 등장하는 이유를 지금도 알 수 없다. 이 곡이 본격적으로 온라인상에서 재조명받은 계기는 SBS의 유튜브 채널 <스브스뉴스>에서 파생된 '문명특급'이었다. '마젤토브'가 숨어 듣는 케이팝 명곡으로 소개된 것이다. 이 곡을 작사한 한상원 작곡가는 "그때의 자신에게 왜 이런 식으로 썼냐고 묻고 싶다"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2012년에 발표된 '후유증'의 라이브 영상에도 계속 새로운 댓글이 달리고 있다. 이 곡은 '마젤토브'에 비해 준수한 멜로디와 평이한 가사를 갖추고 있다. 노래가 좋아서 듣는 사람들이 있을법하다. 그러나 이 곡의 무대에서도 대중들은 어김없이 재미의 요소를 찾아냈다.

메인 보컬이 아닌 동준이 곡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김동준과 아이들'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임시완이 연기를 할 때와 달리, 무대에서는 카메라를 대하는 모습이 어색한 것, 안무의 합, 어정쩡한 무대 의상 등 재미의 요소는 끊임없이 발굴되었다. "모두 연예인이 될 팔자긴 한데 그게 아이돌은 아닌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한 누리꾼의 댓글은 네티즌들의 창의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깡' 뮤직비디오의 댓글 창이 네티즌들의 놀이터로 탈바꿈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현상이다. 이들의 목적은 당사자들을 비하하는 데에 있지 않다. 철저히 재미에 대한 추구다. 그리고 '무엇이 재미있는가'를 결정하는 것, 즉 의미 부여는 대중의 몫이다.  앞으로 어떤 콘텐츠가 망각의 늪에서 소환될 것인지, 어떤 곳이 새로운 '댓글 맛집'이 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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