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리꾼>에서 심학규 역을 맡은 배우 이봉근.

영화 <소리꾼>에서 심학규 역을 맡은 배우 이봉근. ⓒ 리틀빅픽쳐스


26년 간 명창으로 우리의 소리를 널리 알려온 이봉근이 영화 <소리꾼>으로 관객과 만난다. 전문 배우가 아닌 사실에 누군간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보다 적절한 캐스팅이 있을까 싶다. 심청가와 춘향가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로 이봉근은 납치당한 아내 갓난이(이유리)와 어린 딸을 찾아 나서는 심학규 역을 맡았다.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지만 <소리꾼>은 이야기 자체보단 소리의 매력을 오롯이 전하는 데 집중한 영화다. 이봉근 출연 역시 그런 맥락이다. 오디션 때 떨었던 기억을 전하며 그는 본인이 해석한 심학규와 영화를 전했다.

마법 같았던 순간들

"후배부터 선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지원했더라. 심사위원이 스무 분 정도 계셨다. 나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소리를 먼저 해보겠다 했는데 연기부터 하라고 하시더라. 그때 멘탈이 흔들렸지(웃음). 제가 생각해도 연기 오디션은 정말 못했던 것 같다. 엄청 떨기도 했고. 근데 그 안에서 학규의 눈빛을 보셨다더라.  
  
출연이 확정되자마자 사극 영화를 쭉 찾아봤다. 두 종류가 있더라. 사극 특유의 말투가 있거나 사극임에도 생활 연기 어투가 있거나. 감독님께 물어보니 학규처럼 하라고 하셨다. 거기서 또 멘탈이 흔들렸다. 당시는 생계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려웠을 때고 학규는 노래만 하던 사람이니 갓난이나 딸 청이에게 많이 의존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본인 잘못으로 두 사람이 납치됐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평소엔 목소리를 크게 못 내다가 소리할 때 만큼은 쌓아둔 걸 터뜨리지 않았을까 싶더라."


일리 있는 해석이었다. 이봉근은 "관객분들이 그런 걸 봐주시면 감사한 일이고, 드러나지 않는다면 제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정작 촬영장에서 그는 구타당하는 장면을 찍다가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했고,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동료 배우와 감독을 찾아 적극 소통하며 열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판소리가 주인공인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기도 했다.

"동료들끼리 판소리가 어디서 비롯됐을지 많이들 얘기한다. 그런 상상이 영화로 구현되니 뭔가 희열이 있더라. 그럼에도 스스로 부담감은 엄청나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이 특히 그랬는데 그걸 느끼셨는지 함께 출연한 김강현 형님이 제게 왜 그리 어깨에 힘이 들어갔냐고 하셨다. 혼자 짊어지지 말고 기대라, 언제든 받아줄 거고 그러면 앙상블도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해서 이 영화의 백미인 눈 뜨는 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봉근은 "보조출연자분과 스태프까지 합쳐서 300여 명이 있었는데 다 함께 소리를 한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생생하게 전했다.

"제가 무대에서 했던 소리는 마이크, 조명 등 여러 장치가 있곤 했다. 근데 영화는 정말 소리판처럼 세트를 짜놓고 한다. 저를 둘러싸고 원형으로 출연자분들이 서 있는데 옛날에 소리를 정말 이렇게 했겠구나 싶었다. 이야기와 정서를 전달하는 이가 소리꾼이잖나. 영화 촬영을 마치고 실제로 제 소리 형식도 바뀌었다. 좀 더 간결해지고 전달력이 강해졌다. 얼마 전 무관중 공연을 했는데 어떤 모녀 분은 화면으로 보시고 우셨다고 하더라. 예전보다 정서의 전달이 강해진 것 같다.

우리 영화가 후시 녹음이 거의 없었다. (고수 역의) 박철민 형님도 직접 모든 장면에서 북을 치셨다. 감독님이 고법 이수자기도 해서 촬영 전에 시범 보이신다고 철민 형님과 일종의 북 쟁탈전이 좀 있었다. 나중엔 철민 형님이 제게 와서 북을 조용히 치워놓고 촬영 때만 가져다 놓자고 하시더라(웃음). 사실 소리북은 누구나 칠 수 있다. 근데 감정이 담기고 드러나는 건 명인 외엔 하기 어려운 수준이거든. 영화 마지막 장면에 철민 형님의 감정이 북소리에 드러난다. 그걸 해내신 거다."

 
 영화 <소리꾼> 관련 사진.

영화 <소리꾼> 관련 사진. ⓒ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남원의 자랑, 판소리계의 자랑

중학교 2학년 때 서예가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소리를 시작한 이후 이봉근은 쭉 외길을 걸어왔다. 한창 반항할 나이기도 했는데 오히려 본인은 "싫었지만 꽤 순종적인 아이기도 했다"며 "하면 할수록 성취감이 있는 게 판소리더라"고 말했다.

판소리로 오히려 엄했던 아버지와 극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그는 고백했다. 엄하고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고향인 남원을 등지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이봉근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 뒷모습이 되게 쓸쓸하고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며 대학생 시절 일화를 전했다.

"2학년인가 남원 춘향제에 갔다. 아버지와 야시장을 걷는데 서로 한마디도 안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아버지가 슬퍼 보이더라. 나름 큰 용기를 내서 아버지의 손을 잡았는데 덜덜 떠시는 게 느껴졌다. 서로 어색해서 손도 못 놓고 있다가 아버지께서 술 한잔하자고 하시더라. 그때 당신의 이야기를 처음 하셨다. 그 이후로 하루에 두 번 통화하는 사이가 됐다(웃음). 아마 곧 남원에 제 플래카드가 걸릴 것 같다(웃음)."

명창으로서 KBS <불후의 명곡> 등에 출연하고 방탄소년단 노래에 소리를 넣어 부르는 등 그는 판소리의 대중화에 나름 사명을 갖고 활동해왔다. 동시에 <소리꾼> 이후 연기자로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한다"며 "소리로만 관객을 만나는 건 한정적이기에 연기에 도전하는 면도 있다"고 그가 말을 이었다.

"랩이 국내서 자리 잡은 지도 20년이 채 안 됐잖나.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가 큰 역할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전통음악 자체가 어떤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안에 있는 무수한 매력을 대중문화가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미스터 판소리> <미스 판소리> 이런 게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연기에 도전하는 것도 사실 겁낼 건 없다고 생각한다. 불러만 주신다면 연극, 뮤지컬 다 나가고 싶다. 부딪히면서 하나하나 쌓아 가야지."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이봉근이 마음에 품는 한 단어가 있었다. 스승이자 영화 <서편제> 주인공이기도 한 오정해 명창의 가르침이었다. "사람이 잘 될 때든 힘들 때든 똑같이 담고 있어야 하는 말이 '겸손'이라 하셨다"며 이봉근은 "그 말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남다른 다짐을 드러냈다.
 
 영화 <소리꾼>에서 심학규 역을 맡은 배우 이봉근.

"전통음악 자체가 어떤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안에 있는 무수한 매력을 대중문화가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미스터 판소리> <미스 판소리> 이런 게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 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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