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코로나19 사태로 전면 중지됐던 미국 프로농구 NBA가 오는 7월 말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재개된다. NBA사무국은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각) 하위 8개 팀을 제외한 22개팀이 참가해 2019-2020 시즌의 잔여 일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하루 2~4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할 만큼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아무래도 프로스포츠인 만큼 수익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무국의 시즌 재개 결정에 선수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을 때 챔피언 반지를 하나라도 더 수집해야 하는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는 시즌 재개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카이리 어빙(브루클린 네츠)과 트레버 아리자(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에이브리 브래들리(레이커스) 등은 흑인 인권 운동 문제와 코로나 19 등을 이유로 시즌 재개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반면에 찬성도 반대도 아닌 제3의 선택을 한 선수도 있다. 바로 하위 8개 팀에 포함돼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하게 된 애틀랜타 호크스의 식스맨이자 NBA 최고령 선수(1977년생) 빈스 카터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998-1999시즌 NBA에 데뷔해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를 모두 경험한 NBA 최초의 선수가 된 카터는 팀의 시즌 조기 종료로 인해 23년에 걸친 선수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
 
폐지 위기에 놓여 있던 덩크 콘테스트를 살려 놓은 '아트 덩커'

미국 최초의 공립대학교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은 농구부 역시 NCAA 토너먼트에서 6번이나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그 명성이 대단하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을 비롯해 제임스 워디, 샘 퍼킨스, 케니 스미스, 제리 스택하우스, 그리고 카터가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대표적인 NBA 스타들이다. 대학 시절 팀을 2년 연속 NCAA 4강으로 이끈 카터는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된 후 곧바로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됐다.

1995년에 창단한 토론토는 세 시즌 연속 4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승률로 최하위권을 전전하던 약체였다. 하지만 토론토는 카터가 가세하자마자 50경기(직장폐쇄로 인한 단축시즌)에서 23승 27패를 기록하며 약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루키 시즌부터 18.3득점 5.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한 카터는 외곽슛을 장착한 2년 차 시즌부터 더욱 무서운 득점기계로 도약했다.

카터가 전 세계 NBA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이벤트는 바로 2000년 올스타 덩크 콘테스트였다. 아이디어 고갈과 스타들의 불참으로 1980년대 같은 흥미가 떨어져 폐지까지 논의됐던 덩크 콘테스트에서 카터는 차원이 다른 수준 높은 덩크를 여러 차례 선보이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엄청난 덩크를 성공시킨 후 양팔을 옆으로 뻗으며 "It's Over(끝났어)!"를 외치는 장면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후배들에 의해 패러디되고 있다.

'에어 캐나다'로 명성을 날린 카터는 1999-2000 시즌부터 토론토를 세 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로 진출시켰지만 이내 '원맨팀'의 한계를 느꼈다. 카터는 2004년 트레이드를 통해 뉴저지 네츠로 이적해 제이슨 키드, 리차드 제퍼슨과 삼각편대를 구성했지만 강력한 백코트에 비해 골밑에 약점이 있었던 뉴저지 역시 플레이오프 세미 파이널이 한계였다. 2008-2009 시즌까지 뉴저지에서 활약하던 카터는 2009년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했다.

올랜도는 카터의 고향인 플로리다주에 연고를 두고 있는 팀으로 카터가 열정을 가지고 활약할 수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토론토와 뉴저지 시절 많은 돌파와 점프를 아끼지 않으며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있었던 카터는 더 이상 경기당 평균 25점씩 책임질 수 있는 슈퍼스타가 아니었다. 카터는 2009-2010 시즌 데뷔 후 처음으로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를 밟았지만 6경기에서 13.7득점에 그치며 생애 첫 파이널 진출이 좌절됐다.

우승반지 하나 없이 23년 동안 2만5728득점 기록한 '레전드'
 
 토론토 시절 덩크슛하는 빈스 카터.

토론토 시절 덩크슛하는 빈스 카터. ⓒ 로이터/연합뉴스

 
카터는 2010년 봄 자신의 고향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농구팬들은 전성기가 지난 카터가 슬슬 은퇴를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카터는 농구팬들이 예상했던 시기보다 10년이나 더 길게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슈퍼스타 출신들이 좀처럼 받아 들이지 못하는 '내가 꼭 팀의 중심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피닉스 선즈를 거쳐 2011년 댈러스 매버릭스로 이적한 카터는 이적 첫 시즌 10.1득점으로 NBA 데뷔 후 14시즌 만에 가장 부진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카터는 2012-2013 시즌 팀의 식스맨 제안을 받아 들이며 벤치 멤버로 나섰고 81경기에서 13.4득점을 올리는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경기당 평균 25.8분 밖에 소화하지 않았음에도 팀에서 세 번째로 높은 득점을 올리는 효율적인 선수가 된 것이다. 

카터는 댈러스에서의 좋은 활약 덕분에 2014년 7월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3년 1200만 달러라는 좋은 조건에 계약했다. 하지만 카터의 나이는 이미 3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고 멤피스에서의 세 시즌 동안 한 번도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프로 데뷔가 늦었던 후배 선수들이 부상으로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와중에도 카터는 40대가 될 때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해 나가며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멤피스와의 3년 계약이 끝난 후 카터의 선수 생활 연장 여부는 어느덧 NBA팬들의 관심거리가 됐다. 카터는 새크라멘토 킹스와 애틀랜타처럼 당장 플레이오프를 노릴 수 있는 강팀보다는 유망주가 많은 젊은 팀에서 활약하며 후배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그리고 애틀랜타 유니폼을 입고 있던 지난 3월 12일 12분39초 동안 활약하며 5득점을 기록한 뉴욕 닉스와의 경기가 카터의 NBA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카터는 20년 넘게 선수생활을 했지만 우승은커녕 파이널 무대조차 서 본 경험이 없고 덕 노비츠키나 팀 던컨처럼 한 팀에서 오래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었다. 하지만 카터는 2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8개 팀에서 활약하며 각기 다른 4번의 10년을 모두 경험한 또 다른 의미의 '레전드'임에 분명하다. 23년 동안 코트를 누비며 2만5728득점을 기록했던 '덩크의 제왕'은 그렇게 농구팬들의 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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