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방영된 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지난 26일 방영된 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 CJ ENM

 
2016~2019년까지 총 4시즌에 걸쳐 진행된 <프로듀스101> 시리즈는 엠넷의 명암을 좌우할 만큼 방송계와 가요계에 한 획을 그었던 프로그램이었다. 101명 또는 48명의 연습생을 한자리에 모아 시청자들의 손으로 프로젝트 그룹을 결정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이를 통해 탄생한 팀은 단번에 스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반면 이 과정에서 누구도 예상 못했던 투표 조작 사건이 발생했고 관계자 구속되었다. 결국 지난해 12월 엠넷을 운영중인 CJ ENM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까지 열리는 등 역대급 인기 못지않은 후폭풍이 발생했다. 방송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지 6개월여가 지난 가운데, 엠넷이 다시 한 번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 그 이름은 <아이랜드(I-Land)>다.

​<아이랜드>는 기존 엠넷에서 방영된 아이돌 오디션의 특징, 장점들을 하나로 모은 듯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엠넷과 tvN, 해외 동시 방영 외에 제작비 200억 원 이상 투입이 말해주듯 그간 볼 수 없었던 방대한 규모의 세트장 뿐만 아니라 비, 지코, 남궁민, 방시혁 PD, 아이유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 프로그램에 힘을 보탰다.  

CJ ENM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합작으로 설립한 빌리프랩 소속 아이돌로 데뷔하는 기본 구조는 과거 <식스틴>(JYP), <Win...Who's Next>(YG), <노머시>(스타쉽),<펜타곤 메이커>(큐브) 등 기획사 중심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큰 차이가 없다. 

참가자 스스로 생존자 결정... 아이돌판 배틀로얄?
 
 지난 26일 방영된 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지난 26일 방영된 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 CJ ENM

 
​대신 멤버 선발 과정이 제법 파격적이다. 대국민 투표를 앞세웠던 <프로듀스101>시리즈, 소속사 사장 혹은 연예인 심사위원의 결정에 크게 의존했던 기획사 오디션프로와 다르게 참가자 자체 투표가 방영 첫 회부터 합격과 탈락을 결정짓는 요소로 등장했다. 기존 그룹 경연 <퀸덤>, <로드투킹덤> 등에서도 출연팀들이 서로의 순위를 정하긴 했지만 <아이랜드>의 방식은 잔혹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더욱 독하다. 

​12명의 최종 멤버가 되기 위한 첫 번째 테스트부터 참가 연습생들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었다. 각자 준비한 퍼포먼스를 정해진 순서 없이 먼저 무대 위에 올라 선보인 후 이를 지켜본 동료들의 거수로 아이랜드 관문 진입의 명암이 갈렸다.

최초 탈락자는 7명. 이들은 '그라운드'로 명명된 공간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정원보다 많은 16명이 생존했지만 이들 역시 또 다시 4명의 탈락자를 결정해야 했다.  

따로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비, 지코, 방시혁은 합격과 탈락 선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의견만 개진한다. 이는 심사위원, 트레이너 등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기존 오디션보단 마치 <하트시그널> 같은 관찰 예능 속 연예인 패널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랜드>를 본 일부 시청자 중에는 <배틀로얄>를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자체 투표라곤 하지만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동료, 친구를 떨어뜨릴 수도 있기에 <아이랜드>는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 잔혹한 첫 회를 선보였다. 

​흔하디 흔한 단체 합숙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프로듀스101>과 달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각종 첨단 시설의 등장은 CJ ENM과 빅히트의 거대한 야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수십여 대의 모니터로 출연자들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단 사실은 SF 영화 속 감시 장치를 연상시킬 만큼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는 자칫 보는 이들에게 자유로움 대신 통제가 우선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투표 공정성 확보 대신 책임 회피?
 
 지난 26일 방영된 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지난 26일 방영된 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 CJ ENM

 
<아이랜드> 첫 회부터 ​시청자 투표 대신 활용된 참가자 거수 투표는 어차피 데이터 조작 등이 벌어질 수 없는, 가장 원초적 방식이기에 방송사가 말한 공정성 확보보단 일종의 책임 회피 수단마냥 비쳐지기도 한다.    

순서대로 진행되는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1차 테스트와 달리, 마치 눈치게임 식으로 무대를 선점하고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방식 또한 의아함을 자아낸다. 한정된 합격 인원에 포함되기 위해선 결국 남보다 먼저 기회를 획득해야 하기에 기회의 균등 부여와도 거리가 멀어보였다. 물론 방영 회차를 거듭할 수록 기존 프로처럼 다양한 시청자 투표가 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1회에서 보여준, 합격과 탈락을 좌우하는 데 사용한 방식은 200억 프로젝트치곤 너무나 소박해보였다.

당초 CJ ENM은 방송의 투명성이 확보된 이후 오디션 프로그램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결국 신규 프로 제작을 강행했다. 이를 두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조작' 오명을 쓴 <프로듀스101> 대신 변형된 방식의 오디션을 들고 나오면서 몇 달 전 이뤄진 사과 기자회견은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케이팝 관련 펀드를 조성하고 피해자 보상 등을 약속했다지만 몇 달이 지난 현재 시청자들이 체감할 수 있을 만한 변화는 없었기 때문이다. 

방영 직전 야기된 각종 잡음 또한 <아이랜드>에 대한 불신감 형성에 한 몫 했다. 제작 스태프의 안전 사고 발생 외에 참가자의 추락사고도 빚어졌다. 이로 인해 해당 연습생은 결국 프로그램 출연이 좌절되고 말았다. 이에 대한 제작사 측은 보상을 약속했다지만 실력 발휘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데뷔의 꿈이 무산된 건 허망함을 넘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여러 우려에도 <아이랜드>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케이팝 글로벌 아이돌 탄생'이라는 야심찬 꿈을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26일 방영된 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지난 26일 방영된 엠넷 '아이랜드'의 한 장면 ⓒ CJ ENM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