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개봉한 독립영화 <바람의 언덕>은 올 초부터 지난 5월 말까지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라는 다소 생소한 상영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전국의 관객들과 만나 왔습니다. 전국 각 지역의 영화 커뮤니티와 독립예술영화 극장 등에서 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며 '아주 특별한 여정' 이어갔습니다. 그 여정의 기록을 개별 커뮤니티 혹은 개인의 소개와 극장 소개가 포함된 연재를 통해 전합니다. 그 열한 번째는 전주 무명씨네 최은경님, 김규민님, 이하늘 대표가 보내온 편지입니다.[편집자말]
 <바람의 언덕> 전주 상영회 포스터.

<바람의 언덕> 전주 상영회 포스터. ⓒ 영화사삼순

 
삶의 항해는 계속된다, 두려움과 호기심이란 이중의 '바람'이 공존하므로

후회하지 않고 삶을 살아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누구에게나 딱 한번 밖에 살아지지 않는 게 인생이다. 아무런 선행학습도 없이 매 순간 선택의 기로를 거치며 살아야 하는 인생에서, 어느 누가 삶에 대한 두려움에 초연할 수 있을까.

영화 <바람의 언덕>은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는 것이 두려워 새 삶을 위해 떠났던 여자 영분과 엄마의 얼굴도 모른 채 버려졌음에도 애잔할 정도로 밝게 살고 있는 딸 한희의 이야기를 표면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누구나 가지는 삶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인해 외로워지고, 또 외로워서 결국 선하고 따스해질 수밖에 없는 보통의 불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리 익숙해지지 않은 것만 같은데 다시 또 미지의 바람이 이는 언덕에 주저앉아 두려움을 고해하며 마주 웃고 하나의 숨인 듯 긴 호흡을 내쉬며 시작될 두 여자의 항해를 지켜보며, 우리가 그녀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선 어느새 그녀들의 언덕에 함께 앉아있는 우리를 보게 하는 영화였다.

글쓴이_무명씨네 모더레이터 최은경

오랜만에 '살아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바람의 언덕> 전주 상영회 현장.

<바람의 언덕> 전주 상영회 현장. ⓒ 무명씨네


그날은 전주에서 아주 오랜만에 독립영화가 상영되는 날이었습니다. 전주디지털 독립영화관이 잠정 휴관에 들어가고, 5월 전주를 북적이게 만들던 국제영화제가 '무관객' 상영으로 대체된 이래 처음이었죠.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상영관을 찾지 못해 엎어지기가 여러 번. 3월 예정이었던 상영전이 그로부터 두 달이나 흐른 5월 17일에서야 전주 고사 CGV에서 열렸습니다. 그것이나마 많은 분의 눈물 나는 노고 속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알기에 정말, 정말로 감사한 자리였습니다.

오랜만에 전주를 찾은 영화는 박석영 감독님의 네 번째 장편 <바람의 언덕>이었습니다. 그날의 분위기는 뭐랄까, 관객 분의 말을 빌려 "오랜만에 살아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영화도, GV도 긴 호흡으로 풍성해서 간만에 마음 놓고 숨 쉬어볼 수 있었어요. 다 같이 모여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일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벅찬 만남을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찔끔 납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애정의 연쇄
 
 <바람의 언덕> 전주 상영회 현장.

<바람의 언덕> 전주 상영회 현장. ⓒ 무명씨네

 
이 전례 없는 경험이 남긴 질문은 아마도 영화가 관객과 만나는 그 일의 의미일 것입니다. GV가 끝나갈 쯤 박석영 감독은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관객들이 영화의 주인이에요. 마음을 담는 사람들이 주인이죠. 저희는 저희들만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인생을, 어떤 순간들을 소중하게 담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함께 나누는 게 소중해요. 영화라는 게 중간에 하나 있기에 우리들이, '이렇게 봤어', '저렇게 봤어' 하면서 시작할 수 있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같이 존재하는 거잖아요? 사람은 이렇게 함께 문화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거고(중략).

독립영화(와 그에 속한), 배우, 커뮤니티는 산업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영화를 보러 와주시고 같이 이야기한다는 것. 이(무의미)를 이겨내는 아름다운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무명씨네'와 같은 커뮤니티들은, 보기 싫은 영화만 하루 종일 걸어놓는 기존 영화관(어떤 자본의 역학에 의해 움직이는)에 지친 시민들이 발 벗고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나서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만날 수 없는 게 아닌데 시스템에 의해 소외되고 마는 영화들을 사람의 손으로, 애정으로 복원하는 움직임인 셈이죠.

그러니까, 감독님의 말처럼 이 모든 일이 결코 돈벌이는 못 되더라도, 우리는 분명 영화를 가운데 두고 어떤 마음을 나누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어지고, 지키고 버티며, 우리가 좋아하는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요.
 
 <바람의 언덕> 전주 상영회 현장.

<바람의 언덕> 전주 상영회 현장. ⓒ 무명씨네

 <바람의 언덕> 전주 상영회 현장.

<바람의 언덕> 전주 상영회 현장. ⓒ 무명씨네

 
<바람의 언덕>은 감독님의 어머니께서 시작하게 해준 영화이자 배우들과 함께 만든 영화입니다. 그리고 관객에게서 읽혀지는 영화이기도 하지요. 각각의 관객에게 <바람의 언덕>은 인생 어느 순간에 자리하고 있겠죠. 이 경험을 귀하게 여겨 앞으로도 이런 고리가 계속된다면,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보는 일에 관해 많은 이들이 함께 목소리 내준다면, 더 큰 애정이, 멋진 만남과 이야기들이 계속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쓴이_전주 독립영화잡지 아모르 김규민

전주에서 영화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
 
 영화공동체 무명씨네 로고.

영화공동체 무명씨네 로고. ⓒ 무명씨네

 
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 영화제작동아리인 '창작집단 나이테' 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영시미의 동아리 담당 선생님과 같은 동아리에서 결이 같던 5명의 친구들은 '나이테 상영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만의 작은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뭉쳤다.

전주의 전통시장 중 한 곳인 남부시장 내 청년들을 위한 공간인 청년몰. 그 곳에서 우리의 상영활동은 시작되었다. 밤샘영화제 '나의 n번째 사춘기'. '무박이일'로 밤을 새며 독립예술영화를 연달아 보는 행사는 우리의 예상보다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우리가 기획한 영화제에서 관객들이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창작집단 나이테'에서 '영화공동체 무명씨네'로
 
 '나의 n번째 사춘기' 영화제 현장.

'나의 n번째 사춘기' 영화제 현장. ⓒ 무명씨네

 
'나의 n번째 사춘기' 이후 상영활동에 재미를 느낀 '나이테 상영단'은 그 해 동아리 연말 행사로 한국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 '나이테의 밤'을 기획했다. '우리청춘독립영화'라는 이름으로 단편영화를 3편 상영하고, 감독님들을 초청해 토크콘서트를 열고, 부대행사로 밴드 공연을 마련했다. 상영단의 각 멤버들이 역할을 분배해 상영회를 진행했다.

이 행사가 기틀이 됐다. 2017년 3월,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 함께 보자'라는 취지로 '무명씨네'를 결성, 공동체 상영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가게 됐다.

무명씨네라는 이름은 '이름 없는 모두의 영화관'이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며 '무명(無名)'의 작품, 감독, 배우의 작품을 상영하자는 뜻과 함께 영화관이 암전이 된 후 '무명(無明)' 상태의 이미지를 담았다. 공동체상영을 기획하는 것 외에 영화를 매개로 하는 다양한 활동을 도모하며 지역의 커뮤니티시네마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무명씨네'만의 시그니처 프로그램
 
 무명씨네의 기획 상영회 현장.

무명씨네의 기획 상영회 현장. ⓒ 무명씨네

 
기획 상영회는 상업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예술영화와 단편영화를 상영하는데, 주제를 정하고 그에 따라 영화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함께 보고 싶은 작품들을 프로그래밍 하기도 한다.

보조 사업에 공모하거나 미디어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품 수급비나 대관비를 충당하며 상영회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지역의 독립영화와 단편영화 상영 기회를 확대 시키고, 시민들의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는 영화문화 형성과 지역의 문화 향유권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상영회는 우리의 첫 번째 상영회 '빛이 없는 밤'이다. '무명'씨네라는 이름에서 착안한 상영회로, 지하 주차장에서 공포 장르의 단편영화를 상영했다. 공간과 영화라는 기획이 잘 맞아 떨어져 관객과 멤버 모두 만족했던 상영회였다.

매번 다른 기획 상영회를 진행해왔지만, 이제는, 올해는 무명씨네만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만나고자 한다. 장르영화를 상영, 최초의 무명씨네를 기억하게 하는 '빛이 없는 밤', 매년 진행하며 모두의 사춘기를 이야기하는 '나의 n번째 사춘기', 그리고 작년에 처음 시도한 전주/전북의 신진 영화 창작자들을 응원하는 '전주 뉴웨이브전'을 계속 발전 시켜 나가려고 한다.

전주 지역 영화광 모여라
 
 관객모임 네트워크에서 만난 무명씨네 구성원들.

커뮤니티 시네마 네트워크에서 만난 사람들 ⓒ 무명씨네

 
무명씨네는 기획 상영 외에도 전주 지역의 영화 동아리, 관객 모임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7년 9월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폴링 인 전주' 시민 참여 섹션에 참가, 관객모임 간담회를 진행했고, 전주에서 활동하는 관객모임 '씨네몽(영화리뷰모임)'과 '아모르(영화잡지발간단체)'와의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후 2018년은 '씨네몽'의 회원이 무명씨네의 상영회의 시민 모더레이터로 활동했으며, 2019년은 '아모르'와 함께 한국 독립영화 상영 및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또 아모르, 지역 영화인들과 필름타워라는 프로젝트 팀을 결성, 영화 인문학 강연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 앞으로 전주, 전북 지역의 관객 활동이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다른 단체들과 협력, 재미있는 기획을 많이 할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다.

내 '띵작'이 최고

상영회의 일회성을 보완하고 시민들에게 더욱 적극적인 영화 공동체적 체험이 가능하도록 영화감상모임을 조직했다. 2017년 10월, 11월 2회에 걸쳐 감상모임도 진행해 봤고, 이를 발판 삼아 2018년 1월 회원 모집 이후 2월부터 매월 둘째, 넷째 주 2회 감상모임을 진행했다.

또 '나띵베러: 내 띵작이 최고'라는 이름으로 영화감상모임 회원들이 각자의 인생 영화를 회원들에게 소개하고, 상영 후 영화를 선정한 회원이 직접 모더레이팅에 나서 회원들과 감상을 나누었다.

이런 상영회를 바탕으로 영화 에세이를 작성해 공유했으며, 2018년 한 해 동안 총 10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회원들이 작성 해 준 영화 에세이는 비평 워크숍 글과 함께 매거진으로 제작, 기록했다. 이후 감상모임 운영을 잠시 쉬어가고 있는데, 무명씨네만의 장소가 생기고 안정적으로 모임을 진행할 수 있을 때 다시 재개하려고 한다.

매력 넘치는 '아지트-커뮤니티 시네마'를 위하여
 
 매력적인 '아지트-커뮤니티 시네마'를 만들기 위하여.

매력적인 '아지트-커뮤니티 시네마'를 만들기 위하여. ⓒ 무명씨네

 
앞으로도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꾸준히 상영회를 기획하면서 관객공동체를 확대하고자 한다. 영화공동체, 관객공동체라는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는 '선진지' 탐방도 하고 있다. 각 지역 소규모 극장의 활동 모습과 공간의 활용, 프로그램 기획에 대해 공부하며 어떻게 하면 무명씨네가 커뮤니티 시네마의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 중이다.

또 무명씨네의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마련코자 노력하고 있다. 커뮤니티가 머물며 상영회를 진행하고 스크린 상영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무명씨네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이다. 무명씨네 회원뿐만 아니라 지역 영화인,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매력적인 '아지트-커뮤니티 시네마'를 만들고 싶다.

글쓴이_무명씨네 대표 이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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