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아있다> 포스터

영화 <#살아있다>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인터넷은 우리에게 '적극적인' 연결의 시대를 선사해 주었다. 현시대에 태어난 모든 인류는 여전히 직접 만나 소통을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더욱 다양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 SNS로 대표되는 다양한 공간을 통해 모든 사람은 연결되어 있다. 오프라인의 관계가 다소 소원하더라도 온라인 상의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하면 오히려 더 활발한 소통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당연하게 반복되는 관계들의 소중함을 잊기 마련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고립이라는 고난을 선사했다. 직접 만나는 순간을 밀어내고 온라인 소통의 세상으로 우리를 밀어 넣었다. 회사에서도 인터넷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그런 온라인 위주의 소통이 몇 달간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직접적인 대면 소통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어쩌면 고난은 바이러스로 인한 고립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진짜 소통의 부재 때문인지 모른다. 이미 그전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직접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을 줄여왔다.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키오스크 주문 기계가 늘어나고, 배달 전문 가게가 늘어났다. 직접 누군가를 만나 소통하며 진행하는 일들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정말 고립을 원하는 걸까.

좀비 때문에 강제로 고립되는 준우의 이야기
 
 영화 <#살아있다> 장면

영화 <#살아있다>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살아있다>는 고립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한순간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집안에 갇혀버린 준우(유아인)의 상황을 통해 소통과 고립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도 좀비 장르를 빌려서.

요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주인공 준우는 개인 방송을 운영하며 사람들과 소통한다.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비대면 소통에 더 능숙하다. 그런 그가 한순간에 완전히 고립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은 그를 소통을 할 수 없는 공간으로 밀어넣는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바로 상황이 펼쳐지는데, 첫 10분간 영화 속 준우가 처한 외부 상황이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침대에서 일어난 준우가 시야가 좁은 어두운 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같이 게임을 하던 동료들의 말을 듣고 텔레비전을 켜 현재 외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파악한다.

그리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 외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대로 목격함으로써 뉴스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넓은 시야 확보가 가능한 베란다에서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것을 관찰하던 그는 다시 집안 반대편으로 돌아가 현관문에 달린 작은 렌즈로 밖을 본다. 그 속에서 보이는 세상 역시 지옥이다. 넓게 보는 세상, 좁게 보는 세상 모두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면서 텔레비전에서 묘사하는 세상도 지옥으로 변해간다. 

준우가 초반 상황에서 가장 먼저 택한 행동은 전화가 되는지 확인하고 SNS를 뒤지며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상황과 주소에 해시태그를 붙여 업로드하는 것이다. 인터넷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SNS에 올리면서 자신이 살아있고, 구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 뒤로 모바일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전화의 신호들이 서서히 약해지며 끊겨 버리고 그 뒤로 준우는 진정한 고립의 시간 속으로 진입한다. 

소통이 완전히 끊겨버린 사람의 생존기
 
 영화 <#살아있다> 장면

영화 <#살아있다>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통이 완전히 끊긴 채 고립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시간을 보낼 무언가를 찾는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것을 대체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내기 더욱 어렵다. 그래서 준우가 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시고 먹을 것을 먹으며 외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게 된다. 

상황이 지속되면서 어느 순간 준우는 점점 자신이 살 가능성이 없어져가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준우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꼭 살아남으라는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 소통이 활발한 순간에도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낀다. 다양한 삶의 고난에 지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힘들게 대학에 가고, 열심히 살아도 희망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런 상황 아래선 더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리면 고립의 영역 쪽으로 한 발 더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 고립의 영역에서는 대면 소통과 온라인 소통이 모두 끊겨 버린다. 하지만 그때에도 그들의 부모는 그들에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살아남으라는 말을 남긴다. 아무 힘이 없는 평범한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런 격려일 것이다. 부모의 격려는 자녀들을 좀 더 오래 소통의 공간에 남겨두기도 한다. 영화 속 준우처럼 말이다. 

영화 <#살아있다>의 준우는 점점 절망으로 빠져들 즈음, 건너편 아파트에 살던 유빈(박신혜)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준우와 비슷하게 고립되어 있던 그는 망원경과 다양한 도구들을 이용해 준우와 이야기를 나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혼자였던 준우의 얼굴에는 반가움의 웃음과 기쁨의 눈물이 오간다. 두 사람이 소통하는 순간순간 그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묻어난다.

다소 떨어진 거리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상대방의 몸짓과 얼굴을 통해 그들은 다시 삶의 빛을 발견한 것 같아 보인다. 고립의 시간, 그들은 잠시 혼돈스러운 세상과의 이별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을 다시 살아있게 하는 건, 서로의 앞에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타인이다. 타인이 그들을 다시 삶과 연결시키고, 절망과 투쟁하게 만든다.

영화의 긴장을 유발하는 좀비들은 영화 <부산행>과 같이 빠르게 달리고 몸을 꺾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기괴함에 더해 <#살아있다>의 좀비들은 자신들이 사람일 때 가졌던 직업이나 일들을 반복하기도 한다. 

좀비의 위협 속에서 준우와 유빈이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소통과 협동으로 맞서는 모습은 꽤 훈훈하고 흥미롭다. 두 사람은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드론이나 전자기기 등을 이용해 서로 소통하게 되는데, 이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시선을 제공한다. 좀비가 나타나지 않는 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보는 이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악몽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 소통
 
 영화 <#살아있다> 장면

영화 <#살아있다>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준우 역의 배우 유아인의 연기가 인상깊다. IT기기나 게임에 익숙한 너드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는 조금은 어리숙하고 순진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다가, 심각한 상황에서 당황하거나 혼신의 힘을 다해 극복하려는 모습으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그가 가진 다양한 표정들이 얼굴 주름을 통해 하나 하나 묘사되면서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박신혜가 연기한 유빈의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입체적이지 못해 아쉽지만, 배우의 친근함과 연기력이 두 배우의 앙상블을 더욱 빛나게 해 준다. 

영화 <#살아있다>는 고립된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은 영화다. 어떤 면에서는 외톨이인 주인공들이 고립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 <김씨표류기>(2009)의 좀비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영화는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더라도 누군가와 소통을 하며 이 상황을 벗어나자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라고, 두 주인공의 얼굴을 빌려 이야기 한다.

눈 앞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며 현재의 고립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것이 결국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강제적인 고립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이 영화를 보며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아직까지 모두 #살아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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