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악의 고리-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N'편의 한 장면

지난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악의 고리-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N'편의 한 장면 ⓒ SBS

 
"한국에서는 아마 그냥 음란물, 불법 영상 그 정도로 보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살인죄 수준으로 다루고 있고 또 국제사회에서는 반인륜적 범죄, 거의 제노사이드 수준으로 이 범죄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원재천 한동대 법학부 교수, 13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웰컴투비디오' 편 중에서)

미국과 한국의 법원은 이렇게 달랐다. 미국에서 검사로 일한 원재천 교수가 아동 성착취 범죄를 제노사이드에 비유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씨 이야기다. 그는 아동 청소년 보호법과 정보통신법 위반으로 등으로 1년 6개월 실형을 받은 것이 고작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웰컴 투 비디오'에서 아동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했으며 소지한 이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길게는 징역 25년에서 짧게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미국 현지 변호사인 김정균 변호사의 의견도 원 교수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22일 <법률신문>의 <웰컴 투 비디오 손정우의 미국 송환 시 처벌 수위에 대하여>란 기고문에서 "손정우가 일단 미국에 송환되면 중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로 미국 내 처벌이 불법 자금세탁 죄로 한정된다 하더라도 기소 건수가 늘어날 수 있으며 둘째로 여전히 미국에서도 아동음란물 유포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불법 자금세탁 죄는 최대 20년의 징역이 가능한 범죄인데 손정우가 이 혐의에 대하여 3건이나 기소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이론상 최대 60년의 징역이 가능하다. 더불어 손정우가 미국 내 범죄 수익을 한국 계좌로 송금했을 경우 이를 매회 추가 혐의로 기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불법 자금세탁 죄만으로도 형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


웰컴투비디오와 솜방망이 처벌
 
 지난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악의 고리-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N'편의 한 장면

지난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악의 고리-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N'편의 한 장면 ⓒ SBS


한국의 법원은 손씨에 대한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숙고 중이다. 지난 16일 열린 손씨 관련 2차 심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서울고등검찰청의 신청을 받아들여 손씨의 구속 기간을 2개월 연장했다. "사안이 중대해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손씨의 송환 여부는 오는 7월 6월까지 결정이 미뤄졌다. 빗발치는 비난 여론 와중에 사법부가 '숙고'에 들어간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걸까.

그럴 리가. 오로지 '돈'이 목적이었다던 손씨. <그것이 알고 싶다>와 인터뷰한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었다고 한다. 손씨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가. 초범이라서, 나이가 많아서, 나이가 적어서, 학생이라서, 직장을 잃게 돼서, 반성의 여지를 보인다고 해서, 판례가 없다고 해서 등 갖가지 이유로, 무엇보다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와 합의했다고 해서 감량해주고 선처해주는 한국의 법제도와 양형기준, 그리고 그러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 아니겠는가. 차라리 이러한 지적이 그저 어제 오늘의 이야기면 피해자들의 숫자도, 고통도 줄었을 터.

손씨 외에 '웰컴 투 비디오' 이용자들에 대한 처벌도 솜방망이에 머물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N번방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손씨의 미국 송환 문제도 사회적으로 묻혔으리라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건 그래서다. 손씨와 같이 아동 성착취 범죄조차도 선처에 나서는 우리의 양형기준에 대한 팽배한 불신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 아니겠는가.
 
 지난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악의 고리-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N'편의 한 장면

지난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악의 고리-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N'편의 한 장면 ⓒ SBS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게 피해자의 회복엔 가장 좋은 게 맞아요. 근데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으려면 이 사회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국민이 요구를 하잖아요. 한국에서는 제대로 처벌을 못 받을 게 빤하니 미국으로 보내라. 사실 이거 부끄러워야 하는 지점이거든요. 국민들이 한국사회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얘기잖아요." (<그것이 알고 싶다> '웰컴투비디오' 편 중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리셋) 활동가의 '뼈 때리는' 고언이다. 성범죄자들을 단죄하지 않는 한국사회에 기대감을 저버리는 피해자들은 그렇게 오늘도 절망하는 중이다.

N번방 사건을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 역시 "갓갓이 잡히고, 박사가 잡히고, 와치맨이 잡히고 주요 가해자들은 다 잡았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 사실 지금도 그렇게 변한 건 없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23일 방송된 MBC < PD수첩 > '판사님은 관대하다 - 성범죄의 무게'편 역시 그렇게 성범죄자들에게 관대한 판사들의 판결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명하고 있었다.

구하라, 그리고 오 판사

"잊혀졌던 구하라씨의 재판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n번방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최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A판사가 n번방 공범 이모군의 재판을 담당한다는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A판사의 과거 판결들도 속속들이 공개됐습니다.

배우 고 장자연 성추행 사건 무죄, 성노예 게임사건 집행유예 등 국민 법감정과 거리가 있는 판결들도 함께 화제가 됐습니다. n번방 재판 담당 A판사를 교체해 달라 라는 국민청원이 등장했고 결국 A판사 본인이 재배당을 요청해 마무리됐습니다." (< PD수첩> 한학수 PD)


지난 3월 'N번방 담당판사 오덕식을 판사자리에 반대, 자격박탈을 청원합니다'란 청와대 국민청원은 시작 나흘 만에 40만 넘게 동의하며 이목을 끌었다. 이미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오 판사에 대한 비판과 성토가 이어져왔고, N번방 사건을 계기로 그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되며 전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됐다.

어디 오 판사뿐이겠는가. < PD수첩 >은 "지난 10년간 전체 성범죄 판결의 41.4%는 집행유예, 결론적으로 71.6%는 실형을 면했"다고 꼬집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다. '웰컴투 비디오'의 공범들도, N번방 사건의 가담자들도, 여타 다른 성범죄 가해자들 역시 이러한 한국 법원의 관대한 처벌을 알고 있고 기대하며 또 적절하게 대응한다.

합의는 기본이다. 그런데 원래 취지와 다르게 이 합의를 악용하는 가해자들이 부지기수다.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배우 강지환이 대표적이다. 그는 1심 이후 성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피해자들과 합의하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지난 23일 방송된 MBC < PD수첩 > '판사님은 관대하다- 성범죄의 무게'편의 한 장면

지난 23일 방송된 MBC < PD수첩 > '판사님은 관대하다- 성범죄의 무게'편의 한 장면 ⓒ MBC


< PD수첩 >의 취재 결과, 그 합의마저 피해자들의 압박을 통해 이뤄진 것이란 정황이 드러났다. 강씨의 소속사 관계자가 연예인 소속사와 스태프라는 일종의 갑을 관계를 이용하며 피해자들을 압박한 것이다. 이를 두고 < PD수첩 >은 "사죄는 하지만 잘못은 인정할 수 없다. 반성 없는 합의서를 만든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 PD수첩 >은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구하라씨 사건을 필두로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그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관대한 판결을 열거하고 있었다. 그 중 듣고도 믿지 못할 판결은 이거였다.  

"10살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남성에 대해서 2심 재판부가 형량을 대폭 감형해준 걸 두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우선 피해 아동이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과 10살 초등학생이 보인 저항의 정도가 약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학수 PD)

10살 초등학생 대상의 성범죄에까지 감형과 선처의 이유를 찾고 또 찾는 남성 중심의 대한민국 법원과 판사들. 이렇듯 법원이 여하한 이유로 선처를 하고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 판례로 굳어진다. 그것이 검찰의 구형에 영향을 미친다. 다시 판례를 들어 관대한 판결이 반복된다.

그러는 사이 대부분 여성인 피해자들은 '피해자다움'을 강요받아왔다. 그건 피해자들을 조사하는 남성 위주의 수사기관에서도 반복되는 강요라는 지적도 수십년 간 계속돼 왔다. 반면 남성 성범죄자들은 관대한 처벌을 받은 이후 과거 범죄 사실을 감춘 채 유유자적 사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 PD수첩 >이 만난 성폭력 피해자들의 절규 또한 한국사회가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어떻게 2차 가해를 양산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제가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정도로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진짜 법원 앞에서 목매고 죽을까 생각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판결) 잘 받으려면 정말 순수하고 너무 맑은 사람이어야만 해요."

"저는 앞으로 신고를 못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생겨도 신고하고 수사기관에 얘(가해자) 벌(받게) 해달라고 요청하면 꽃뱀으로 몰리고 무고가 되니까 다시는 신고하지 않아야지."


양형위원회의 고민
 
 지난 23일 방송된 MBC < PD수첩 > '판사님은 관대하다- 성범죄의 무게'편의 한 장면

지난 23일 방송된 MBC < PD수첩 > '판사님은 관대하다- 성범죄의 무게'편의 한 장면 ⓒ MBC


"아동학대나 성범죄에 대해 양형이 너무 낮다는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판사들의 (양형) 데이터베이스를 벗어나서 올릴 수 없나 고민하게 된다. 아동학대나 성범죄가 지금 고민 시점에 와 있는 범죄(다)." (김영란 양형위원장, 23일 KBS <법사위, '사법개혁·아동학대 양형' 논의…통합당은 불참> 기사 중에서)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김 위원장이 아동학대나 성범죄 양형과 관련해 너무 낮은 법정 기본형이 "국민감정과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 한 여당 의원의 질의에 한 답이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기본형이란 것은 가장 기본 범죄형에 대해 정하는 것"이라며 "기본형부터 너무 형을 높이면 가중할 수 있는 것이 좁아진다"고 답했다.

현재 관련 범죄의 기본 양형기준을 단시간에 높이는 것이 오히려 '가중'을 고려할 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판단은 법조계 내에서도 토론과 숙고를 거쳐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문제의식도 어느 정도 공유되는 중이다. 최근 검찰이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과 강훈 등 공범들을 '범죄단체조직죄'로 기소한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판사들의, 사법부의, 그리고 김 위원장의 '고민'에 피해자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충분하게 고민하고 숙고하기엔, 지금도 이미 늦었다고 여기지 않을까.

연장선상에서, 한국에서 강력하게 처벌하지 못한 손정우씨를 미국으로 송환하는데도 '숙고'를 거쳐야 하는 법원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피해자들의 고통으로, 2차 가해로 직결된다는 점을, 더 나아가 성범죄자들에게 나쁜 사인을 준다는 사실을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의 새삼스럽지 않은 충언을 법원이, 한국사회가 되새겨야 할 이유다.  

"재판부가 사실 옳고 그름을 가르고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엄청난 권한을 부여받았잖아요. 성폭력이 안 일어나야 되겠지만 만약에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국가를 믿고 고소를 하고 그 고소 과정에서 정당하게 피해를 인정받고 가해자가 처벌 받는 것을 보는 것, 이것은 우리 사회 정의의 실현이고 그 피해자의 일상을 찾아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첫걸음이 되는 거라고 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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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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