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한 장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한 장면 ⓒ tvN

 
"지밖에 몰라."
 
아마도 이 말에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적지 않은 아내들이 감정을 이입하지 않을까. 그건 살면서 몇 번은 속으로, 혹은 혼잣말로 되뇌었던 남편을 향한 대사였을 테니 말이다. 분명 남편과 아내는 함께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임에도, 오랜 시간 살다보면 어느 순간 저런 감정이 불쑥 솟는다(물론 모든 남편이, 혹은 모든 아내가 같은 상황은 아니리라). 누군가는 가정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가며 사는데,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만을 중요하다 생각하는 안타까운 상황.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한국 사회인지라, 어머니 세대에선 이런 일이 일상이었다. 최근 '졸혼'이 등장했지만, 그 '졸혼'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들이 자신밖에 모르는 남편을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이라 지칭하며 오랜시간 견뎌왔다. 물론 젊은 세대들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육아 부담을 나누고 공동체적 합의에 충실하려 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 비율이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아래 '가족입니다')는 '자기중심적'인 남성 둘, 아버지 김상식(정진영 분)과 사위 윤태형(김태훈 분)을 통해 세대별 남성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뒤늦은 오열
 
16일 방영된 6회분에서 집에 돌아온 남편 김상식은 "이제 기억이 돌아왔다"며 아내 이진숙(원미경 분)에게 "졸혼을 하자"고 한다. 하지만 아내 이진숙은 그런 남편 김상식이 수상하다. 아니 수상한 게 다가 아니다. 이제야 홀가분하게 자신이 짊어져왔던 가정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나, 싶은데 22살이 되었던 김상식씨로 인해 자꾸만 옛 생각이 떠오르며 싱숭생숭해진다(앞서 진숙은 상식에게 졸혼을 선언하고, 이후 산행에 나섰던 상식은 조난을 당하는 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기억이 22살에 머물게 됐다). 
 
사실 김상식씨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는 아내에게 '졸혼'을 하자고 했을까? 전부는 아니지만 자신의 지나온 나날들이 파편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식은 첫 딸이 결혼할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하던 날, 먼저 상에 앉아 음식에 손을 대는 자신을 말리고, 단정하게 셔츠를 입으라는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집을 박차고 나가던 자기 멋대로인 남편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어떻게 그 돈으로 형수님이 아이들을 키웠는지 놀랍다"는 상식의 동료 말처럼, 그는 생활비를 조금 주던 인색한 남편이었다. 그렇게 생활비에 쪼들리는 아내가 사들고 온 과일에 분노하며 유리창을 깨버리는 안하무인의 남편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진숙씨에게 무릎 꿇고 청혼했던 상식씨였건만, 그는 변해버린 그 어느 날부터 가정의 폭군으로 살기 시작했다.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만으로 군림했다. 아내보다 못 배우고, 점점 자라는 아이들에게 부족한 듯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격지심을 이른바 '분노'로 표출했다. 그의 말은 칼보다 날이 섰으며, 눈길만으로도 아내를 자지러지게 했고, 분노한 그의 손에 남아나는 게 없었다. 
 
이제 다시 22살이 되어버린 상식씨는 그렇게 자기 멋대로, 안하무인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진숙씨를 괴롭히며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을 견딜 수가 없다. 그는 결국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진숙씨를 그렇게 괴롭힐 수가 있나'라며 오열했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진숙씨가 원하는 대로 '졸혼'을 하기로. 
 
잘못 꿴 결혼, 뒤늦은 결심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한 장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한 장면 ⓒ tvN


여기 또 한 사람 '졸혼'을 결심한 이가 있다. 바로 김상식씨의 큰사위 윤태형이다. 뉴질랜드로 세미나를 가겠다던 그는 아내 은주(추자현 분)가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노트북을 떡하니 책상 위에 놔두었다. 그 노트북에는 자신이 아내에게 '커밍아웃'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채팅창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뉴질랜드에 가겠다고 했던 그는 어릴 적부터 도망칠 때 찾던 소록도로 향했다.
 
'왜 아내 은주와 결혼을 했느냐'는 처제 은희(한예리 분)의 질문에 윤태형은 "아내 은주도, 나도 집으로부터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의사가 되었던 태형은 남들이 보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행복하지 않다.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자신을 옥죄는 집으로부터 도망치듯 나와 아내를 방패삼아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은 그에게 또 다른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아내는 아이를 갖기 위해 애를 썼다. 태형은 그런 아내를 지켜보는 것도, 자신의 정체성을 '가정'으로 회피하려 하는 자신도 견디기 힘들었다.
 
아내 은주는 자신을 방패막이로 삼은 태형에게 분노한다. 더불어 은주는 그러한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채팅창으로 알게 한 행동이 비겁했음을, 또 아이를 갖기 위해 자신이 해 온 온갖 노력과 시간을 방조한 것이 치사했음을 일갈한다. 태형은 늘 도망치고 회피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질타하는 아내에게 분노했지만, 이내 떠난 아내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처참해진다. 결국 태형의 아내 은주는 편의적으로 회피하며 살아온 태형의 삶에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잘못 꿰어진 결혼이 남긴 상처가 깊다.
 
김상식씨도, 경우는 다르지만 사위 태형도 함께 꾸려가야 할 '결혼'을 자신의 멋대로 재단해버린 결과, 막다른 곳에 봉착했다. 22살의 어린 청년이 되어버린 김상식씨에게는 괴물처럼 느껴지는 자신이 살아왔던 날들... 뒤늦게라도 되돌리려하지만 너무 큰 상처를 받은 아내. 과연 그들은 '자기 멋대로' 살아온 삶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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