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 데이 앤 어 나잇> 메인포스터

영화 <올 데이 앤 어 나잇> 메인포스터 ⓒ 넷플릭스


01.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밤, 한 남자가 누군가의 집으로 숨어든다.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한 집. 아마도 그는 집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의 이름은 자코르(애슈턴 샌더스 분). 살인을 저지를 예정이다. 이윽고 집으로 돌아온 한 가족. 그 집의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아내와 딸만큼은 보내달라고 애원하지만 자코르는 어린 소녀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부모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를 향해 거침없는 총질을 시작한다. 문제는 그가 자신이 죽인 이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죽임을 당한 남자는 자신이 왜 죽는지,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이가 누구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 자코르가 한 말이라고는 죽음을 앞둔 남자 말콤(스테판 베링턴 분)을 향해 '날 기억하나?'라며 총을 쏘기 전, 아주 짧게 한마디 남긴 것이 전부다.

그의 살인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다. 아들을 잃은 말콤의 엄마는 자코르를 향해 왜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만 했는지 울부짖으며 묻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선고된 종신형이라는 무거운 처벌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자신이 살인을 저질러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입을 다문다. 그는 모두들 쉬운 대답만을 원할 뿐이라는 알아듣기 힘든 말만 속으로 되뇌며 교도소로 향한다.

살인을 저지르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한 남자의 회상으로 진행되는 조 로버트 콜 감독의 영화 <올 데이 앤 어 나이트>는 흑인들이 마주하게 되는 삶과 그 삶이 대를 이어 반복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감독은 주인공 자코르의 삶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흑인이기에 강요되는 삶의 모양과 바깥 세상으로부터의 시선과 정당하고 공정한 방식으로는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없었던 이전 세대의 그릇된 가치관과 교육이 새로운 세대에 미치는 영향을 표현하고자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수백 년을 이어온 인종차별주의 사건이 또 한 번 있었다. 백인 경찰 데릭 쇼빈에 의해 흑인 시민 조지 플로이드가 체포 과정에서 사고라고 하기에는 의도적이고 폭력적으로 목이 짓눌린 것이다. 이에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뜻의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다시 크게 번지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이 영화 <올 데이 앤 어 나잇>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작품 속에는 우리가 쉽게 접하는 억압이나 차별과 같은 외부 사회로부터의 문제뿐 아니라 흑인 사회 내부에서 비롯되는 폭력의 대물림, 끊이지 않는 악의 유혹과 회유 등의 문제들이 함께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02.
자코르에게도 평범한 보통의 또래 아이들처럼 그 역시 순수하고 여린 마음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성실한 모범생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처음부터 폭력과 악습에 길들여진 아이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절친한 친구 라마크(크리스토퍼 메이어 분)의 말대로 자신들이 처신을 잘하기만 하면 위험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도 분명히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생각할 정도면 현실이 녹록한 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태어난 캘리포니아 주의 오클랜드라는 지역은 범죄율이 높고 치안이 좋지 않았는데, 특히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자코르의 아버지(제프리 라이트 분)의 경우에는 이미 6살일 때 그의 아버지가 9번이나 감옥에 다녀온 상태였고, 주변에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마약을 거래하거나 사람을 사고 팔거나 길거리를 전전하며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강탈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이라고는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빼앗아 쟁취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남들을 반쯤 죽여 놓으라는 것뿐이었으니 자코르의 아버지 역시 그렇게 살았다.

자코르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믿음과는 달리 주변에 눌러앉은 일상의 폭력은 시시때때로 밀려왔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사방이 폭력으로 가득하면 익숙해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바깥에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 물건을 빼앗기기 시작했고, 그에 맞서 항의하다 린치를 당하는 날에는 맞고 들어왔다는 이유로 그의 아버지가 사정없이 매질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친 바깥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유로 흑인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 내에서조차 서로가 서로의 것을 빼앗고 상처 입히며 자라야만 했다.
 
 영화 <올 데이 앤 어 나잇> 스틸컷

영화 <올 데이 앤 어 나잇> 스틸컷 ⓒ 넷플릭스


03.
스스로의 힘으로 판단할 능력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의 과오를 다시 한번 반성하고 꿈을 찾아 새로운 삶을 계획하던 자코르는 또 한번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에서 시작되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백인 사회로부터 시작되는 멸시와 차별의 이야기다.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의 어려움도 그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각에 불과하다. 점원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의심부터 하는 손님들과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들을 주시하는 공권력. 시대가 흘러 직접적인 폭력이 가해지지 않는다고는 하나 그런 시선들을 언제나 받아내야만 하는 삶이다.

여기에 어린 시절 절친인 라마크의 이야기도 더해진다. 자진해서 입대한 그가 큰 부상을 입고 제대한 것도 모자라 수술마저 제대로 되지 않아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소식. 일반적이라면 한 개인의 불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격지심인지는 몰라도 이런 일들이 항상 흑인들에게만 발생하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라마크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의 그 믿음을 성인이 되어서도 외면한 적이 없는, 누구보다 성실한 삶을 살아온 터라 더욱 그런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왜 이런 나쁜 이야기는 우리에게만 따라다니는 것일까.

04.
지속적인 폭력에의 노출. 백인 사회로부터의 멸시와 차별 등 우연인지 아닌지 모를 악연이 더해지면서 자코르의 삶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발을 담그고 있던 쪽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흘러가버린다. 성인이 된 자코르 앞에는 이제 더욱 무겁고 어두운 폭력과 범죄가 놓이게 되고, 이미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쌓아 올린 사회 내부의 카르텔은 끊임없는 유혹과 회유를 보내온다. 어린 시절, 이미 겪어본 적 있는 무력함. 제 아무리 높은 뜻을 품고 홀로 고고한 삶을 동경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언제는 자유로웠던 적이 있었던가?

다시 영화의 처음이다.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말콤을 죽여야만 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그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고, 자코르에게는 그 문턱을 넘기 위한 임무와도 같은 것이 총을 드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숱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의 탯줄과도 같은 폭력과의 연결고리를 이제는 완전히 끊어내 보려는 시도가 그 행위에 숨어 있다.
 
 영화 <올 데이 앤 어 나잇> 스틸컷

영화 <올 데이 앤 어 나잇> 스틸컷 ⓒ 넷플릭스


05.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 남은 생애를 교도소 담벼락 아래에서 보내야 할 처지가 된 자코르. 그렇다고 폭력의 고리가 멈춘 것은 아니다.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고, 그 폭력은 사회와 분리된 교도소 안에서까지 이어진다. 아버지는 그에게 폭력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가르쳤지만, 폭력이 덩치를 키워가는 속도는 그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했다. 그의 머리 속에서 '형제를 죽이고 다니는 순간 예전의 네가 아니다'라는 말이 떠나지 않는다.

자코르에게도 아들이 생겼다. 그는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그의 할아버지는 감옥을 다녀왔지만, 그는 평생을 감옥에 있어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