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영화배우, 정진영은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면서 TBS 라디오 아침 시사프로그램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감독이 된 정진영은 진땀을 흘려가며 감독으로 데뷔한 경위를 소개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본인은 어려서 배우보다는 감독을 꿈꾸었다는 사실과 이창동 감독, 한석규 주연의 영화 <초록물고기> 촬영 당시 연출부에 소속되어 일을 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스트로 정감독과 함께 출연한 영화평론가 최광희는 어지간한 영화에는 독설을 퍼붓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날 믿기 힘든 발언을 한다. 정진영이 이 영화의 감독이 아니었다면, "천재적인 신예감독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영화가 훌륭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영화 <사라진 시간>의 감독 정진영과 주연배우 조진웅

영화 <사라진 시간>의 감독 정진영과 주연배우 조진웅 ⓒ (주)비에이엔터테인먼트, (주)다나필름

 
천재적인 감독의 등장

이쯤 되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다지 팬은 아니었다"며 정진영 감독에게 곁을 주지 않은 <뉴스공장> 앵커 김어준처럼 나도 정진영의 팬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연기를 보면서 그가 진정성 있는 배우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내게 배우 정진영은, '뭔가를 더 표현하고 싶어 죽겠는데, 그렇게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관객과 멀어지는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기존의 모든 문법을 파괴하고 있었다. 인터뷰 중 '장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정진영 감독은 "어떤 장르에도 갇히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나는 영화를 보고 난 사람으로서, 그가 자신의 영화를 어떤 장르에도 가두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정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의 주인공은 초반 등장하는 교사(배수빈) 부부와 형사(조진웅), 농원을 운영하는 마을사람 이렇게 네 사람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도입부부터 박진감이 넘치는데 그 긴장감은 영화가 종료되는 순간까지 시종일관 유지된다. 영화는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하루 아침에 자신의 삶이 뒤바뀌는 충격적인 상황을 그린다. 

관객들이 많이 봐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줄거리를 노출하지는 않겠다. 다만,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시나리오부터 출연자 섭외와 감독 역할과 홍보에 전력투구한 정진영은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 과정을 나만의 상상으로 말하고 싶어졌다.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기법

"개인의 의식에 떠올라 이성적 사고의 흐름에 병행하여 의식의 일부를 이루는 시각적, 청각적, 물리적, 연상적, 잠재의식적인 수많은 인상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한 기법이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은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심리학의 원리>(1890)에서 처음 썼다. 20세기에 심리소설이 발전하면서 일부 소설가들은 이성적인 사고에만 국한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의식의 흐름 전체를 포착하고자 했다. 풍부하고 빠르며 미묘한 사고의 활동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단속적이고 일관성없는 생각들과 비문법적인 구문, 언표 이전 단계에 속하는 사고, 심상, 언어의 자유연상 등을 도입했다. 의식의 흐름 소설은 일반적으로 내적 독백의 서술적 기법을 사용한다. 대표적 예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1922)를 들 수 있다."(출처: 다음백과)

다시 말해 '의식의 흐름'에서 의식은 표면적 의식과 잠재의식, 즉 무의식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의식까지 포함해 구체적이고 현상적이며, 그래서 이성적인 종래의 이야기 구성에서 벗어나고자 한 시도가 돋보인다.
 
무의식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밤에 잠을 자면서 우리는 꿈을 꾼다. 꿈은 우리가 램(REM)수면으로 들어가게 되면 꾸기 시작하는데, 램수면으로 빠져드는데 드는 시간은 1시간 반쯤 된다고 한다. 7시간을 자게 되면 4번 이상을 꾸게 되는 것이다. 하룻밤에 꾸는 꿈은 4가지에서 7가지가 된다고 한다. 꿈은 누구나 꾸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꿈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내 경험상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기억할 수 있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잠> 참조). 나는 정진영 감독이 이런 꿈에서 영화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을 완성할 수 있는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뜨개질 강좌를 소개하는 장면을 보자. 교사 부인(차수연)이,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뜨개질을 배운다. 강좌의 수강생은 그녀와 다른 아주머니 단 두 명 뿐이다. 그나마도 심하게 툴툴대던 그 아주머니는 강좌가 끝나기도 전에 아무렇게나 짐을 싸서 마음대로 돌아간다. 현실에서는 겪기 힘든 상황이다.

또 한 장면은,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한 어르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이다. 큰 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데, 삼삼오오 무리앞에는 진수성찬이 놓여있다. 생일을 맞은 어르신은 마치 주술사와도 같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실컷 먹고 죽자"며 술과 음식을 배터지게 먹고 웃고 떠들고 심지어 노래까지 부르는 상황을 연출한다. 범연하게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낮술에 취하면 애미애비도 몰라본다'는 시쳇말이 떠오르는 이 장면 이후 대단한 파격이 이어진다.
   
 <사라진 시간>의 마을사람들

<사라진 시간>의 마을사람들 ⓒ (주)비에이엔터테인먼트, (주)다나필름


인물들의 부침 또한, 오싹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할 정도로 기발하다. 영화 전반부를 책임지는 교사 부부는 형사로, 후반부에 가서 형사는 다시 교사로 윤회한다. 그리고 부부는 독신으로 독신은 다시 부부로 환원된다. 각기 다른 인물들을 각각 다른 역할에 배치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 인물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사건이나 사물을 이야기 흐름이 매끄럽도록 장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정진영 감독은 애초에 이 영화를 독립영화로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일이 커져서 한편의 장편영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105분이나 되지만 관객들은 잠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한달 간 촬영을 했고, 제작비는 15억이 투자됐단다. 약 27만명 쯤 봐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개봉 4일째 관객 6만 2천명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나서 든 생각은, '사회적 거리두기만 아니었어도 정진영 신드롬'을 일으키지 않았을까'하는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영화 <사라진 시간> 정진영 감독, 2020년 6월 17일 개봉
중복게재(https://blog.naver.com/chakan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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