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영장이 지난 9일 기각됐다.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간 수감 생활을 하다가 항소심 집행유예 판결로 풀려난 지 2년 4개월 만에 다시 구속의 갈림길에 섰던 이 부회장이 한숨 돌리게 됐다.

지난 14일 방송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편은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를 둘러싸고 삼성의 대변인을 자처한 일부 언론의 활약상을 살펴보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삼성공화국인가.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이재용 부회장 '영장발부' 쟁점 세 가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장 발부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경영권 불법 승계 여부, 두 번째 이 부회장의 가담 여부, 세 번째 증거 인멸 우려다. 이 쟁점들을 놓고 법원은 영장 발부를 판단하지만, 일부 언론의 입장은 달랐다. 그룹 총수의 위기를 삼성의 위기와 국가의 경제 위기로 연결했다.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자.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변경에 이르는 과정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분식회계와 주가조작 등 불법 행위가 동원되었다고 판단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4일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후 세계일보 <검, 이재용 구속영장 청구···삼성측 "수사심의 무력화">(2020.6.5.), 서울경제 <삼성, "삼성물산 합병 관련 시세조정 사실무근">(2020.6.5.), 연합뉴스 <삼성, "이재용 승계작업 보고 받았다는 보도 사실무근">(2020.6.6.), 뉴스1 <절벽 끝에 선 삼성 "경제 위기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2020.6.7.) 등 삼성의 입장을 받아쓴 기사들이 쏟아졌다.

지면은 취재를 통한 검증을 생략한 채로 일부의 입장이나 관점을 단순히 옮기는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채워졌다. 삼성 측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따옴표 저널리즘'의 실상

언론은 삼성 측의 입장을 얼마나 '직접 인용' 했을까?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의 영장 청구 다음 날 10대 일간지와 3대 경제지의 53개 관련 보도 중 검찰, 검찰 관계자 말을 직접 인용한 횟수는 30번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변호인, 삼성 관계자, 재계 관계자 말을 직접 인용한 횟수는 84번으로 약 2.7배에 달했다.

영장실질심사 당일에 나온 39개 기사를 보면 검찰 측 말을 직접 인용한 횟수는 8번, 삼성과 재계의 말을 직접 인용한 횟수는 47번으로 6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언론이 검찰보다 삼성의 의견에 더 집중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언론은 빅데이터까지 인용하여 국민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선처를 원한다는 기사를 썼다. 6월 8일 80여 개 매체가 일제히 '국민 60% 이 부회장 선처 의견'을 헤드라인으로 붙인 기사를 올렸다. 출처는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의 자료였다.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는 삼성 측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한 사실이 알려진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카페, 블로그,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커뮤니티 등 11개 채널의 총 4783건의 게시물을 분석한 자료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 부회장 검찰 구속영장 관련 연관어 추이라는데 '경영', '한국', '국민', '우려하다'가 왜 선처 의견 연관어인지 의문이 든다. 선처 의견 연관어가 59.05%(7488건)로 집계되어 국민 60%가 이 부회장의 선처를 원한다는 결론도 납득하기 어렵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삼성 측의 입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걸 넘어 삼성에 동화된 듯한 기사까지 등장했다. 조선일보 사설 <어느 한 기업에 대한 4년간의 수사와 재판>(2020.6.5.)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기업과 기업인이 이토록 오랜 기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사례는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짚은 대목만 보면 한 개의 범죄 혐의로 4년 동안 조사를 받는다고 오해하기가 쉽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금 뇌물, 횡령, 배임, 자본시장법 등 계속해서 혐의가 나와 조사를 받는 중이다.

"이 사건의 시작은 정부가 기업에 '지배구조를 개선하라'는 압력을 가한 것이다"란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강유정 강남대 한영콘텐츠학과 교수는 불법 승계에 관련한 규명을 삼성이 해야 하는 사건인데 조선일보는 마치 정부가 권력을 남용해서 한 기업을 묵살하고 있다는 식의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익을 봤다 해도 실현 불가능한 문서상의 이익일 뿐이다"란 주장 역시 조선일보가 마음대로 규정할 부분이 아니다. 사법부의 판단에 맡길 영역이다.
 
<저널리즘KBS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KBS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연합뉴스 <구속 기로에 놓인 이재용···외신들 "삼성 불확실성 커져">(2020.6.7.)는 외신을 인용하여 삼성 경영을 우려하는 보도를 작성했다. 그런데 원문을 그대로 살린 인용이 아니었다. 6월 4일에 쓴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을 보면 원문은 "삼성은 전문 경영인에 대한 권한 이양이 추진되고 있어서 이재용씨가 구속되더라도 당장 경영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전략 수립이 늦어지는 등의 영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나온다.

그러나 연합뉴스는 원문의 뒤 문장만 인용하여 어감을 바꿔 버렸다. 이런 기사를 다른 언론사가 받아쓰며 '외신의 우려'는 확산하였다.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국가기관통신사인 연합뉴스가 신뢰할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연합뉴스가 뉴스 통신 진흥회라는 공공기관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막대한 세금이 투여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보다 더 공적인, 공익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봐야 합니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언론이 유독 삼성에 약한 이유

그렇다면 언론이 삼성에 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18년 신문사 매출 비중'을 보면 종이 신문 매출에서 광고는 60%, 기업의 협찬을 받는 부가 사업이 21%를 차지하고 구독료는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사는 독자가 아닌, 광고와 협찬을 주는 기업의 눈치를 보며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삼성은 자사에 비판적인 언론사의 기자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식으로 언론을 관리하기도 한다. 2017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당시, 귀가할 때 그의 가방을 들어 준 남성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한겨레 기자 출신인 박효상 삼성 상무였다. 최욱 팟캐스트 진행자는 그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현장에 많은 기자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 기자 분들이 가방을 들어주는 저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부럽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부끄럽다고 생각할까?"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뉴스타파 <기업으로 간 언론인들>(2020.3.10.)을 보면 재벌 그룹이 언론인 영입에 나선 시기는 오너 리스크가 불거진 시점과 일치한다고 지적한다. 재벌이 언론인을 영입하는 건 능력과 함께 인맥을 사서 언론 관리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간 언론은 삼성 총수의 위기를 삼성의 경영 위기, 그리고 국가의 경제 위기로 전달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삼성이 잘 돼야 나라가 잘된다'는 논리다. 임자운 변호사는 "도대체 삼성이 누구냐"고 질문을 던진다. 삼성이 곧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아는 삼성은 삼성 노동자들이에요. 거기서 일하다 병들고 아프고 심지어 돌아가신 분들. 언론이 삼성 입장에서 듣는 건 좋은데 삼성 내부에 있는 다양한 목소리 중에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나? (그곳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좀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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