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의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에서 진을 차지한 임영웅.

TV조선의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에서 진을 차지한 임영웅. ⓒ TV조선

 
최근 방송가에선 그야말로 트로트가 '대세'다. 트로트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 이에 편승하려는 방송도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인기 트로트 가수들에 대한 방송 섭외가 쇄도하는가 하면, 방송사마다 <최애엔터테인먼트> <보이스트롯> <트롯전국체전> 등 노골적으로 트로트 인기를 겨냥한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 제작을 선언하고 나섰다. 하지만 별다른 차별화나 창의성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트로트 열기를 이용하려는 분위기로 인해 오히려 트로트의 과도한 이미지 소비나 시청자의 피로감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트로트는 한동안 한국에서 중장년층이나 노년층만을 위한 '올드 뮤직' 정도로 여겨졌다. 대중가요의 소비 주체가 철저히 젊은 세대의 취향 위주로 치우쳤던 한국 대중문화에서 올드하다는 이미지는, 곧 시대에 뒤떨어진 낡고 촌스러운 음악이라는 선입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트로트가 한국에 처음 뿌리내리기 시작하던 백여년 전만 해도 오히려 트로트는 그 시대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최신 가요에 가까웠다.

오늘날의 대중음악과 문화가 좀 더 직설적으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추구하면서, 서구적인 랩이나 힙합과는 달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트로트라는 장르가 '흥과 끼의 분출구'로써 새롭게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유행이란 게 단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돌고도는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에 불고있는 트로트 돌풍의 시발점으로는 역시 TV조선의 <미스 트롯>과 <미스터 트롯>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미스트롯>이 송가인이라는 '제2의 장윤정'을 배출했다면, 시즌2인 <미스터 트롯>은 우승자 임영웅 외에도 상위 '톱7'과 심지어 그밖의 출연진까지 모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만큼 그 영향력이 더 커졌다. 

트로트 시리즈가 종영된 지 이미 수개월이 흘렀지만, 출연자들은 수많은 방송과 광고를 넘나들며 식지않는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트로트 시리즈를 제작한 TV조선 역시 <사랑의 콜센터>나 <아내의 맛> <뽕숭아학당> 등 자체 제작 예능을 통하여 '트롯맨'들을 여전히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JTBC 예능 <뭉쳐야찬다>에 출연한 <미스터트롯> TOP 7 멤버들.

JTBC 예능 <뭉쳐야찬다>에 출연한 <미스터트롯> TOP 7 멤버들. ⓒ JTBC

 
이러한 트로트 인기의 수혜는 꼭 트로트 시리즈 출연자들만 입는 것은 아니다. 태진아, 설운도, 남진, 주현미, 김연자, 진성, 장윤정, 설하윤, 박현빈 등 기성 트로트 가수들도 덩달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버스킹의 트로트 해외판이라고 할 수 있는 <트롯신이 떴다>나, 트로트 가수들의 경연을 내세운 <나는 트로트 가수다>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유재석(유산슬)이나 김신영(김다비)같은 인기 예능인들이 트로트 열풍에 동참하며 트로트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이른바 자신의 '부캐'(또다른 캐릭터)도 활용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트렌드 변화에 따른 '인기 쏠림' 현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한민국 '오디션 열풍'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엠넷은 <슈퍼스타 K> <프로듀스> 시리즈가 초창기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면서 한때 방송가와 가요계의 화제성을 독식하기도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몰이로 연예인을 꿈꾸는 지원자가 속출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방송에 등장했던 인기 대중가요가 다시 재조명받는 등 한국 대중문화의 지형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이런 오디션 돌풍의 배경엔 방송 형식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오디션에 참여하는 출연자나, 투표하는 시청자 모두 방송 자체를 수동적으로 지켜보는 시대에서 '적극적으로 함께 참여하는' 시대로 바뀌었고, 그것이 인기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좋은 기획사나 우월한 배경을 등에 업고 연예인으로 데뷔할 수 있는 일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오디션은 출연자들에게는 이른바 한방에 '인생역전'이라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꿈의 무대였다. 오디션 시리즈를 통해 대거 등장한 스타성 갖춘 출연자들은 기존 트렌드에 식상해 하던 시청자들에게는 더욱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환풍기 수리공 출신의 허각이 <슈퍼스타K> 시리즈의 우승자가 된 것이나, 오랜 가난과 무명을 딛고 트로트 시리즈를 통하여 스타덤에 오른 임영웅-영탁 등 <미스터 트롯>출신들의 '흙수저' 고생담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절절한 몰입감과 공감대라는 매력포인트를 더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의 관찰자라는 한정된 역할을 벗어나 투표라는 방식을 통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스타를 직접 만들어내는' 러닝메이트 역할을 하며 희열을 느꼈다. 
 
 SBS플러스가 신설한 '내게 ON 트롯'의 한 장면

SBS플러스가 신설한 '내게 ON 트롯'의 한 장면 ⓒ SBS플러스

 
물론 이런 과정에서 긍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디션 방송들은 대부분 '악마의 편집'이나 '연습생에 대한 갑질논란' '투표의 공정성' 논란 등을 낳기도 했다. 오디션 방송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오디션 자체가 거대 방송사와 연예 기획사를 등에 업고 '권력화' 하는 부작용도 생겼다. 그 최악의 사례가 바로 최근에 벌어진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의 조작 논란이었다.

TV조선의 트로트 시리즈 역시 높은 인기에 가려졌지만,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특정 가수 편애, 심사위원의 전문성 문제, 편집 논란과 불공정 계약 등으로 방송 내내 잡음에 시달렸다. 엠넷 오디션 시리즈의 몰락에서 보듯, 높은 인기에 도취되어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출연자들에 대한 신뢰도 점점 떨어지게 된다.

최근의 트로트 신드롬이 낳은 가장 큰 부작용은 역시 지나친 독과점으로 인한 다양성의 침해다. 트로트와 연관성이 없거나 어울리지 않는 포맷에 '트로트'를 끼워맞추는 행태는 이미 도를 넘은 수준이다. 스포츠 전설들의 조기축구 도전을 다룬 <뭉쳐야찬다>는 미스터 트롯 출신들을 섭외한 특집편을 2주에 걸쳐 방송하면서 축구와 상관없는 가수 소개와 노래자랑에만 한회 분량을 소비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한 <아내의 맛>에서는 뜬금없이 프로그램 주제와 상관없는 '트로트 신동'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물론 논란과 별개로 해당 에피소드의 시청률 자체는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가에서 비판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트로트 코인 탑승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임영웅

임영웅 ⓒ TV CHOSUN


<미스터 트롯> 같은 시리즈가 침체되어있던 트로트 장르의 '블루오션'으로서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고 선점했다면, 최근에는 범람하는 트로트 관련 방송들로 인하여 금세 '레드오션'화가 되어버린 모습이다. 대부분 트로트 장르의 활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기존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게 한계다. 당분간 시청률이 잘 나오는 이상, 이런 무분별한 트로트 따라하기는 계속될 것이다.

한때 영원할 것 같았던 오디션 시리즈의 신드롬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도 결국 반복되는 포맷과 발전 없는 매너리즘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이 누적됐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결국은 질린다. 이미 지금도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비슷한 방송 콘셉트를 접하면서 '또 트로트냐'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최근 인기를 끄는 소수의 출연자들, 혹은 한정된 콘셉트 위주로만 소비되는 상황에서는 급격하게 솟아오른 인기만큼이나 순식간에 쇠락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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