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라진 시간> 포스터

영화 <사라진 시간> 포스터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조진웅이 한적한 소도시를 지나간다. 그 첫 장면에서 조진웅은 그곳의 구체적 정경과 상관없는 존재로 부유하듯 스쳐 간다. 그 초현실적 영상을 카메라는 얼비치게 연출한다. 뒤 이은 교실과 운동장 장면에서는 교사 김수혁(배수빈 분)과 학생 진규(강민 분)를 통해 영화를 관통하는 두 복선, "프라이버시"와 "참 좋다"가 깔린다. 영화가 전개되며 드러날 사라진 시간의 아픔이 밴 저마다의 키워드다.
 
영화 <사라진 시간>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시골 마을에서 외지인 교사 부부가 화재 사고로 사망한다. 사건 수사를 맡은 박형구(조진웅 분)가 마을 사람들을 추궁하다가 하룻밤 새 완전 딴 삶에 부려진다. 형사 박형구의 삶이 현실에서 몽땅 사라진 것이다. 카메라는 교사의 정체성이 전무한 박형구의 몸부림을 클로즈업한다. 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삶의 정체성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스릴러물이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컷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사라진 시간>은 33년 차 배우 정진영이 메가폰을 잡은 데뷔작이다. 연기 인생으로 감정이입한 숱한 인물들이 그의 형이상학적 역지사지에 반영된 걸까. 정 감독은 드라마틱한 사건에 노출되기 쉬운 사람(들)이 어디나 흔한 갑남을녀임을 넌지시 가리킨다. 그 영화적 장치는 철문이다. 낯선 위험에 대비해 마을 사람들의 통념(분별)이 외진 집 내부에 설치한 배타적 경계다. 결국 인재(人災)로 작용해 교사부부를 죽게 하는.
 
그런데도 영화는 따뜻하게 전개된다. 낯선 삶에 던져진 박형구의 현실 순응을 마을사람들이 도와서다. 그 면면들은 죽은 교사부부 김수혁과 윤이영(차수연 분), 형사 박형구의 아내 전지현 겸 정해균의 동창 박미경(신동미 분, 1인2역), 마을 이장 두희(장원영 분), 철문을 설치하고 자물쇠 관리를 맡은 정해균(정해균 분), 뜨개질 강사 초희(이선빈 분), 수돌 노인(신강균 분) 등이다.
 
그들의 온기는 자기 속에 수많은 자기가 있음을 아는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사라진 시간'이 중의적이란 얘기다. 박형구처럼 난데없이 삶이 통째로 사라지거나, 윤이영과 초희처럼 밤 동안에는 낯선 역할자가 되어 삶의 반이 사라지는 불가해한 영역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하교 후 교실로 돌아와 사물함을 열고 남몰래 가족사진 속 엄마를 만나는 진규처럼 과거에는 있되 현재에는 없어 사라진 상식적 차원이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컷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그러니까 누구의 삶이든 알게 모르게 사라진 시간이 스며 있어 중층적이란 거다. 관객은 그 겹의 삶을 초희가 박형구에게 뜨개질을 잘 했다고 말할 때 그 자리에 있던 윤이영을 떠올리며 이해한다. 정해균이 불륜을 저지른 과오를 들추는 박형구의 앎에 대해서도, 그리고 박 형사가 15년 이상 쓴 휴대전화 번호를 초희가 약 2년 전에 쓰고 있었다는 어불성설의 사실에 대해서도 그렇다.
 
정 감독은 조진웅의 영상을 수미상관으로 배치하며 몽환적 분위기에서 구체적으로 전환시킨다. 그건 겹의 삶에 대해 집착하느냐의 인위적 여부가 삶의 질을 결정함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불가항력적인 겹의 삶을 극복한 교사 김수혁과 박형구가 무위하여 어김없는 자연을 향해 "정확하다"와 "참 좋다"로 감탄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사라진 시간에서 눈을 거두고 현실에 순응한 결과다.
 
그건 역으로 우리가 견고하다 믿는 '나'라는 정체성이나 내가 꾸린 삶의 정체성이 조건에 의지한 시한부임을 일깨운다. 거기에 더해 온천욕을 하러 들어선 낯선 부부가 화재 사고로 죽은 부부의 대사를 그대로 주고받는 장면은 동일한 사건들이 반복되는 삶의 바퀴에서 너나없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건 김수혁이 밤의 아내를 감내하듯, 박형구가 초희에게 동병상련을 드러내듯 역지사지를 부추긴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컷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그런 맥락에서 좌중에 송로주를 돌게 하는 수돌 노인(신강균 분)은 무상한 일상이 무리 없이 구르도록 하는 데 필요하다. 불가피한 사태에 대해 체념과는 다른 차원의 무위적 태도를 짓게 하는, 그리하여 삶의 연속성이 어김없이 찾아들도록 하는 촉매 작용자로서. 결국 박 교사는 수업 준비를 하며 마을의 일상에 스며든다. 그의 마지막 대사가 "참 좋다", 다. 그걸 누군가가 또 배턴터치하리라.
 
<사라진 시간>은 관람 후에도 몰입하게 하는 스릴과 울림을 갖춘 작품이다. 주장이나 토론으로 이끌어내기 어려운 불가해한 내용을 억지 쓰지 않으면서 내 인식지평을 넓혀준 정진영 감독에게 힘껏 박수 친다. 아울러 겹의 시간에 부대끼는 박형구의 아픔을 이심전심의 차원으로 표현한 배우 조진웅의 연기력에 대해 공감하며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유경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newcritic21/43)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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