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지난 26일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 KBS

 
TV 공개코미디의 대명사였던 KBS <개그콘서트>가 지난 26일 방송을 끝으로 작별을 고했다. 1999년, 당시로선 생소했던 대학로 소극장 코미디 형식을 안방 무대로 옮겨온 <개콘>은 시청자 뿐만 아니라 방청객들과의 호흡을 통해 매주 일요일 밤을 웃음 넘치는 시간대로 만들면서 한시대를 풍미했다.  

이곳을 통해 배출된 스타들은 각종 예능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사람들에게 유쾌한 에너지를 선사해왔을 만큼, <개콘>은 한국 예능계의 물줄기 같은 역할도 담당해왔다. 경쟁사 코미디들이 하나둘 사라질 때도 <개콘>만큼은 건재함을 과시했고 불과 몇 해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처럼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으로 오랜 기간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대중들의 취향과 시간의 흐름이 맞물리면서 거침없던 <개콘>도 더 이상 예전의 <개콘>이 아니었다.   

21년, 1050회에서 멈춘 역사
 
 지난 26일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지난 26일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 KBS

 
지난 26일 <개콘>은 과거 추억의 코너들을 재소환하며 아련한 그때를 회상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방송의 시작을 알린 '마지막 새코너'는 제목처럼 <개콘>이 마지막으로 내보내는 새코너였다.  

장례식 형식을 빌려 '갈갈이 패밀리', '생활사투리' 등 오랜만에 시청자들과 만난 예전  그 시절만큼의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들이 체감하는 웃음의 기준은 세월의 변화만큼 달라졌고 이는 <개콘>이 지난 몇 년 사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원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재등장한 추억의 개그는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SBS <웃찾사> 출신 '자연인' 윤택의 카메오 출연으로 양념을 더했고 '77억원의 가치, 움직이는 벤처기업' 등 유행어를 쉴 새 없이 쏟아낸 신봉선을 시작으로 10년 만에 무 갈기에 나선 박준형, 여전히 녹슬지 않은 횡설수설 속사포 말솜씨를 보여준 김원효 등은 눈물반 웃음반으로 무대를 이끌며 마지막 무대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고시생' 박휘순, '왕비호' 윤형빈도 모처럼 <개콘> 대표 코너이자 매회 방송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봉숭아 학당'을 찾아 특유의 개그감으로 반가움을 안겨줬다. 그런가 하면 파격적인 '베놈' 분장으로 출연한 '분장실 강선생' 강유미는 "유튜브부터 만들어! 이젠 유튜브가 대세야"라는 대사를 통해 최근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개콘>의 현실을 에둘러 지적했다. 

시청자, PD, 동료 개그맨들의 VCR 등을 통해 <개콘>의 의미를 되짚어 보기도 했던 <개콘> 마지막회는 몇 달 만에 재등장한 이태선 밴드의 경쾌한 엔딩곡 'Part Time Lover'와 더불어 21년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웃음 잃은 최근의 <개콘>
 
 지난 26일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지난 26일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 KBS

 
분명 지난 몇 년 동안의 <개콘>은 건강한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최근 들어 시청률 저조로 인해 떠돌이처럼 시간대를 옮겨다니면서 이어진 방송에 사람들은 흥미를 잃었고 일찌감치 유튜브 등 다른 대체제로 선택지를 바꾸고 말았다.  

이를 두고 소재의 제약, 혹은 자기 검열 등 다양한 이유가 언급되었지만 기본적인 문제는 결국 "재미가 없었다"로 귀결된다. 개그맨들 스스로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혹은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제작진과 방송국의 책임일 수도 있다. 

이런 저런 방법이 동원되었지만 숨이 끊어져가는 <개콘>을 되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무관객 녹화는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고 결국 방송사는 기약없는 프로그램의 중단을 결정하고 말았다.

'시청률의 제왕' 코너의 주역 박성광은 "1등 시청률만 기억하는 더러운 KBS!"라고 특유의 유행어를 빌려 웃픈 현실을 지적했지만, 중단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대한민국을 웃기는 힘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마지막 자막은 지금으로선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지도 모른다.  

KBS 자체 유튜브 채널 '뻔타스틱'을 통해 코미디의 명맥을 이어가겠다곤 하지만 개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고작 800여명에 머물고 있는 구독자 수가 말해주듯, 유튜브 이용자들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콘> 종영이 전해진 시점에는 한 개그맨의 불법 카메라 촬영 사건까지 벌어져 더욱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방영 막판엔 프로야구 생중계에도 밀리며 종영일조차 확정하지 못할 만큼 과거 KBS 대표 예능으로서의 위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도 고마웠다.  추억을 만들어준 그들이 있었기에
 
 지난 26일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지난 26일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 KBS

 
쓸쓸한 퇴장을 맞이했지만 <개콘>은 시청자 모두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친구 같은 존재였다. 박준형처럼 겁없이 앞니로 무를 갈려고 했던 코흘리개 꼬마가 어느덧 성인이 되었을 만큼 시간이 흘렀고, 출연 개그맨들도 어느새 중년이 돼 후배들과 함께 청춘을 바쳤던 <개콘>의 마지막 무대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수많은 별들 사이에 작은 별이 될 수 있어서 행복했다"(송준근),  "첫사랑이다. 10년을 쫓아다녀도 잘 안 되네요"(무명 개그맨)의 말처럼 누군가에겐 영광의 시간이자 선물이었고 청춘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이 있었기에 시청자들 역시 과거 즐거움과 웃음으로 일상을 채울 수 있었지 않았는가. 동료들이 혼신을 다해 열연하는 마지막 무대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개그맨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비록 시청률 하락 등 냉혹한 방송계 인기 경쟁에 밀리며 작별을 고하는 <개콘>이지만 출연진들이 남긴 수많은 어록과 명장면들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개그콘서트 포에버"를 외친 윤형빈의 말처럼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개콘>이 남아있길 기원해본다. 그리고 부디 TV 코미디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어주길.  21년 동안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행복했었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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