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넷, 웰컴투비디오, 버닝썬, 그리고 N번방 사건까지. 굵직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일 방송한 KBS <시사기획 창> 'N번방은 법을 먹고 자랐다' 편은 디지털 성범죄에 무거운 처벌과 비난을 가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밀착 취재했다.

'디지털 성범죄'란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저지른 범죄로 상대방이 찍힌 사진이나 동영상을 동의 없이 촬영·유포하거나 이것을 빌미로 협박하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을 말한다. SNS, 모바일메신저, 온라인채팅 등을 통해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하여 피해자를 유인한 다음, 길들여 성 착취를 하고 이를 폭로하지 못하게 막는 디지털 그루밍도 포함한다.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집단 성 착취 범죄인 'N번방 사건'이 터지면서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N번방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일이 아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방조한 사법부와 입법부,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 만든 결과물이다.

대상과 영역 확장하며 성장한 디지털 성범죄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최근 10년간 디지털 성범죄는 그 대상과 영역을 확장하며 성장했다. 2007년 560여 건에 불과하던 카메라 등 촬영 장비를 이용한 범죄는 2019년 5881건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SNS 등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 범죄는 2007년 240건에서 2019년 1455건으로 급증했다.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이유는 한 번 유포가 시작되면 완전한 삭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유포된 영상물 삭제를 원하지만, 그것은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피해자는 평생 고통받는다고 설명한다.

"언제, 어디서 다시 이것(유포된 불법 피해 영상물)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이분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고통은 엄청난 거예요."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는 2018년부터 불법 피해 영상물 삭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하면서 삭제 지원 건수는 2018년 3만3921건에서 2019년 9만6052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삭제 요청이 급증하자 지원 인력을 2배로 보강했지만, 한 달 평균 8000건이 넘는 삭제 요청을 처리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제도의 부재다. 디지털 기술은 발달하는데 이에 대한 규제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IT 산업의 발달이라는 미명 아래 부작용들을 묵인하여 왔다.

그 결과 웹하드 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리는 업로더, 유통이 이루어지는 웹하드, 불법 검색 목록을 차단하는 필터링 업체, 불법 자료를 삭제하는 디지털 장의사 간의 유착 관계인 '웹하드 카르텔'까지 발생했다.

두 번째, 디지털 성범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의 인식이다. 서순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 급증한 원인을 '포르노 감상'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 시각을 지적한다.

"예전부터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 문제는 계속 있었는데 사회가 그것을 폭력이나 인권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고 그 가해를 용인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세 번째,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다. 사법부의 디지털 성범죄 인식 수준은 판결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주요 디지털 성범죄의 판결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본격적으로 알린 '소라넷 사건'이다. 성범죄를 모의하고 그 장면을 온라인에 유통하는 등 심각한 범죄 사실이 드러났지만, 주요 운영자가 모두 해외로 도피해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곧이어 제2의 소라넷으로 불리는 'AV스눕'이 등장했다. 이곳에선 23만 건이 넘는 불법촬영물이 유통되었는데 대부분 성범죄 관련 영상물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 착취 영상이었다. 그런데 사이트 운영자는 1년 6개월 실형만 살았을 뿐이다.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과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과가 없는 점'이 양형의 주된 이유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 착취 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도 1심은 집행유예, 2심은 1년 6개월을 받았다. 어린 시절 정서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고,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으며, 범죄 사실을 모두 자백했다는 점이 유리한 정상으로 반영됐다.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여 부양할 가족이 생긴 점도 양형에 참작됐다. 2심 선고를 보름 앞두고 혼인 신고를 했는데도 말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안일한 인식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N번방의 설계자라 불리는 '와치맨' 전아무개씨는 이미 2018년 불법 촬영한 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수백 개의 불법 촬영물을 제작, 유포했던 그에게 법원은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를 받은 전씨는 이후 텔레그램에서 '고담방'을 만들었다. 집행유예를 받은 덕분에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셈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안일한 인식은 기소율에서도 드러난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기소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아동·청소년 음란물 범죄의 기소율은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통신매체 이용음란에 비해 더욱 낮다. 어렵게 재판까지 가도 대부분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유예에 그친다. 징역형을 받은 건 5%에 불과하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법부의 관행적인 솜방망이 판결을 비판한다.

"기본적으로 법정형도 낮고요. 인식 역시도 신체적인 방식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피해자에게 그 피해는 덜할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피해자에게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가해자가 어떤 이득을 얻어왔는지 제대로 본다면 '그냥 음란물 정도인데'라고 생각하면서 형량을 그렇게 마구 낮춰주지는 않겠죠."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무려 270만 명이 참여했다. 국회 국민청원에서도 국제 공조 수사, 수사기관의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 강화를 요구한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도 10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많은 국민이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기존 법률안으로 대처한다는 이유를 들어 청원을 폐기했다. 이 과정에서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처벌할) 것이냐?",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냐?",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듭니까?" 등 일부 국회의원들의 발언이 전해지며 공분을 샀다. 입법부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을 그대로 드러낸 대목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20대 국회는 막바지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형법 개정안,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앞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는 대폭 높아졌다. 인터넷 사업자에게 범죄 예방의 책임도 강화했다.

"잘못된 양형 기준, 과감하게 바꿔야"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실제 판결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양형 기준도 올려야 한다. 양형 기준은 법관이 형을 정할 때 참고 사항으로 구속력은 없지만, 법관이 그것을 거스르는 판결을 내릴 경우엔 사유를 기재해야만 한다.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원민경 텔레그램 성 착취 피해자 변호인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강한 처벌 기준을 주문한다.

"잘못된 양형 기준이 계속 적용되고 있었다면 이번에 과감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양형위원회가 올해 꼭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디지털 성범죄의 근절을 위한 중요한 과제로 지적됐던 관련법의 양형 기준안 마련은 올 연말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성폭력처벌법, 아동 청소년성보호법 등의 개정 내용을 양형 기준에 반영해야 하는 이유를 들어 7월과 9월에 회의를 열 계획이다. 여기서 범죄의 설정 범위, 형량 범위 등을 심의한 뒤 양형 기준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1월에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열고 최종 양형 기준안은 12월에 의결할 예정이다. 이후 양형 기준안은 관보에 게재된다.

새로운 양형 기준은 관보 게재일 이후 기소된 범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따라서 '박사' 조주빈, '이기야' 이원호, '부따' 강훈, '갓갓' 문형욱, 안승진 등 N번방 관련 피의자들에겐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점을 사법부가 어떻게 대처할지 숙제로 남게 됐다.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선 강한 처벌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디지털 성범죄가 그저 야동이란 생각을 버리고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린 중대한 범죄로 여겨야 한다. 또한, 모두가 디지털 성범죄 감시자가 되어 더는 피해자가 안 나오도록 연대해야 한다. 우리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N번방은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 N번방 사건을 규탄하는 한 시민은 간절히 호소한다.

"그때 (소라넷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여 그 사람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엄벌에 처했다면 반복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사건입니다. 이것은 인재입니다. 이번에도 이 사람들을 솜방망이 처벌하여 머지않아 사회에 방생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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