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리꾼>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

영화 <소리꾼>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 ⓒ 리틀빅픽쳐스

 

어쩌면 감독에겐 이 작품이 평생의 숙원이었다. 대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할 때 쓴 판소리 소재의 단편을 품고 품다가 20여 년 만에 장편영화로 만들었다. 조정래 감독은 영화 <소리꾼> 개봉을 앞두고 "이제야 좀 한을 푼 기분"이라며 "<소리꾼>을 만들기 위해 지난 시간을 살아온 것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실제 명창인 이봉근을 중심으로 배우 이유리와 박철민, 아역 김하연이 뭉쳤다. 춘향가와 심청가를 모티브로 삼아 자칫 다 알려진 얘기인 양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스크린에서 퍼져 나오는 소리의 힘이 꽤 크다. 가족의 재구성, 삶의 의미와 행복을 묻고자 했다고 한다. 

다음은 조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1998년 썼던 단편 <회심곡>에서 발전한 이야기라고 들었다. 당시 지도교수가 단편치고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들 것 같다고 했다는데. 
"일종의 불교 잡가인데 그때 쓴 시나리오 내용 구성은 보잘것없었다. 회심곡을 쭉 틀어놓은 채 인서트 장면을 넣으며 한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식으로 흐르는 거였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고, 노년까지 함께 보낸 부부가 인생을 돌아보며 그래도 잘 산 것 같다며 서로 위해준다는 내용이다. 지금 <소리꾼>에 나오는 심학규(이봉근)와 갓난이(이유리)의 프로토타입(본 이야기에 앞서 구현한 시험적 형태)인 셈이지. 인서트마다 세트가 바뀌어야 하니 교수님이 1억은 들겠다고 하신 거다. D나 C를 받겠구나 싶었는데 A+를 주시더라. 큰 용기를 얻고 가슴에 계속 품고 있었다."

- 학부생 시절 <서편제>를 보고 북을 배우고, 소리 공연을 다녔으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님들을 위한 봉사활동 또한 하셨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돌아오며 영화를 만들어냈기에 감회가 더 새로울 것 같다.
"맞다. 행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제가 그간 여러 선배들 영화에 조수로 참여하고, 방황하면서도 꼭 소리 영화를 구현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봉사활동을 다니면서도 생계를 위해 매주 두세 번씩은 전국을 돌면서 공연했고, KBS <국악 한마당>과 <폭소클럽>이라는 프로에도 출연했다. '리플가'라는 코너에서 북을 치는 역할을 했지. 그렇게 소리에 미쳐 있으니 사람들이 절 전라도 출신으로 알더라. 근데 저 경상도 깡촌 출신이다(웃음)."

-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이야기를 그린 전작 <귀향> 때 투자받기가 매우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담당 프로듀서가 집을 팔기도 했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어렵게 완성해냈는데 <소리꾼>은 어땠나.
"쉽진 않았다. 절 아끼시는 분들이 <소리꾼> 시나리오를 보시곤 왜 이렇게 사냐, 왜 고지식하게 삶을 사냐고도 하셨다. 제가 감독으로선 하자가 많지만 그냥 제가 아는 이야기를 영화로 푸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누가 판소리 영화에 돈을 쉽게 투자하려 할까. 다행히 <귀향>을 사랑해주신 분들이 도와주시고 믿어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순제작비가 57억 원이다. 사극이라 제작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제겐 정말 감사하고 큰돈이다." 
 
"마지막 장면 찍을 때 현장 스태프 다 같이 울어"

 
 영화 <소리꾼> 관련 사진.

영화 <소리꾼> 관련 사진. ⓒ 제이오엔터테인먼트

 
- 이런 프로젝트에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판소리 명창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은 분명 모험인 것 같다.
"2000년 초에 국악 활동을 하며 만난 친구다. 어리지만 정말 명창이었다. 캐스팅을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지만, 전 이 영화의 숨은 주인공이 소리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봉근씨가 참여하기로 한 후에 결례일 수 있지만 완성된 판소리보다 좀 거칠더라도 사람들 마음에 와닿는 걸 해내야 한다고 부탁했다. 어려운 주문인데 그걸 해내시더라.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땐 현장 스태프들이 함께 다 울었다. 그날 저녁 제 인생 최고의 소리를 들었다고 말해주었는데 그 역시 인생 최고의 노래를 한 것 같다고 하더라. 이게 스크린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잘 나온 것 같다.

영화의 대부분이 동시녹음이다. 촬영 전에 음악을 80프로 이상 만들어놨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대본리딩 할 때부터 영화 음악을 틀어놓고 했는데 그때부터 다들 우시더라. 촬영 때 나오는 보조 출연자분들은 일하러 왔다가 좋은 공연을 보고 간다고 말할 정도였다." 

- 김동완씨를 캐스팅한 계기도 궁금하다. 현장에 신화창조 팬들도 많았다고 하더라. 
"그의 의지가 엄청났다. 대본 보고 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영화에선 깨방정 떨고 쭈글이처럼 구는데 딱 자기 모습이라고 하더라. 팬들이 현장에 막 뭘 보내주시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동완씨는 참 물건이더라. 정말 괜찮은 청년이다. 현장에서 이유리씨와 함께 긍정 분위기를 전파하곤 했다. 박철민 선배도 이런 촬영현장은 처음이라 하셨다. 너무 좋았다면서 말이다."

- 영화 곳곳에 나오는 풍광과 배경을 보면 굉장히 장소 헌팅을 열심히 하신 것 같더라.
"전국 팔도 안다닌 곳이 없다. 전라남도, 북도, 충청도, 경기도 등등 다 다녔다. 스태프들이 정말 고생 많았다. 저도 무릎 연골이 찢어질 정도였으니. 영화로 한 폭의 풍경화나 풍속화를 봤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신기하게도 촬영 중 비가 한 번도 안 내리더라. 촬영이 없을 때 내리고. 스태프들께 너무 감사하다. 그 열정이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였다."

"심 봉사 눈뜰 때 마치 내가 눈 뜨는 기분" 
 
 영화 <소리꾼>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

영화 <소리꾼>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 ⓒ 리틀빅픽쳐스

 
- 에스닉 밴드 공명의 박승원씨도 음악 감독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국악을 전공했음에도 월드뮤직을 하고 있는데 그만큼 폭이 넓다.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이 노력했나. 쉽지 않은데 저 역시 판소리 얘기를 잘 들어주실까 걱정이 많았다. 음악 영화라 음악이 중요했다. 동시에 서사가 받쳐주지 않으면 물과 기름처럼 둥둥 떠다닐 것 같아서 그 부분에 신경을 썼다. 현장에서 하나하나 키를 조율해가면서 촬영했다. 박승원 감독님은 현장에서 곡을 쓰기도 했다. 제가 말도 안 되는 주문을 많이 했다. 정말 감사한 분이다."

- 우리가 분명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힘이 느껴지더라. 뻔할 수도 있겠지만 음악과 조화가 좋았던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판소리나 설화를 바탕으로 또 다른 영화를 기획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자님 말대로 클래식은 정말 클래식이더라. 저도 사실 수십 번 심청가를 보고, 공연도 했는데 이제야 심청가를 이해한 느낌이다. 인신공양 설화, 심청굿 기원설 등 여러 근원설화가 있는데 우리에겐 단순히 효를 강조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근데 여기엔 우리 민족 혹은 인류의 정체성이 숨어 있더라. 심 봉사가 눈을 뜰 때 마치 내가 눈을 뜨는 기분이었다. 그가 맹인이 아니라 내가 맹인은 아니었을까. 이미 행복한 삶인데 우린 그걸 놓치고 있진 않을까. 눈먼 봉사가 아닌 눈뜬 봉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서사로 잘 녹여서 표현하고 싶었다. 청이 역시 아버지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말하잖나. 

사실 판소리 영화기에 대부분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오시더라. 근데 보신   분들이 마치 한 방 맞은 느낌 같다고 하신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다 보인다고 말이다. 시사회 때 걱정이 많았는데 그런 염려를 불식할 만큼 좋아해 주셔서 행복하다."

당장은 개봉과 홍보에 힘을 쓰겠지만 조정래 감독은 이미 차기작 구상을 해놓고 있었다. "다만 연출은 다른 분이 해주셨으면 한다"며 그는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귀향> 일본 순회 상영 때 인연으로 훗카이도 원주민 이야기를 기획 중이었다. 아이누족과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이들을 핍박한 일본 정부를 통해 그는 우리가 잊고 있던 또 다른 진실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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