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현장 사진.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현장 사진. ⓒ tvN

 
"아무리 캐릭터라는 가면을 쓰고 대사를 하는 사이라고 해도 그들이 정말 친한지는 화면 너머까지도 다 보인다."

앞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통해 따뜻한 '휴머니즘' 드라마를 표방해 온 신원호 PD의 철칙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늘 드라마 촬영 전부터 배우들을 여러 차례 불러모아 친해질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지난 4일 방송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스페셜> 편에서도 99학번 5인방 배우들의 어색했던 모습부터 친근하게 장난을 치며 함께 밴드 연습을 하는 장면까지 모두 공개됐다.

신원호 PD는 "이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배우들도 촬영 전부터 이미 모두 친해졌다. 제가 선생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조용히 하라'는 소리를 많이 했는데, '99즈'도 자기들끼리 너무 신나 하더라. 그래서 말은 시끄럽다고 해도 고마웠다"고 털어놨다. 결국 신 PD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의 '케미스트리'는 시청자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신원호 PD가 또 한 번의 흥행 신화를 쓸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셈이다.

지난 5월 종영한 tvN 목요 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아래 <슬의생>)은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에서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었다. 지난 8일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슬의생>은 방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즌2 제작이 예정돼 있었다. 시즌1이 끝났지만 이제 겨우 절반 정도 달려온 셈이다. 신원호 PD 역시 여운을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한 듯했다. 그는 시즌1이 종영돼 "홀가분하다"면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긴장감이 풀리지 않았다. 시즌2가 끝나면 이 여파가 몰려오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2021년 새로운 계절에 (시즌2로) 돌아올 예정이다. 올해 말에 촬영을 시작한다"고 덧붙이며 기대감을 높였다.

이번 <슬의생>은 최고 시청률 14.1%(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을 기록하며 이전 작품들 못지않은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신원호 PD에게 <슬의생>은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신원호 PD는 "(전작들과 달리) 주 1회 편성, 명확한 기승전결이 아닌 소소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구성적인 면이 저희에겐 큰 도전이었다. 많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다.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작품들의 결과보다 안도하게 되는 지점이다"라며 "이번 드라마에 대한 반응들은 모두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뜻했다. '좋았다', '힐링 됐다', '보는 내내 너무 따뜻했다'라는 후한 댓글들이 많았고, 오프라인에서도 정말 생전 드라마 안 볼 것 같던 분들에게 오는 감동의 반응들도 많았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총 12부작으로 구성된 <슬의생>은 여느 드라마와 달리 매 회차마다 훌쩍 건너뛴 시간을 보여주면서 빠른 속도로 극을 진행시켰다. 이에 일부 시청자들은 1편은 1월, 2편은 2월, 3편은 3월처럼 매 회마다 한 달씩 다루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신원호 PD는 주 1회 방송되는 드라마의 특성을 살린 선택이었다며 "시간의 흐름(속도)은 에피소드의 필요성에 따라 정해졌다"고 털어놨다.

"저희 드라마는 특정한 계절의 이야기,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정한 날이 에피소드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유난히 계절의 흐름이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보시는 분들이 지루할 틈 없이 대본, 현장, 편집을 스피드 있게 진행하는 게 목표였다. 1화, 2화 때는 완성된 편집본을 수차례 돌려가며 불필요한 호흡들을 없애고 대사와 대사가 바로바로 이어질 수 있게 했다. 그런 방향이 주 1회, 총 12부 시즌제 드라마와 맞는 호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중반부부터 어쩔 수 없이 처음의 속도보다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시즌2엔 다시금 속도를 올려볼 생각이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현장 사진.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현장 사진. ⓒ tvN

 
<슬의생>에서 채송화(전미도 분)를 향한 이익준(조정석 분)과 안치홍(김준한 분)의 애틋한 로맨스는 특히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극 중에서 이익준은 20년 전부터 채송화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친구 양석형(김대명 분)이 먼저 송화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마음을 접었다. 이후 새로운 사람과 결혼했지만 최근 이혼한 뒤 우주(김준 분)와 둘만 남게 된 익준은 다시 송화를 향한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반면 신경외과에서 채송화와 함께 일하는 레지던트 안치홍은 율제병원에 인턴으로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년간 송화를 짝사랑 해 온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송화에게 마음을 전했지만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한 상태. 드라마는 두 남자의 감정을 명확하게 보여준 데 반해 송화의 감정은 거의 숨기듯 연출했다. 이에 대해 최근 여성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중문화 트렌드와 동떨어진 설정이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또한 극 중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 챈 안치홍과 이익준이 은근한 기싸움을 벌이는 장면도 등장했다. 이를 두고도 정작 송화가 누굴 좋아하는지는 아랑곳없는 두 남자의 대결이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반응도 많았다. 이에 대해 신원호 PD는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릴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시즌2에서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그려질 것이라고도 귀띔했다.

"의미 있는 시즌제를 위해서는 각 시즌이 보여줘야 할 색깔과 국면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원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라는 근간은 같으면서도, 그 외의 포인트는 다르게 디자인해야 했다. 채송화의 마음도 '그 외의' 포인트에 포함될 수 있는 지점일 수 있다.

또한 우리 드라마는 멜로만을 위한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멜로 때문에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의사 같은 전문직은 내 앞에 환자가 있기 때문에 캐릭터의 삶에 멜로가 침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멜로에 집중해서 보면 캐릭터의 속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는 극 중 채송화가 마음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준비하며 살진 않지 않나. 전 연애에 대한 상처 등의 이유로 채송화가 '내가 누굴 좋아하지?'라고 선택할 상황이 아니었다. 시즌 1 막판에 그런 상황들이 왔고, 다음 시즌에 채송화의 이후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을까."


사실 극 중 인물들의 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고 반전 요소로 활용하는 것은 신원호표 드라마의 특징이기도 하다. <슬의생>에서도 안정원(유연석 분)은 자신을 오랜 기간 짝사랑한 외과 레지던트 장겨울(신현빈 분)을 향한 마음을 애써 숨겼다. 그리고 마지막회에서 정원은 겨울의 고백에 키스로 화답했고, 드라마는 정원 역시 겨울을 좋아해왔다는 사실을 회상 신으로 연출하며 뒤늦게 보여준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이렇다보니 신원호 PD의 드라마에는 늘 소품 하나, 장면 하나로 애정 전선을 분석하는 시청자들이 속출한다. 이미 신원호 PD의 '낚시' 수법을 꿰고 있는 드라마 팬들도 많다. 매번 드라마가 방송될 때마다, 각기 다른 커플을 응원하는 팬들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도 그래서다. 신 PD 역시 "스태프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전작에 숨겨놨던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저희 작품을 곧이곧대로 안 보시려 하는것 같다. 그 버릇을 제가 들게 했지만(웃음)"이라며 유쾌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그는 이번 <슬의생>에서도 송화와 익준의 멜로 감정에 대한 힌트가 될 만한 장면들이 있었다고 공개했다. 신 PD는 "감정선을 깔아두긴 했다. '99즈' 다섯 명의 첫 만남에서 송화가 창고에 들어서서 익준을 찾는 시선이나 첫만남 사진에서 익준이 송화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CG로 송화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깔렸던 것처럼 말이다"라며 "멜로만의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알아차리시면 좋지만,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신원호 PD는 시청자들의 세밀한 분석과 추측에 대한 정답을 앞으로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대답에선 신 PD의 소신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소유권으로 보자면 드라마를 공개하기 직전까지는 제작진의 드라마일지 몰라도, 시청자에게 공개되는 순간 드라마는 시청자의 것이 된다. 드라마를 어떻게 물어뜯고 꼬집어보고 비틀어보고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즐기느냐는 시청자분들의 몫이지 연출이 관여할 바는 아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추측에 대해 맞다, 아니다라고 말씀드리는 건 월권이라 생각해서 세세한 설명은 앞으로도 드리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현장 사진.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현장 사진. ⓒ tvN

 
한편 이번 <슬의생>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며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다. 방송계는 지난 2018년부터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주 68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지만 부족한 제작비와 제작 여건, 낡은 관행 등으로 인해 이를 지키는 현장은 많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주 10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한다는 스태프들의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슬의생>이 종영된 후 많은 배우들은 인터뷰에서 "이상적인 촬영 환경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신원호 PD는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다며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드라마 환경이 '뉴 노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본격적인 제작에 앞서 스태프 협의체를 구성,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사전에 협의한 근무시간을 준수했고 산업 안전 등에 대한 오프라인 집합 교육도 진행했다. 이렇게 사전 협의를 하고 진행하니깐 저 역시 떳떳하게 일할 수 있게 됐다. 시스템과 규칙이 정해지고, 합의의 장이 생기니까 저 역시 덜 미안해지더라.

보통 많이 활용되는 드라마 형식(16부작, 20부작 등)이 아닌, 주 1회나 시즌제로 갈 수 있는 드라마가 '뉴 노멀'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모든 제작사나 방송사가 주 1회 방송이나 시즌제, 사전제작 등의 풍토가 자리잡기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다. 결국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 5분물, 30분물, 120분물 등 런닝타임의 변화나 3부작, 6부작 등 제작편수의 변화 같이 드라마 형식이 다양화 되고, 이와 함께 플랫폼들이 확장되면서 정말 수많은 형태의 개성넘치는 작품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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