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를 작곡한 원로 동요작곡가 권길상씨가 2007년 10월 18일 오후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에서 열리는 동요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

<꽃밭에서>를 작곡한 원로 동요작곡가 권길상씨가 2007년 10월 18일 오후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에서 열리는 동요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 ⓒ 연합뉴스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동요들이 있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이따금 입에서 저절로 나오기도 하는 동요들 말이다. <메아리>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로 시작하는 노래다.
 
또 다른 동요는 <꽃밭에서>다. 이 노래의 주제는 '헤어진 아빠'다. 제목에 들어간 '꽃밭' 때문에 '아빠' 이미지가 덜 부각됐지만, 아빠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이 노래에 깔려 있다. 헤어진 아빠와 재회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절절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전체 가사는 이렇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 놀다가/ 아빠 생각 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 같이 살자 그랬죠.
 
<나뭇잎 배>도 친숙함을 주는 동요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로 시작한다. <고향 땅>도 그런 작품이다. 첫 대목이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 닿은 저기가 거긴가"이다.
 
아이들 동심에도 흔적 남긴 전쟁의 비극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국민 동요'라 할 수 있는 이 노래들이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6·25전쟁)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전쟁의 비극이 어른들의 정서뿐 아니라 아이들의 동심에까지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 이것이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위 동요들 중 <꽃밭에서>는 1953년에 작곡가 권길상과 작사가 어효선이 합작한 작품이다. <나뭇잎 배>는 1955년에 작곡가 윤용하, 작사가 박홍근이 창작한 노래다. <고향 땅>은 1956년에 작곡가 한용희와 작사가 윤석중이 만들었다.
 
<꽃밭에서>, <나뭇잎 배>, <고향 땅>은 한국전쟁 때문에 떨어지게 된 가족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살았을 공간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 있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반영하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2018년에 <경제교육연구> 제25권 제1호에 실린 김상규 대구교대 교수의 논문 '시대별 동요로 살펴본 사회경제적 함의'는 이렇게 설명한다.
 
"<꽃밭에서>의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 같이 살자 그랬죠'와 <나뭇잎 배>의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그리고 <고향 땅>의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 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에서 보듯이, 이들 세 동요는 6·25 전쟁으로 인해 남북이 분단되고,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인적·물적 파괴로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는, 다시 말하면 낯선 땅에 있으면서 고향이 그리워지거나 지난날이 그리워지는 마음인 향수, 노스텔지어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
 
동심에 남은 전쟁의 상처는 또 다른 유형의 동요들에도 반영됐다. 전쟁으로 인한 피폐화와 이의 복구를 위한 사회적 노력이 아이들의 노래에도 투영됐다. <메아리>가 바로 그런 노래다. 전체 가사는 이렇다.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벌거벗은 붉은 산에 살 수 없어 갔다오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산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
메아리가 살게 시리 나무를 심자

이 노래는 휴전 이듬해인 1954년에 나왔다. 작곡가 김대현과 작사가 유치환이 창작했다. 1949년부터 4월 5일이 식목일이 된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전쟁 이전에도 나무 심기의 필요성이 크게 강조됐다. 3년간의 전쟁은 그 필요성을 한껏 높여놓았다. 그래서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정부는 대규모 식목 행사를 계획하고 국민적 참여를 독려했다. 1954년 4월 5일자 <경향신문> 기사 '5일은 식목일'에서 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전 국토의 7할 이상을 산으로 가지고 있고 그 산의 5할 이상이 벌거숭이 산으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정부에서 조림(造林)·식재(植栽)·사방(砂防, 토양 유실 방지) 사업 등으로 국토 녹화를 도모하고 있는데, 금년에는 1억 4천만 그루의 조림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금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전국 70만 정보의 산야에 15억 6천만 그루의 조림을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거대한 조림 사업을 추진하고 국토 녹화를 획책하는 데에는 국민의 애림 사상과 산림 녹화에 대한 전국적인 협력이 무엇보다도 요청되는 것이다."
 
대규모 식목 캠페인에 국민을 동원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중을 보여주는 신문 기사다. 이 같은 국가적 행사에 어린이들을 참여시키고 이를 통해 어른들을 보다 쉽게 참여시키려는 의중을 반영하는 것이 <메아리>라고 할 수 있다. 전국의 아이들을 '어린이 합창대'로 만들고 이들을 앞세워 식목 캠페인을 벌이고자 하는 정부의 계획을 짐작게 한다.
 
일본 침략전쟁 찬양하는 동시와 동요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 민족문제연구소

 
어린이들을 무언가에 동원하려는 데 활용된 동요는 <메아리> 말고도 더 있었다. 아이들을 앞세워 전쟁 분위기를 독려하려는 의도를 가진 작품들도 있었다. 작곡가 권길상과 친일 작사가 김영일이 만든 <대한의 아들>도 그런 노래 중 하나다.
 
<친일인명사전> 제1권에 따르면, 김영일은 1914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다. 문단에 데뷔한 것은 20세 때인 1934년이다. 이해에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주관하는 신춘문예전에서 동요 <반딧불>을 출품해 당선됐다.
 
그 뒤 그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동시와 동요들을 발표했다. 그런 작품 중 하나가 <대일본의 소년>이다. "에헤야 소년들아 대일본 소년들아/ 굿굿이 씩씩하게 힘써 나가자"란 가사를 담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전시 동요였다.
 
김영일은 한국전쟁 때도 전시동요를 만들어냈다. 1952년에 국민학교용(초등학교용) <새음악> 발행에 참여한 것이 그 사례다. 2018년에 <현대문학의 연구> 제64권에 실린 원종찬 인하대 교수의 논문 '한국전쟁기 임시 교과서와 반공 아동문학'은 <새음악> 발간과 관련해 "이 노래책의 제작을 동시인(童詩人) 김영일이 작곡가·삽화가들과 공동으로 수행"했다고 설명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새음악> 4학년용에 <대한의 아들>이란 노래가 수록돼 있다. 이 노래는 "나아가자 씩씩하게 대한 소년아/ 태극기 높이 들고 앞장을 서서/ 우리는 싸우는 대한의 아들 딸/ 무찌르고 말테야 중공 오랑캐"란 가사를 담고 있다. 아이들을 앞세워 '중공군 오랑캐'에 대한 전투 의욕을 고취시키고 이것이 전 국민에게 확산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중을 담은 작품이다.

한국전쟁 뒤에는 전쟁으로 얼룩진 동심을 순화시키기 위한 동요들도 발표됐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로 시작하는 <파란마음 하얀마음>도 그런 작품이다. 작곡가 한용희와 작사가 어효선이 만든 이 노래는 1956년 발표됐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빛 물이 들지요/ 어여쁜 초록 손이 되지요"라는 가사가 들어간 <초록바다> 역시 그런 노래다. 작곡가 이계석과 작사가 박경종이 합작한 이 동요는 1958년 발표됐다. 이 노래들은 단순히 작가들의 의지만으로 세상에 나온 작품들이 아니다. 정권 차원의 의중을 반영하는 동요들이었다. 위의 김상규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는 전쟁 직후인지라 거칠어진 어린이의 마음을 아름답고 씩씩하게 순화해야겠다는 뜻에서 '밝고 아름다운 노래 부르기' 캠페인을 펼쳤는데, 이때 선정된 100곡의 방송 동요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파란마음 하얀마음>이다. <초록바다>는 산뜻한 노랫말과 경쾌한 가락, 리듬이 조화를 이루는, '밝고 아름다운 노래 부르기' 캠페인에서 선정된 동요로서 오늘날까지 널리 애창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전쟁은 어린이들의 정서에도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이 흔적은 그들의 입을 통해 노래로 바뀌었다. 이 노래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한국전쟁의 충격이 얼마나 심대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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